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거의 매일 오르다 보면 정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주 보게 되면 저분이 또 오셨구나 하고 그냥 인지만 하고 말게 되는데 독특한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처음엔 그분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는데 어느 날엔가 산엘 또 나만의 생각에 빠져서 혼자 집중하고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처럼 훅 머리 위로 낯선 인사가 떨어지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분은 내려오고 있었고 저는 올라가고 있었는데 머리 위로 툭 떨어진 거죠.
“조심히 올라갔다 내려가세요”
그 소리에 왜 그렇게 깜짝 놀랐나 모릅니다. 엉겁결에 예예 인사를 하고 지나쳤는데 그러고도 자주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산악용 선글라스를 끼고 등산가방까지 군장 꾸리듯 메고 매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마주치는 할아버지의 그저 그런 행인에 대한 인사가 왜 그렇게 불쾌하게 느껴졌는지 오래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그 할아버지를 자주 살펴보게 되었는데 특징이 있었습니다.
4,50십대의 중년 여자들에게만 말을 걸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중턱에서 쉬며 보게 되었는데 자주 그런 식 으로 여자들에게만 인사를 걸고 인사치레로 답례인사를 하게 되면 그분을 상대로 끝없는 수다를 하더군요.
제가 그분의 이야기를 남편과 딸에게 했더니 남편은 그게 뭐 대수 나며 저를 타이르더라고요.
“아니 너도 아파트 주변 놀이터에서 애기들 보고 인사하잖아. 그런 거랑 뭐가 달라? 예의 바르게 인사받아주고 지나가면 되지”
그런가 보다 싶기도 했는데 왜 그렇게 저는 그 할아버지의 인사가 싫었나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 작은 사달이 났습니다. 사달이라기보단 작은 실랑이나 다툼 정도이겠네요.
그날도 산에 오르며 생각을 정리하고 걷고 있었는데 또 그 할아버지가 어느샌가 나타나 인사를 텀벙 던지더라고요.
순간 너무 짜증이 났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꼭 얘길 해줘야겠다 싶었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한데요. 인사 좀 안 하시면 안 될까요? 제가 산길 걷다가 깜짝깜짝 놀라서요. 산에 왜 오세요? 저는 혼자 있는 게 좋아서 와요. 그리고 조용히 생각하려고 오는데 딴생각하고 걷다가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시면 너무 깜짝 놀라게 돼요”
굉장히 무례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일 년이나 참았더니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속에는 그 할아버지가 별로 좋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인상이? 느낌이? 분위기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나는 그 분과 절대로 친해지고 싶지가 않다는 강한 거부감이 드는 게 더 컸을 겁니다.
지치지도 않고 대꾸도 안 하는데 매일 인사하는 할아버지가 싫었습니다.
할아버지 반응이 어땠냐고요? 난리가 났었습니다. 길에서 사람을 마주하면 인사를 안 하는 예의를 어디서 배웠냐더군요.
사람보고 인사도 안 하냐고 그걸 왜 못하게 하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시길래 참고할 말 다 했습니다.
“진짜 죄송하지만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시면 갑자기 겁도 나고 순간 놀라고 불쾌해집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보시면 그냥 지나쳐주세요!”
내가 당신 싫으니 제발 나에게 인사 좀 하지 말라는 소리를 완곡하게 표현하고는 그다음 날부터 그 할아버지가 출현하는 오전에는 산엘 가지 않고 오후에 산에 가고 있습니다.
산에 오며 가며 저는 아직도 그 일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모른 척할 수도 있는 일을 그렇게 꼭 사람 기분 나쁘게 했어야 했나 싶은데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아니 한 두 번 해보고 상대방이 인사를 안 받으면 싫은가 보다 하고 넘어갈 일이지 저렇게 끝없이 아는 척을 할 일인가 하고 짜증이 났었거든요.
그 할아버지의 논리대로라면 길 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산을 다니기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되어가지만 그렇게 산에 오르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을 보질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후의 일입니다. 산에서 내려가는데 미소년의 학생이 올라오면서 저를 보고 꾸뻑 인사를 하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얼른 자기 갈길을 가더라고요. 내가 아는 사람이었나 싶었는데 모르는 얼굴이었고 모르는 학생이었어도 인사하는 게 기특해서 에고 그래 조심히 올라가라 하고 인사를 해주고 싶더라고요.
헛…! 이것은 무슨 앞 뒤 안 맞는 처사인가 싶은데 그런 맘이 들었습니다.
요즘 잘 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 그런 대사가 나옵니다.
“똑같은 인간을 놓고도, 사랑하지 못할 이유 천 가지를 대라면 대고, 사랑할 만한 이유 천 가지를 대라면 또 대.
염창희 몰라? 정아름 서클 낀 것 까지도 욕하는 거.
나를 사랑하는 이유 천 가지에도 서클렌즈가 들어가고, 정아름을 미워하는 이유 천 가지에도 서클렌즈가 들어가.
이유 같은 게 어디 있냐?
그냥 좋아하기로 작정하고, 미워하기로 작정한 거지.”
저는 그 할아버지를 미워하기로 작정했던 게 맞을 겁니다. 뭐야… 저 할아버지가 나의 시간을 방해했어! 봐봐, 젊은 여자들한테만 인사하잖아!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할아버지의 매일 인사가 그렇게 싫었던 거였나 봅니다.
저는 그 할아버지를 경험하고 나서 동네 놀이터에서의 오지랖을 끊었습니다.
유모차에 탄 아기들만 보면 예뻐서 말을 걸었었거든요. 그런 내가 어떤 아줌마는 너무 격하게 싫을 수도 있을 거라고 처음으로 깨달아진 현자 타임을 가져 본 계기가 되어준 일이었던 거 같습니다.
너 인간 차별하냐??? 욕을 들어도 별 수가 없는 일화입니다.
이 모습이 저의 또 다른 마음의 밑바닥이기도 합니다. 사람 좋고 싫은게 인력으로 안되는게 맞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