주문받은 la갈비소스를 만들고 있는데 친구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정은아, 정은아! 찹쌀 가루라고 받았는데 이게 물에 들어가면 바로 농도가 수프처럼 걸쭉해지는 거야?”
아마도 처음 만들어보는 찹쌀풀에 적잖이 당황을 한 게 전화기 너머로 느껴졌습니다.
“만졌을 때 뽀도독거리면 전분가루고 질감이 느껴지면 찹쌀가루, 찹쌀가루는 물에 들어가면 무게가 있어서 물에 가라앉아”
시어머니가 만들어준 김치만 먹다가 저의 충동질로 난생처음 만들어보는 파김치의 제작과정에 기분 좋은 흥분상태의 감정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나 처음 만들어보는 김치야~ 이 담엔 어떻게 해야 해?”
큰 함지박에 쪽파 넣고 버무린 양념을 부어 위아래로 잘 섞어주면 된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는 친구에게 어떤 게 더 확실한 도움이 될지를 고민하다 제가 처음 김치를 만들 때 교과서처럼 사용했던 레시피 책을 사진 찍어 문자로 보내줬습니다.
먹던 입맛이 무서워서 저는 늘 추석 즈음이 가까워오면 파김치가 미치게 먹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추석 일주일 전에는 파김치와 열무로 담은 물김치, 그리고 배추김치도 새로 담아놓고 추석에 방문할 자손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었거든요.
허리가 ㄱ자로 꼬부라진 채로 쪽파를 함지박 가득 종일 다듬고 배추를 절이고 열무를 손질하고 찹쌀풀을 쑤었겠죠…
이젠 그 일을 저 혼자 합니다. 세 식구 먹을 김치면 되니 배추 한 포기 절이고 쪽파는 두 단이면 충분하더군요. 가을볕은 아직 여름 기운을 머금은 채로 따가웠지만 바람의 냄새가 알려줬습니다.
추석이 가까워져오고 있으니 냉장고에 햇고춧가루로 담은 새로운 김치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지난 일요일 가을바람이 가르쳐준 데로 쪽파 두 단을 다듬어 백령도에서만 파는 까나리액젓 듬뿍 넣고 칼칼한 파김치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친구에게 자랑을 했었습니다.
내가 내 손으로 김치 못 담았으면 이 추석이 얼마나 서러웠겠냐며 참 다행스럽게도 혀에 저장된 그 맛을 되살린 일에 자축의 세리머니 수다를 실컷 하고 돌아섰는데 저의 자랑질이 친구에게도 전염이 되었던 겁니다.
친구도 모든 김치를 작년까지 담당해주시던 시어머니가 담아주던 파김치 맛이 추석이 되어가니 생각이 났을 겁니다.
찹쌀가루를 처음 물에 풀어보고 이걸 몇 분이나 저어야 하는지 얼마나 되직하게 끓여야 하는지 적지 않게 당황했던 기억이 새롭더군요. 더 추워지는 늦가을의 쪽파김치도 맛있고 겨울 추위가 덜 풀린 초봄의 노지 쪽파로 담근 파김치도 맛있지만 기름기 많은 음식 뒤에 먹어줘야 할 파김치 한 접시 없으면 너무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일요일에 담아뒀던 고춧가루 되직하게 칠해져 있는 파김치를 저녁밥상에 내어놓았더니 딸아이가 제일 먼저 반색을 하며 젓가락질을 시작했습니다.
“와! 엄마, 이거 대박. 시골 할머니가 담아준 김치보다 더 맛있어”
남편도 아이도 너무 맛있게 먹어주니 정말 기뻤습니다. 이젠 친정식구들 얘기가 나와도 울지 않습니다. 마치 그것과 비슷한 감정상태인 거 같습니다. 팔 한쪽이 처음 잘렸을 때는 팔이 잘려나간 통증에 밤이고 낮이고 데굴데굴 구르며 아파했는데 일 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갔더니 그 상처가 꾸득꾸득 말라 붙고 굳은살이 배겨서 없어진 팔 한쪽이 서운할 뿐입니다.
내가 만든 나의 가족은 나의 오른팔 같았고 잃어버린 친정 식구들은 나의 왼팔 같았습니다. 왼팔이 없어진 나의 마음은 처음엔 심장이 반쪽으로 잘린 거같이 고통스러웠으나 이제는 한 팔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20년 동안 같이 동거 동락하며 집안의 벽돌 한 장 한 장 같이 쌓아 올린 남편과 딸이 진짜 나의 가족입니다. 다복한 친정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니 지금의 처지에도 이젠 제법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혹시나 저처럼, 또는 친구처럼 친정에서 추석날이면 밥상에 올라오던 파김치가 생각날 분들에게 파김치의 레시피를 간략하게 알려드려 보려고 글을 씁니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작은 쪽파 두 단이 기준이 되는 레시피입니다.
저는 쪽파를 사 오기 하루 전에 미리 김치에 쓸 과일. 야채 육수를 만들어 놓습니다. 물 2리터에 사과 2알, 양파 1개, 대파 한대, 애기 손바닥 만한 다시마 다섯 장이면 충분합니다.
정량의 물을 냄비에 부은 후 채 썬 사과와 양파와 모든 재료를 부어줍니다. 가스불을 켜고 물이 살짝 끓어오를라 치면 불을 확 줄여서 가스불이 꺼질락 말락 하게 아주 최소한의 약불로 1시간을 우려낸 후에 베란다에 족히 5시간은 놔둡니다. . 이 때 절대로 냄비 뚜껑을 열어서 김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보통 이 일을 저녁 뉴스 보고 해 놓습니다. 가을바람에 시원해진 베란다에서 새벽까지 우려낸 야채. 과일 육수는 새벽 5시나 6시 즈음 거둬들여서 걸러놓습니다.
그렇게 냉장고에 과일 야채 육수가 우려 진채로 있으면 파김치 담는 일은 아주 아주 쉽습니다. 마트로 달려가 작은 쪽파 두단 사 와서 냉큼 다듬어놓고 두 번 세척해서 소쿠리에 받혀놓은 다음 물이 빠지길 기다리며 찹쌀풀을 쑤면 됩니다. 새벽에 우려 놓은 야채. 과일 육수 300cc에 찹쌀가루를 밥숟가락으로 듬뿍 두 숟갈 떠서 야채 육수와 잘 저어준다음 냄비에 눌어붙지 않게 스페튤라로 열심히 저어줍니다. 익은 찹쌀풀을 살짝 찍어 맛을 보면 야채.과일육수의 오묘한 단맛이 배어있는걸 느낄수 있을겁니다. 찹쌀풀이 죽처럼 되직하게 끓여졌어도 금세 불을 끄면 안 되고 덥더라도 참고 2,3분 정도는 더 불을 줄인 채로 찹쌀풀을 익혀줍니다. 찹쌀이 쌀가루입니다. 한번 포르륵 끓는다고 그게 다 익은 게 아니랍니다.
김치가 잘 숙성이 되려면 찹쌀풀도 참을성 있게 충분히 익혀줘야 맛있는 김치가 완성이 됩니다. 찹쌀풀을 만든 후엔 양념을 만들기 시작하면 됩니다.
야채. 과일 육수 200cc를 양념 볼에 제일 먼저 부어주고 고춧가루 200cc, 까나리 액젓 100cc, 다진 마늘 두 스푼 정도를 넣고 되직하게 섞어주고 여기에 사과 반쪽과 양파 반쪽을 강판에 갈아 넣어줍니다. 찹쌀풀이 식었으면 찹쌀풀도 다 만들어진 양념에 같이 섞어준 후에 넓은 함지박에 쪽파를 가지런히 깔아줍니다.
양념을 쪽파 위에 붓고 위아래로 애기 목욕시키듯 양념을 버무려주면 끝입니다. 다 만들어진 파김치는 익히지 않은걸 원하면 반나절만 베란다에서 양념이 배어들길 기다렸다가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되고 좀 익은걸 원할 경우엔 12시간 정도를 숙성시켜 준후에 김치냉장고에 보관해주면 됩니다.
말로 파김치를 가르쳐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혹시라도 저처럼 나의 친구처럼 친정에서 담아준 칼칼하고 개운한 파김치가 먹고 싶은 마음 한켠 시린 사람들이 있다면 직접 담아보라고 알려주고 싶어서 최대한 쉽게 레시피를 글로 풀어봤습니다.
줄리&줄리아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던 줄리가 어느 날 프랑스의 유명한 전설의 쉐프, 줄리아의 프랑스 요리책을 접하고 365일동안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며 그 요리들을 직접 실현시켜보는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삶의 행복을 되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잃어버린 왼팔 같은 친정식구들이 생각나서 이번 추석이 울적하실 분들이 계시다면 친정엄마가 만들어주던 추석 밥상에 항상 올라오던 엄마만의 김치가 미치게 그리워지기 시작했다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적당한 김치요리책을 한 권씩 들고 오시길 권해봅니다.
아무리 설명을 친절히 들어도 내가 직접 실현해보고 만들어보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나만의 손맛으로 절대로 탈바꿈하지 않는답니다. 추억의 맛이 그립다면 꼭 만들어보고 실천한 후에 나의 손에 그 레시피를 각인시켜보시길요.
그렇게 되면 내가 직접 나의 추억의 입맛을 재현시킬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그 들의 부재로 허전할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끝날뿐 감정이 더 증폭되어 서럽다 느껴질 일은 없을 거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일이 먹는걸로 슬픈 감정을 느끼는 일 입니다. 그게 굉장히 원초적이고 고약한 외로움을 발생시킵니다.
제가 만약 나의 손으로 직접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그 김치를 만들지 못했다면 잃어버린 왼팔 같은 그들의 존재 때문에 아직도 아파하며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다행인가요? 저는 이제는 파김치를 아주 아주 맛있게 잘 만들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