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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Apr 01. 2020

저승길 가면서도 인심은 울타리에 걸어놓고 가야 허니라.

누룽지. 아린 속을 풀어내다.

2015년. 11월 24일의 기록.

순한 누룽지 생각이 간절해서 내가 먹고 싶어서 한 사발 끓여봤다. 며칠 시끌시끌한 마음이 구수한 숭늉 마시고 좀 가라앉길 바랬다. 오기로 분기탱천한 나를 할머니가 차분하게 타이르셨다.

“작은 어메가 그런다고 너도 똑같이 욕하고 글지 말어라잉? 옷이야 막내가 사준다고 안 허냐. 사납게 맘먹어봐야 니 손해고 그리고 교회서 예수님이 뭐라고 가르쳐주더냐. 원수도 사랑하라고 안 허냐? 나는 이제까적 웬수 만들어놓고 산적도 없고 나한테 서운하게 헌 사람도 다 잊어뿔고 내가 된장 한 덩이라도 더 퍼줬니라. 죽음서도 인심은 울타리에 걸어두고 가라고 혔다.


아래꺼티 용범어메 알 지야? 그 용범어메가 살아서도 사납고 성질이 불 일어 나드끼 사람들하고 싸우고 살드만, 죽고 나서도 동네 사람들이 뭔 일만 있음 용범 어메
욕하고 안그냐? 그니까 당최 너는 니입에 작은어메 욕도 올리지 말고 서운하게도 생각하지 말고 민주 결혼식이나 좋은 맘으로 축하해주고 말어라 “

할머니 옷 한 벌도 안 지어주고 큰딸 시집보내는 작은엄마가 너무 얄미워서 할머니에게 항의를 했더니 그 항의 끝에 들은 잔소리가 삼십 분이었다.
아무리 시집식구가 얄미 시러도 그렇지 청첩장 한 장을 안 돌리고 문자로 통보해버리는 것이야 요즘 추세가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돌아서는데 큰딸 시집보내면서 우리 집 큰 어른이신 할머님 옷 한 벌은 지어드려야 하는 거 아냐? 싶어 화가 제대로 났었다.

노령연금 45만 원 받는 것 중에서 절반을 헐어 삼 년 적금 넣은 큰돈을 할머니는 작은 엄마를 주고 나선 그리 행복해하셨었다. 그런 노인에게 옷 한 벌이 그리 인색할까 싶어 분이 나서 못살겠는데 할머니는 기분 한올이 흐트러지지가 않으셨다.

‘저승길 가면서도 인심은 울타리에 걸어놓고 가라니’... 세상에 오 마이 갓. 소리가 절로 나오는 대목이었다. 확 지펴진 불이 쉽게 꺼지지가 않아 속이 아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말의 효과가 참 묘했다.

순하고 뭉근하게 뱃속에 퍼지는 누룽지의 약효처럼 꼬인 위장을 풀어내 주는 누룽지 같은 할머니의 교훈이다. 할머니는 도대체 그 소리를 어디서 들으신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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