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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Jun 03. 2020

머윗대 볶음, 징하게 먹고 싶던 날.

참 신기한 일입니다. 5월이 되면 마트에 머윗대가 나오길 시작하거든요. 그걸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매번 머윗대 앞에서 서성이며 망설이는 겁니다. 저걸 사다가 한번 일을 벌여볼까 싶다가도 데치는 법도 껍질 벗기는 것도 볶는 것도 자신이 없더라고요. 아흔일곱의 할머니에게 머윗대 볶는 법을 물어보면 늘 대답이 똑같습니다.


“그것을 못 허냐? 머윗대 데치서 껍질 후루룩 벗기서 기름치고 볶으믄 돼지, 그걸 못혀? 거기다가 국물 좀 특특하게 헐라믄 깻가루랑 쌀가루 넣으믄 되는고만. 그것이 뭣이 어렵다고 물어보냐 물어보길.”


얼마나 데쳐야 하는지, 껍질은 어떻게 벗기는지, 양념은 국간장으로 해야 하는지 소금으로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다가 한 번은 머윗대를 사다가 멀거니 쳐다만 보다 며칠을 방치했더니 상해서 버린 적도 있습니다.

저녁에 야근을 한다더니 일찍 귀가한 남편과 초저녁 산책을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평소엔 안 가던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나물 가게 앞에서 또 한참을 머윗대를 들여다보는 겁니다. 이번엔 나물 가게를 지키시는 지긋하게 나이 드신 사장님이 머윗대를 손수 모두 손질해서 찬물에 담가놓은 게 보입니다.

그 앞을 오며 가며 세 번을 살피다가 참질 못하고 반근만 달라해서 사 와봤습니다. 한근이라고 해봐야 어른 주먹으로 두 주먹인데 반근이면 얼마나 작을지 상상이 되실 겁니다.


그걸 들고 발에 신바람이 들려서 집에 오자마자 쫑쫑 적당히 썰고 냄비를 달구기 시작했습니다. 들기름과 포도씨유를 반반씩 섞어 냄비에 붓고 머윗대를 넣고 달달 볶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국간장 조금과 굵은소금 한 꼬집 집어넣어 간을 맞추고 좀 볶아졌다 싶어지면 멸치육수를 반 컵 부었습니다.

멸치육수가 끓기 시작하길래 양념 컵에 개어놓은 쌀가루와 들깨가루를 와락 부어 저어줬더니...! 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거처럼 점성이 생기면서 걸쭉한 머윗대 볶음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걸죽하게 쌀가루를 넣어주는건 아마 전라도에서만 그리 만들어 먹을겁니다.

이쯤 해서 간을 살짝 보니 간도 안성맞춤으로 딱 맞길래 마늘다짐, 파 다짐 넣어주고 마지막으로 참기름 휘릭 부어 마무리해줬습니다.


고소한 냄새에 군침이 한번 돌고 걸쭉한 농도에 입맛이 다셔지는데 저녁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배가 불러있는데도 밥 한 그릇 덜어 비벼먹고 싶어 집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도 싫었던 걸쭉한 머윗대 볶음이 마흔이 넘어서니 미치게 그리워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늘 처음 만들어봤는데도 머윗대 볶음이 내가 먹던 그 맛이 나와주어서 신이 납니다. 왜 그렇게 먹고 싶었을까 모르겠습니다.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자랑을 하고 싶은데 시간을 보니 열 시가 넘어서 자랑 전화는 내일로 미뤄야겠습니다. 우리 손지는 안 가르쳐주어도 잘한다고 좋아하실 거 같습니다. 보고 배운 게 무섭고 어릴 때 먹고 자란 음식이 참 무섭습니다. 세포에 각인된 그 오래된 맛이 유난히 저를 끌어당겼던 6월의 어느 저녁에 머윗대를 볶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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