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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Jun 10. 2020

슬픔도 숙성시켜보겠습니다.

아... 좀 부끄럽기도 해요.


일요일 낮에 아빠에 대한 추억의 글을 올렸다가 하루가 지난 후 월요일 새벽에 그 글을 지웠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글에 울음이 가득 차서 자기 연민에 가득한 우울한 글이었더라고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피곤했을까 싶었는데 고맙게도 저를 응원해주시려고 열다섯 분이나 라이킷을 눌러주셨습니다.


아빠가 교통사고 후 두 달은 큰일이 나긴 났는데 실감이 안 났거든요. 지금은 중환자실이니 일반실에 나오시면 괜찮아지실 거야...라고 굳게 믿고 있다가 막상 일반실에서 콧줄을 끼고 엉엉 우는 아기가 된 아빠를 보니 가슴이 무너졌었어요.

너무 슬퍼서 한 이틀을 ‘울음 홍수’에 갇혀 있다가 오늘에야 좀 괜찮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에 제가 올린 글을 지우면서 마음 굳게 다짐한 저의 원칙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무리 쓰고 싶어도 너무 깊은 슬픔은 숙성의 시간을 가진 후 신중하게 써보기로 말입니다. 후루룩 무너져 내린 마음으로 글을 쓰는 건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독자님들에게 예의가 아닌 거 같았습니다.


오늘 저녁에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고객님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생활 속 사람 냄새나는 글 너무 좋아요
근무하고 힘들 때 슬쩍 훔쳐보듯 카스 글 보며 위안받고 했답니다

백퍼 공감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고 위안받아요
자주 들어가 볼게요
많이 올려주세요”


저의 글에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고 위안받으신다는 고객님의 카톡에 제 글에 기분 좋은 거룩한 책임감을 한 스푼 얹어보려고 합니다. 아빠의 투병기가 어느 형식으로든 끝이 나고 제가 맘이 많이 추스러졌을때 우리의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아빠의 모습을 다시 그려보겠습니다.


좋은 글 쓰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슬픔도 담담히 읊조리는 그런 글이고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고 위로받는 솔직한 글입니다.

아빠가 아프신 게 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도 아니니 그 일 역시 담담히...인생은 이런 거지 하며 살아보겠습니다.


슬픔도 숙성시킬 줄 아는 좀 괜찮은 작가가 되도록 글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아빠의 글에 응원해주신 열다섯분의 독자님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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