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한 그릇, 나눠먹을 곳 있으면 … 됐지 싶어요.

by 종이꽃

시댁에 가져갈 잡채를 만들던 중이었습니다. 잡채는 온 식구가 모두 좋아하는 최애 명절 음식이라 빠트릴 수가 없었거든요.


제가 만드는 집채는 만들어놔도 절대 불지 않아요. 면이 불지 않는 비결은 할머니에게 배웠는데 할머니는 그걸 어떻게 터득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유추해보면 잡채는 할머니 세대의 음식이 아니었던지라 할머니 역시도 이걸 만들면서 처음엔 고민이 많았던 거 같아요. 뻐싯거리는 철사 같은 면을 아무리 삶아도 자신이 원하는 보들한 면으로 변신시키는데 몇 번의 실패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지 잡채의 그 뻣뻣한 면을 함지박에 찬물을 붓고 담가 놓으셨어요. 아마도 마른나물을 물에 한참 담궈두었다가 삶는 원리와 비슷하게 생각하셨나 싶기도 합니다. 반나절 정도 지나면 면이 철사보다 빳빳한 고집을 내려놓고 부들부들 해졌습니다. 그걸 찬물부터 끓이기 시작하면 됩니다. 뚜껑 덮지 않고 넓은 궁중팬에 끓이는데 면이 투명해지기 시작하면서 냄비 가운데가 보글보글 끓어 올라오면 뜨거운 면 가닥 하나를 건져 먹어보면 압니다. 여기까지의 조리시간이 대체적으로 7-8분 정도 소요가 됩니다.


여기서부터가 아주 중요한데요. 보들거리며 찰져진 면을 얼른 큰 소쿠리에 부어서 뜨거운 물을 빼고 찬물에 입수시켜 줍니다. 면의 뜨거운 기운을 순식간에 빼주어야 잡채면이 보들 하면서도 탱글탱글 하답니다.


여기에 야채 볶아 넣고 간장, 설탕, 들기름으로 버무려주면 돼요.

저희 집 잡채는 기름에 볶지 않아서 더 담백합니다. 양념에 무쳐낸 잡채를 냉장 보관해두었다가 먹기 직전에 기름 살짝 두르고 흩뿌리듯이 젓가락으로 섞어 덥히면 방금 만든 듯 쫀득거리고 보들거리는 잡채 한 접시가 완성입니다.


저희 딸아이는 볶기 직전의 그러니까 방금 무쳐낸 차가운데 찰진 잡채를 아주 좋아해서 냉장고에 들어간 건 먹질 않아요.

그런 이유로 잡채를 만들고 나면 제일 먼저 딸을 불러서 잡채 한 접시를 먹이는 게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렸네요.


어제 오전의 잡채도 너무 맛있게 잘 만들어져서 딸아이 한 접시 먹이고는 포장을 하는데 뭔가 많이 허전했어요.


할머니가 잡채를 그렇게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할머니가 서울에 오시면 잡채를 꼭 만들곤 했었습니다.

이제는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슬프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그냥 생각이 난다… 그 정도 입니다.


시아버님도 제가 만든 잡채를 좋아해서 꼭 만들어가는데 포장 넉넉히 하고도 남아도는 잡채 그릇 앞에서 왜 이렇게 아쉬운 맘이 드는지 왜 허전한지 잘 모르겠는데 그때 현관문 밖에서 옆집 꼬마 아이 소리가 나더군요.

간 밤에 내린 눈이 쌓여 신이 나서 놀이터에 아빠를 데리고 나가는 인기척이었는데 그때 퍼뜩 알아졌습니다.


부리나케 문을 열고 나가서 옆집 아이 아빠에게 말을 건넸어요.


“태산 아빠! 잡채 좀 나눠줄게요! 접시 하나만 줘 봐요!”


아마도 얼떨떨했을 겁니다. 살짝 귀찮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을지도요.


잠시 엉거주춤 서 있다가 안에 들어가더니 접시 하나와 야채즙 서너 팩을 들고 나오더군요.

신이 나서 방금 만든 잡채를 한 접시 그득하게 담아 건네주고 들어오는 내 표정을 남편이 보더니 웃습니다.


“옆집 잡채 나눠준 게 그렇게 좋아?”


하는 표정이었어요.


예…. 나눠 먹으니까 그제야 맘이 행복했습니다. 한 접시 그게 뭐라고 옆집이랑 나눠 먹으니 그제야 맘이 펴졌습니다.


먹이고 싶은 친정식구들이 다 사라졌던 게 그렇게 손발을 차갑게 만들었나 봅니다. 음식 다 만들어놓고 왜 그렇게 뾰루퉁한 맘이 들었는지 그제야 제 마음이 알아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내 식구만 만들어 먹이는 일이 저는 별로 신나지 않아요. 여럿이 나눠 먹어야 그제야 직성이 풀리고 마음이 좋아집니다. 제가 음식을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제 내가 만든 잡채를 맛있다고 허겁지겁 드시던 할머니는 기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둘째 아이가 아파 시댁엘 못 갔다는 옆집엔 새벽부터 쿠팡 배달 박스만 세 개나 쌓여 있었거든요. 옆집에 잡채 한 그릇을 나눠주고서야 그제야 가뿐한 마음으로 시댁에 챙겨갈 음식들을 챙겼습니다.


잡채 한 그릇 나눠먹고 싶을 곳 있으면 된 거라 안위합니다. 친척이 별거냐 싶기도 합니다.

그 행위가 어제의 아침의 나를 아주 행복하게 해 줬으니 그거면 된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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