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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Apr 02. 2020

너무 늦은 소감일까요? <곡성>에 대한 뒤늦은 감상.

2016년 5월 20일의 기록.

영화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비슷한 탄식이 터졌습니다. 아?! 이거 뭐지? 란 웅성거림을 들으면서 저는 혼자 흥분을 숨긴 채 극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영화를 본 누군가와 내가 찾아낸 숨은 그림이 뭔지 알려주고 싶고 토론이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말이 도대체 뭔가요? 하고 당장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궁색하기도 합니다.
만약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코미디라고 얘기해준다면, 또는 의심이 만들어낸 지독한 우화라고 얘기해준다면 식자층이 되고 싶어 하는 허영기 많은 아줌마로 비웃음을 살지도 모를 일이지만 두 번이나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말한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말에 깊이 공감이 갔습니다.

그 장면 기억하시나요? 날짐승을 뜯어먹는 악마의 모습을 한 일본인을 진짜로 목격한 게 맞냐고 물어보러 간 종구에게 건강원 주인은 자신 있게 얘기합니다.
"내가 증거도 없이 그럴 줄 알죠? 증거 있슈! 자 봐봐요 깜짝 놀랄 껴!” 깜짝 놀랄 증거가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뒤로는 산에 아예 가지를 않아서 냉장고가 텅 비어있다는 사실은 건강원 주인에겐 증거이고 듣는 사람에게는 믿거나 말거나한 우스운 상황이었습니다.

종구와 동료 경찰에게는  마을에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원인이 이미 과학적인 증거로 제출되어 있었습니다. 독버섯으로 생겨난 환각증세라고 국과수에서 결과가 나왔지만 마을 사람들도 종구도 그 정답지를 믿지를 않습니다. 마을에 수상한 이물질의 투입, 타인의 침입으로 부정하고 괴이쩍인 일이 생기는 거라 믿고 싶어 하고 그 믿지 못할 소문의 실체를 찾아다니다 의심의 미끼를 꿀꺽 삼켜버리게 됩니다.
'뭣이 중한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캐러 다니는' 종구에게 딸의 병증은 확신이 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병을 낫게 하려고 몸부림칠수록 극 중의 사건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내리막의 차량처럼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영화 안에는 나를 닮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집 밖의 무서운 사건들이나 재해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어야 하면서도 늘 구경꾼으로 서성이면서 뭔가 더 흥미로운 원인이 있을지도 모를 거라 옆집 이웃과 떠들어대는 사람 말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종구가 딸을 호통치듯 안타까운 듯 애가 끓게 부르는 모습에서 가슴이 탁 막히더니만 영화가 끝이 나 버렸습니다. 결국 어떤 해답도 찾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해버린 종구를 또 다른 구경꾼인 일광이 와서 조롱을 하듯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떠나버립니다. 평온한 아침 풍경을 맞지 못한 가족의 집에는 어슴푸레한 새벽의 공기와 피비린내만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그 영화의 시원치 않은 결코 영화 같지 않은 불확실한 결말에 답답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큐 같은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마감된 결말에 꽤 실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모든 드라마나 모든 영화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를 완성시켜줄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혼자서는 제대로 설 수가 없어서 어디서든 정답을 듣고 싶어 하는 약한 인간이 정해진 길에서 탈선되었을 때 순식간에 부서져버리는 모습을 종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의 중반에 딸을 낫게 하고 싶은 종구가  무속인 일광을 통해서도 딸의 병증에 차도가 없자  신부에게 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신부가 종구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감독이 관객에게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소문을 믿소? 어찌 직접 보도 않고 그리 확신을 하시오”

아주 오래간만에 제대로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한 저녁입니다.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당신이 생각한 결말은 어떤 건가요?

ps. 영광스럽게도 영화의 작은 주인공, 환희 양과 딸이 같은 반이었습니다. 딸에게 팬이라며 사인 좀 부탁했더니, 다이어리에 받아와서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환희 양은 정말 귀엽고 착한 학생이었어요~ 작은 체구에서 그런 연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오래도록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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