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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Jun 01. 2022

질문! 갱년기가 맞는 걸까요?

#1.

어제 일입니다. 뒷산에 올라  시간 산책을 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버찌 나무 위에 올라가서 중년의 아저씨가 버찌를 한참이나  먹는 광경이 눈에 보였습니다.  밑에서 일행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나무에 위태롭게  있는 아저씨에게 버찌를 따달라고 조르더군요.


그냥 지나치려다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너무 불쾌한 감정이 자리잡기 시작하더라고요. 화가 났었습니다. 나무가 불쌍해서요. 웃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순간 장년의 아저씨에게 위태롭게 자기 몸을 내 맡기고 짓밟히고 있는 나무가 애처로워서 내 등이 아픈 거 같은 느낌마저 들어서 그 아저씨에게 순간 고함을 지르려던 걸 겨우 참았습니다.


일단 그 행동을 저지하려는 내가 그 들에게는 비상식적으로 비칠 수 있었고 야산의 나무에 올라 버찌를 따먹는 행위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거든요. 에라 모르겠다 지나치려 했는데 다시 돌아와 그 나무 앞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으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저렇게 계속 나무 위에 올라서서 버찌를 따먹는 시간이 경과가 되면 나뭇가지가 부러질 듯 위태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112에 전화를 했습니다. 물어보려고요.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의 산림을 훼손하는 일이 맞는 건지 굉장히 의아한 생각이 들었고 그게 맞다면 제가 당장 그 행동을 제지하고 싶었거든요. 112에 물어본 결과 그 장면은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산림훼손이 맞고 그런 행위를 하면 법에 저촉이 된다고 하더군요.

경찰이 출동해서 그분들을 제지하겠다고 하길래 그냥 신고하지 않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런 일에 경찰까지 동원해서 저 사람들에게 혼을 내줘야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기도 했거든요.


한참을 그분들을 노려보다가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걸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돌아서서 집에 올 수 있었어요. 그 일을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좀 과민하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뭐 별거라고 보안관 행세를 하냐는 거였습니다.


허긴, 저도 예전엔 남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너무너무 거슬리고 그 사람들을 꼭 제지하고 싶은 마음이 욱 하고 올라왔었습니다.


#2.

오늘, 초저녁에 있었던 일입니다. 종일 일정이 바빴습니다. 점심엔 자식 얼굴 보고 싶어 하시는 시아버님 성화에 시댁엘 반찬 싸들고 달려가서 점심을 먹고 와야 했고 가족들과 같이 백화점에 가서 쇼핑도 했던 하루였습니다. 그랬는데도 저녁에 동네 산책이 하고 싶어서 남편과 함께 동네의 산책길을 돌아다니다가 단골 두부집에 들러 저녁을 시켰던 참이었습니다.


콩국수 한 그릇을 시원하게 먹고 일어서려는데 건너 자리에 세 식구가 앉더라고요. 그런데 또 순간 제 의식을 불편하게 하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를 안고 있고 그 건너에 아내가 앉아있었는데 안고 있는 딸의 발에 구두가 그대로 신겨있었습니다.

좌식으로 앉을 수 있는 식당이었고 신발을 그대로 신고 있는 아이에게서 신발을 벗겨주려는 의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아이의 아빠에게 순간 신경질이 났었습니다. 왜 공공의 장소에서 그것도 식당 안에서 저런 매너를 보이는 걸까 싶어서 화가 났는데 이런 하찮은 화는 그냥 무시하고 식당을 나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못 참겠는 거예요.


남편이 그런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걸 너무 싫어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못 참고서 기어이 한 마디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선생님, 여기는 공공장소인데 아이의 신발은 벗겨주시는 게 맞을 거 같아요"


그 소리에 얼른 아이의 흙 묻은 구두를 벗기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식당을 나온 남편이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넌 왜 그렇게 매사 그런 일에 모른 척을 못하고 상대방에게 무안을 줘야 하냐고 하더군요.


무안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뭐라고 하고 싶었거든요. 아니 왜 신발을 신겨서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오는 거야, 아이의 신발이면 괜찮은 거냐고!

그래도 말투도 정중하게 했고 선생님이란 호칭도 붙였고 말씨도 예의 있었으니 된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때 남편의 화에 순간 무안해져서 그 시각부터 지금까지 서로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3.

요즘 이런 일이 부쩍 많습니다. 그냥 지나치질 못 합니다. 화가 욱하니 올라와서 꼭 그 사람에게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겁니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게 갱년기 증상인지 싶어 궁금해집니다. 왜 그런 건지, 나만 이러는 건지, 누가 나도 갱년기 시작 즈음에 그런 감정을 겪었노라고 타인의 경험을 들을 수 있다면 위안이 좀 될 거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연락을 끊어버린 옛날 지인 한 분이 생각이 납니다. 그분이 제 나이 때에 저를 좀 많이 괴롭게 했던 일화가 많았습니다. 부쩍 까탈스러워졌었는데 특히나 만만한 저한테 무척이나 심했던 거 같습니다. 그냥 모든 일이 매사에 토를 달았습니다.

하다못해 열무김치를 알려달라고 전화를 해서도 제가 알려주는 레시피에 그런 반문을 했습니다.


"아이고야, 열무를 그렇게 절인다고야?"


그러면 저는 너무 억울해지는 상황이 되곤 했습니다. 열무김치를 담아 판매를 하는 일로, 음식을 만들어 타인에게서 돈을 받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귀한 경험을 열심히 열을 내며 알려줬는데 순간 그 한 마디에 비웃음을 당한 거처럼 열없어지곤 했습니다.

사소한 일이 트리거가 되어서 그 분과 심하게 다투고 그 이후론 아예 연락을 하고 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제 모습이 그때의 그 지인을 닮아 보이기도 합니다.


너무도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고 싶어지고 마음이 불편해져서 꼭 바로잡고 싶어 하고 쉽게 억울해하고 쉽게 화를 내고... 그리고 아주 작은 다툼에도 땅이 꺼질 듯이 허무해하곤 합니다.

자식은 이미 커서 내 둥지를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그 상황도 한참이나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산에서 내려오다가 비슷한 연령의 딸을 키우는 친구와 전화를 하며 대성통곡을 했었습니다.


"야!, 이게 그렇게 슬플 일이야? 이게 이렇게 슬플 일이냐고! 자식이 다 커서 연애좀 한다는데 그게 그렇게 내가 외롭고 서글플 일이냔 말이다!"


동네 통반장의 직무라도 맡은 것처럼 나무에 올라가 버찌를 따 먹는 아저씨가 못내 괘씸하고 식당에 신발을 신겨 들어온 젊은 부부에게 꼭 옳은 소리를 해야 하고 아파트 재활용처에 잘못 버려진 이불더미에 쓸데없이 분개하는 이 아줌마의 나이는 마흔여덟이랍니다.

폐경도 되지 않았고 아직 갱년기라 불리기엔 멀어 보이는 아줌마라 생각했는데 이런 증상들, 갱년기라 생기는 감정의 변화일까요? 화를 잘 참지 못하는거 갱년기의 감정상태가 맞는 건가요? 꼭 늙은 사춘기를 경험하고 있는 거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나온 인생을 산에 앉아 몇시간이고 돌아보는 시간도 많아집니다. 눈물이 평소보다 더 많아진 건 말하는게 입이 아플 지경입니다. 자식의 커가는 감정도 잘 이해가 되질 않아서 자주 되묻습니다.


"지금 네가 한 말이 잘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자세히 설명 좀 해줄래?"


그럼 딸이 굉장히 놀래고 답답한 표정을 짓는데 저도 같이 답답해지곤 합니다. 정말 지금 내 앞에서 나에게 자기 감정을 알아달라고 열변을 토하는 딸의 마음이 제대로 이해가 되질 않는 일도 요즘 자주 생기곤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감정회로가 가끔 먹통이 되는 일을 경험해야 하는 건지도 궁금합니다.

영민하고 세밀하게 타인의 감정을 살피던 제가 점점 사라지고 내 본위의 감정이 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요즘의 나의 모습. 이거 갱년기라 그런거지요?


너무 궁금해서요.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어서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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