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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Apr 05. 2020

찰흙 송편


토요일 밤, 오랜만에 집에 놀러 온 동생과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마 전 티브이로 봤던 드라마 얘기를 했던 거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란 드라마가 예전 게 더 나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나는 치매노인이 제일 안됐더라고 얘기를 했더니 동생이 들려준 이야기가 적지 않게 놀라웠습니다.


“언니야, 우리 교회에서 양로원 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여전도회에서 같이 봉사를 다니거든.  네가 그랬잖아, 치매 할머니들 안됐다고. 그런데 내가 봤을 때는 안 그렇더라... 오히려 치매에 걸려서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해버리면 속 편해, 염치도 체면도 치매에 다 묻혀서 잊어버리거든.

그냥 애기가 되는 거야. 그런데 어느 날은 치매 할머니들한테 찱흙을 나눠줬거든. 손으로 조물 거리며 뭘 만드는걸 좋아들 하셔. 그런데 그 양반들이 모든 기억이 다 사라졌는데도 신기하게 다들 송편을 빚고 계시는 거야.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들 각자 생김 데로 송편을 만드시는데 어떤 건 새색시처럼 이쁘게 만들고 어떤 건 주먹처럼 크게 만들어놓고 가지각색이야. 형태가 모두 다른 송편 만들기 시간이 끝나니까 할머니들이 뭐라 그랬는 줄 알아? 자 이거 얼렁 쪄와라 , 이러시더라니까?

나름 요양원이나 양로원도 시설이나 관리가 잘되어있는 곳을 봐야겠지만 치매노인들이라고 다 안쓰러운 게 아니더라고. 오히려 그 양반 들은 편허시겄더라니까”

오히려 그걸 바라봐야 하는 자손들은 가슴이 메어지고 안쓰러울 일이지만, 치매에도 심각한 정도와 그 증상이 매우 다르겠지만 아이가 되어버린 정서로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나름 재미있게 사신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후퇴하였지만 몸에 밴 기억은 어쩔 수 없이 남았는지 나눠준 찰흙으로 다들 송편을 빚고 계시더라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봄이 퍼드득 거리며 사방에서 날갯짓을 하는 듯 화창한 날인데 놀러 가고 싶은 맘을 누르며 식구들 밥을 해 먹이고 어제저녁 동생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기록해둡니다.

ps. 사진은 글쓰기 수업의 동기중에 프로 사진 작가선생님이 한분 계시는데 그 분의 허락하에 한장 공유해봅니다.  (장소는 북서울 꿈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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