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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r 28. 2020

호사스러운 취미의 마무리는 삼각 봉지 커피우유로.

<2015년, 가을의 기억>



내가 피부에 들이는 유일한 호사는 목욕탕에서 잘 불려진 몸을 세신사 아주머니께 맡기고 때를 미는 행위이다. 언제부터 이 몸의 호사가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네모반듯한 사각의 1인 탁자 위에 도마 위 생선처럼 올라가서 때를 미는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기까지 꽤 긴 망설임이 있어야 했다. 마침내 그 경험을 하고 난 이후론 한 달에 한번,  그 개운한 짓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신 베드 위에서는 세신사 아주머니의 바디 랭귀지도 잘 알아 들어야 한다. 먼저 몸의 앞면의 때를 능숙히 밀어내고 내 허벅지를 툭툭 치며 탁자를 한번 가볍게 터치하면 그건 옆으로 돌아누우란 소리다. 자칫 못 알아듣고 동작이 굼뜨면 세신사 아주머니의 바쁜 재촉이 날아올 수도 있다. 몇 번 경험 후엔 아줌마와 손발을 척척 맞춰 이리저리 뒤척거리고 나면, 몸 구석구석이 깨끗해지고 맨들 해지는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때만 개운하고 시원하게 밀어서만 그 맛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간혹 말 잘 통하고 뜻 맞는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면 그거야 말로 금상첨화다. 마침 운이 좋게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조그맣고 아담한 , 요즘엔 대형 찜질방에 기세가 눌려 다 없어져버린 골동품 목욕탕이 한 곳 있었다.
아담한 실내엔 보수 인테리어를 전혀 하지 않은 개장 초기의 낡은 실내가 야밤에 두엇 찾아드는 손님을 차분하게 맞아들이는 곳이다. 화장실 문짝은 아귀가 안 맞아 삐걱거리고 탈의실 바닥의 장판도 언제 적 무늬인지 가늠이 안되고 탕도 딱 한 개다. 다행이라면 아담한 찜질실이 있다는 정도의 조그만 동네 목욕탕이었다. 하루 벌이에서 일세 5만 원을 내고 남는 게 있을까 싶어 그곳을 지키고 있는 세신사 아줌마의 수입을 가끔 걱정도 하게 되곤 했다.

손 끝 매섭고 빈틈없는 야무진 손길로 불린 때를 동글동글 밀어내는 아주머니의 손끝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머릿속의 근심까지도 동글게 말아져 물에 씻겨나갔다. 새침해 뵈던 첫인상과는 딴판이게 경우 바르고 참한 말솜씨로 아들 둘을 서울대 보낸 경험담을 들으며 이말 저말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때를 미는 40분이 뚝딱 지나가곤 했다.

어제, 여름 한철 물 샤워와 대강으로 하던 집 목욕을 그만해야겠다 싶게 종아리에 허옇게 각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목욕 바구니에 목욕 용품을 넣고 삼각 봉지에 든 커피우유랑 빨대도 챙겨 넣었다. 목욕탕 방문의 마무리는  문을 나서며 빨대를 콕 꽂아 마시는 삼각 봉지의 커피 우유이다. 완벽한 채비를 마치고 반가운 걸음걸이로 총총 찾은 목욕탕이 없어졌다...! 대신 그곳엔 ㅇㅇ스파라는 이름으로 신식의 목욕탕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안온 석 달 동안 변해버린 목욕탕의 신식 시스템에 적응하며 들어선 탕 안은 너무 낯설었다. 그리고 열심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찾아봐도 시원하게 밀어주시던 그 아주머니가 보이질 않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싶게 낙담이 되었지만 그냥 돌아설 수 없었다. 억지춘향으로 처음 뵙는 낯선 분께 몸을 맡기는 40분이 길들여지지 않은 새파랗고 까슬한 타월 끝처럼 꺼끌꺼끌했다.

탕 밖을 나서는데 잘 만져지지 않은 피부결에 각질이 도로 하얗게 곤두서 있다. 바디로션 슥슥 묻혀 문지르며 그 세신사 아주머니를 만나러 새로 옮겨 가셨다는 미아리까지 가야 하나 싶고 잦아들지 않는 서운함이 가슴에 한가득이었다. 맘의 갈증을 삼각 봉지에 화풀이를 하게 되었나 보다. 빨대의 날카로운 촉을 봉지에 잘 조준했어야 했는데 힘이 너무 들어갔다. 구멍은 뚫리지 않고 빨대가 구겨졌다. 오늘은 커피우유마저 내 맘대로 되지가 않는 날인가 보았다. 목욕탕 문을 열고 나서는데, 가을 찬 바람에 오스스 닭살이 돋는다.  


빨리 찾아와 길게 머물다 가는 가을 공기에 오만 사람이 다 그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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