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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Jun 13. 2020

방망이질 세례를 멈추게 해야해!

“쿵! 쿵! 쿵!” 1층에서 방망이질 세례가 또 시작이 되었다. 그 소리의 정체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옆집, 혼자 사는 총각네와 감정싸움으로 번져버린 층간소음에 열이 받을 데로 받은 1층 107호 아줌마의 방망이 세례질 소리였다. 한 달 전부터 저녁 11시만 되면 일주일에 서너 번씩 쿵쿵거렸다.

워낙 두 집의 첨예한 싸움이 볼만한 구경거리였던지라 옆집인 내가 그 재미난 싸움을 놓칠 리가 없었다. 새벽 6시에 올라와서 시끄럽다고 소리 지리는 1층 아줌마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12시 가까이 되어 침대에 나사가 빠졌다고 드릴을 사용하는 207호가 이상한 건지 판가름이 나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이기심이 쌍벽을 이뤘다.

고성이 오가다 경찰차가 두 번 왔고 그러다 방망이로 천정을 두드리게 되었는데 방망이가 한번 행차하면 207호에만 가격이 되는 게 아니라 206호 우리 집과 208호 옆집과 306호 윗집에도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어느 날엔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현관문을 나가니 208호 아저씨가 나와서 한숨을 쉬고 있고 어느샌가 207호 이기적인 총각도 나와 세집이 복도에서 간이 반상회를 하게 되어버린 적이 있다.

“ 처음엔 저도 잘못이 있어서 조심하려고 슬리퍼도 신고 다니는데 이제는 밥만 먹으려고 식탁에 앉아도 방망이가 쿵쿵거려요. 지금도 밥 먹고 있는데 소리가 들렸던 겁니다”
옆집 총각의 말이다.

“ 아니 , 우리 집도 시끄러워서 애가 깹니다 제가 한번 가서 따질까요?”
208호 아저씨의 말이다

“ 정말 미치겠네요, 처음에야 207호 총각 탓도 했지만 생활소음은 어느 정도 참아줘야죠...!”
나의 격양된 말이다.

결론 없는 간이 복도 반상회를 연지 사나흘 뒤였다. 이제는 위층인지 옆집인지 모를 5살쯤 아이가 쿵쿵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나의 뇌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새벽 1시까지도 이어졌다. 참기를 삼 주째 정도 하다가 윗집에 두 번 정도 올라가 봤는데 돌배기 지난 아이를 키우는 새댁이 아주 강경하게 자기 집은 아니라고 했다. 무안해져서 내려와 소음의 정체를 찾으려 복도를 서성이다 범인도 못 찾고 두통약만 없애던 중 어제저녁에는 소음이 절정에 달했다. 기어이 이 소음의 정체를 찾아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게 자정까지 아이가 아주 신나게 정글의 타잔처럼 뛰어다녔다.

싸움 못하는 남편을 3층으로 올려보내서 정중하게 얘기를 하게 했더니 남편이 돌아와서 절대로 3층은 아니라고 손사례를 친다. 내가 올라가면 진상파악 전에 3차 대전이 일어날게 빤해서 순한 남편을 올려 보냈는데 남편이 진심으로 아닌거 같다 하니 더 답답해졌다.
이걸 어쩐다... 이 소음을 이제는 견딜 수가 없는데 싶어 끙끙거리다 파카 입고 혹시나 싶어 1층엘 가봤더니만 어이쿠!! 바로 이 집이다.

범인은 106호, 5살 꼬마 아이였는데 어찌나 하이톤의 높고 이쁜 목소리를 가졌는지 문을 열자마자 폭포수처럼 나에게 소음의 정체가 와락 안겼다. 아이 엄마는 12시가 넘었는데도 아이를 신나게 뛰어다니게 하고 거실에서 소주를 드시고 계셨다. 기분 좋게 취하신 어린아이 엄마를 붙잡고 순간 일본 사람으로 빙의가 돼서 아주 아주 공손하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드라마의 공손한 일본인 오바상(아줌마) 캐릭터를 많이 봐 두길 잘했다 싶었다.

“ 아이고 , 애기 어머님. 1층에서 소음이 올라올 거라곤 저도 상상을 못 해서 애꿎은 3층만 갔었는데 오늘은 너무 답답해서 내려왔던 참입니다. 어제는 1시에 안방에서 레고 가지고 노셨지요? 레고 맞추는 소리도 심야에는 다 들리고 12시까지 뛰어다니고 노래 부르는 이쁜 아드님 목소리도 너무 생생하게 들립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져서 진짜 부탁 좀 드릴게요. 저녁 10시 넘어서는 아이가 조용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제는 예민해져서 수면제를 먹고 잤어요”

소음의 정체를 알게 돼서 너무 속이 시원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꼬마 아이의 경쾌한 발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야 했다. 1층에서도 소음이 벽을 타고 2층으로 3층까지 퍼질 줄은 처음 알았던 것이다.

이 노릇을 어찌할꼬 싶었다. 2층에 대항하느라 방망이질을 하는 107호 아줌마도 한번 만나러 가야겠고 자정이 넘어도 아이를 재우지 않는 106호 새댁과는 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 얼굴을 마주하고 달디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목을 도모하면 서로의 고통이 감가상각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106호, 107호!! 딱 기다리삼!! 곧  이쁜 조각 케이크 한 개씩 들고 가정방문해드리겠습니다!!
친하게 지내자고요!!
소음에서 해방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ps.  이 글은 작년 겨울에 써 두었던 글입니다.  저는 진짜로 그 두집을 빵과 커피를 사 들고 방문하여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후 방망이질도 멈추고 이기적인 207호의 야밤의 소음도 중단이 되었고 106호의 아이도 뛰어다니는걸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의 결말은 해피엔드였습니다. 커피와 쿠키와 빵이 방망이 전쟁을 멈추게 해 줄 수 있었습니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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