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이꽃 May 16. 2022

당신의 성년의 날은 어떤 풍경이었나요

주문받은 일에 따라 하루의 스케줄과 생체리듬을 맞추고 있는 요즈음엔 늦잠을 자는 일이 종종 생겼습니다. 지난주부터 새벽에 일을 해야 하는 일보다 오후에 움직여야 할 주문 예약이 많았거든요.


오늘 아침에도 달콤한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침 10시 즈음에 하도 여기저기도 ‘카톡’이 울려대길래 귀찮은 파리 쫓는 기분으로 잠이 깨었습니다. 광고성 카톡과 단톡방의 카톡을 한참이나 정리하고 났더니 학교에 간 딸이 가족 단톡방에 인사를 보냈습니다.


“오늘 성년의 날인데 왜 아무도 축하 안 해줘?”


잠시 마음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공감하지 못했는데 공감한 척을 거짓으로 하려니 그 거짓말이 탄로가 날 거 같았거든요. 마음에 들었던 생각은 성년의 날이 그리 크게 별일로 취급되어야 할 기념일이었던가란 생각과 더불어 딸의 축하받고 싶은 마음에 공감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 생일도 축하를 받아야 하는 게 너무 쑥스러워서 생일 축하 메시지도 외부에선 받기가 싫어서 카톡 메신저의 프로필도 비공개로 해 놨거든요.


딸의 기념일에 진심으로 축하를 해줘야 맞지만 생일 이외엔 그리 크게 호응이 일지가 않아서 좀 미안하긴 했습니다.


관계의 동상이몽은 인생사에 늘 등장하는 필수품이라 딸의 마음은 성년의 날이 굉장히 기쁘고 축하받아야 할 일이고 나의 마음으로는 그냥 그날은 달력에 표기되어 있는 그저 그런 날일 뿐이었으니까요.


난 뭐든 내가 진심이어야 단전에서부터 기쁨이 차 올라와 타인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데 내가 기쁘지 않은데 어떻게 축하를 줄 수 있나 싶었던 거죠.


그래도 축하한다고 말은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 말도 덧붙였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밍숭 밍숭 해서 미안하다고요.


늦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점심을 혼자 차려먹고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베란다 작은 화분에 심은 상추 모종에서 상추를 솎아내며 계속 생각했습니다.


성년의 날이 스무 살에겐 기쁜, 정녕 기쁜 날이었던가? 싶어서요.

이기적인 인간이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려면 나의 스무 살 그날이 어땠는지를 기필코 떠올려봐야 했습니다.


난 그날이 기뻤던가 하고 말이죠.


나의 스물한 살의 성년의 날, 그날의 풍경은 있었던가?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억해냈습니다.


그날, 나도 딸처럼 축하받고 싶어 했단 게 생각이 났어요.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동료들은 남자 친구들에게 장미 꽃다발을 받을 거라고 들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친구는 남자 친구에게 반지를 받을 거라고 자랑을 했던 거 같아요. 반지를 받아야 하고 장미 꽃다발이 있고 특별한 외식이 있는 그녀들의 성년의 날이 살짝 부러웠던 저는 불광동 작은 삼촌 댁으로 놀러 갔습니다. 그곳에 마침 할머니도 시골에서 올라와계셨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떼였는데 제가 작은 삼촌에게 나도 친구들처럼 반지를 선물 받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남자 친구도 없고 부모도 없는 내가 그때는 제일 편하고 만만하게 떼를 쓸 수 있는 어른이 작은 삼촌이었거든요. 당연히 안될 일이었죠. 한참이나 졸랐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할머니가 바지 속주머니에 있던 지폐 몇 장을 꺼내더니 삼촌에게 주시더라고요.


할머니도 도대체 손녀딸이 반지 받고 싶다고 우기는 성년의 날이 뭐였는지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는 모르셨을 겁니다. 다만 그냥 하도 졸라대는 큰손녀가 안쓰러웠을 뿐 그녀도 성년의 날이 뭐길래 반지를 줘야 하고 장미 꽃다발을 선물 받아야 하는지 의아했을 거예요


그때 순금 반지 한 돈의 가격이 4만 원이 안 됐을 겁니다. 어이없어하던 삼촌이 할머니의 돈을 받아 들고 나를 자전거에 태워 불광동 어느 금은방에 들어가 반지 한 돈의 금반지를 맞춰줬습니다.


왜 그렇게 신이 났었는지 그때의 나는 그날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었을 겁니다. 다들 저렇게 받는다는데 나도 그런 사회에서 규정한 기념일을 아는 척하고 싶었을 뿐이었을지도요.


손가락에 끼워진 순금  돈의 반지를 보며  없이 굴었던 그날의  행동을 여태 한 번도 추억해 보지 않았었는데 딸의 기념일 타령 덕분에 기억의 수장고에 갇혀 있었던 추억오늘에야 꺼내어 들여다보았습니다. 빛바랜 추억인데 흠칫 하며 웃음이 조금 나오기도 했습니다.


나도 돌아볼 성년의 날의 추억이 있었는데 정작 나의 딸에게는 성년의 날에 제대로  선물 하나  주는 것도 심드렁해하고 있었네요. 그게  별거라고싶었는데 그게  별거인 딸에게는 엄마의 무심함이 서운할 수도 있겠다 습니다만 그런데 저는  글을 쓰면서도 아직도 단전에서부터 진심으로 순수 결정체의 기쁨으로 축하인사는  나옵니다.


성년의 날은 왜 생겨가지고 … 하는 조금은 성가신 마음이 좀 더 큽니다.

생일도 아니고 이게 그렇게 크게 기쁠 일이냐 싶은 마음을 누르고 남편에게 딸에게 줄 용돈을 보내달라 부탁했습니다.


성년의 날이라고 요란스레 뭔가를 해 주는 일 보다 내 마음에 더 시급하게 떨어진 숙제는 딸이 의문을 제기한 엄마와의 건강한 거리 유지가 도대체 어떤 건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마음이 꽉 차 있는 중이라서요.


기념일이 대수가 아니고 딸이 평생 엄마 때문에 힘들었던 삶의 조각이 있었다고 고백을 하였던 터라  그걸 편히 해주고 싶어서 생각이 많아졌거든요.


정작 정말 더 중요한 건 딸이 성년이 되었다고 챙겨주는 기념일의 선물보다 딸이 성인이 된 걸 정확히 인지하고 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엄마가 되는 일일지도요. 빈 둥지를 체감하고 이제는 먹이를 물어다 줄 필요없는 딸이 성인이 된 걸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이 성인의 날 기념선물 보다 더 중요한 거 같아서… 오늘도 산에 올라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서 서촌 나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