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현관문을 열었는데 서울 살면서 이런 겨울 냄새를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지 싶었습니다. 청량한 눈 냄새와 겨울의 한기가 맞물려 제대로 된 겨울 냄새가 폐 속 깊숙이 들어왔어요.
'와... 이거 어렸을 때 맡아보던 겨울 냄새인데...' 싶었습니다.
추워서 손이 오그라들고 시암에 내어놓은 함지박이 꽁꽁 얼어있고 토방 위에 내어 놓은 신발들도 동태처럼 얼어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풍경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추웠던 겨울, 실외에 있던 부엌에서 어떻게 음식을 해 먹었나 싶기도 하네요.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습니다. 더운물 나오는 수돗물이 어딨을라고요.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식구들 낯을 씻을 뜨거운 물을 끓이는 일이었으니까요. 큰 검은 솥단지가 걸린 아궁이에 풍로로 불씨를 지펴서 물을 끓여서 누런 양동이에 퍼 놓고 뚜껑을 닫아놓고는 한 바가지씩 아껴 써야 했습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아파트 마당을 내다보다가 잠시 어렸을 때 시골집 풍경이 떠올랐는데 김구이가 먹고 싶은 겁니다. 흔하디 흔한 마트에서 파는 조미김 말고요. 내가 직접 기름칠하고 소금 솔솔 뿌려내서 석쇠에 노릇하게 구운 김 말이에요.
그 맛을 따라갈 조미김이 어디 있으려고요?
농한기인 겨울에 할머니가 제일 걱정했던 일이 넷이나 되는 손주들 먹거리였는데 빈한한 주머니로 장을 보려니 제일 반가웠던 게 김 한 톳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 톳에 김이 백장이나 하잖아요. 어렸을 때 할머니를 따라 장을 자주 다녔는데 제가 기억하는 김 한 톳의 가격이 4,5천 원 정도 했던 걸로 생각이 드네요.
겨울에 제일 많이 먹었던 먹거리가 시래기, 고등어, 마른김이었거든요.
한 끼에 손주 넷에게 김 두장씩을 구워 배당해주고 나면 정작 할머니는 그걸 한 장도 먹지 않고 마른밥에 김치만 얹어 먹었던 거 같아요. 된장국에 김치 한보 시기. 그게 그녀의 반찬이었는데 손주들이 김에 정신없이 밥을 싸 먹는 걸 보며 옅은 미소를 띠며 좋아하셨습니다.
김 두장이면 아무리 많은 고봉밥도 다 해결이 됐었으니까요. 적은 반찬으로 손주들 밥을 많이 먹일 수 있으니 그게 흐뭇하셨을 거 같아요.
매일 풀때기만 먹였는데도 우리 손주들은 키가 장승같이 크다고 나중에 매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자, 그럼 김을 구워볼까요? 집에서 김을 굽는다고? 그것도 기름을 일일이 발라서? 귀찮아하실 수도 있는데요.
저만의 아주 간단 방법이 있어서 오늘은 그걸 꼭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을 올려봅니다. 준비물은 큰 쟁반 하나와 비닐장갑 하나면 됩니다.
엇? 기름 바를 솔이 필요하지 않았던가요???? 저는 김 바르는 솔을 세척하는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합니다. 그거 잘 씻기지도 않을뿐더러 가정집에서 아무리 깔끔을 떨어도 기름때가 금세 진득하게 붙어버리는 게 골머리가 아프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게 일회용 비닐장갑입니다. 비닐장갑에 들기름을 적셔서 슥슥 발라주고 솔솔 소금 떨어트려준다음 달궈진 프라이팬에 구워주면 됩니다. 비닐장판처럼 약간 쪼그라들기 시작하면 뒤집어주면 되는데 저는 오늘 불맛도 추가하고 싶어서 굳이 석쇠에 구웠습니다.
별 반찬 없는데도 김구이 하나에 딸아이와 서울 이모집에 공부하러 놀러 온 조카아이가 탄성을 지릅니다.
"이모! 이거 아주 맛있네요!"
그 모습이 흐뭇해서 지켜보느라 저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밥을 먹게 됩니다. 아마 우리 어렸을 때 할머니도 그러셨겠죠? 본인은 김 한 장도 먹지 않고 손주들 입에 한 장이라도 더 넣어주려 애썼던 할머니.... 도 아마 오늘 아침의 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김구이, 귀찮지 않지요? 오늘 저녁엔 꼭 한번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설거지할 거리도 많지 않고 번거로운 김솔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 먹는 김과는 하늘과 땅 차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