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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y 28. 2020

아빠, 양파 좀 보내줘.


미역 줄기와 함께 볶으려고 양파 보관함을 열었더니 서너 알 남은 양파가 상태가 별로 좋지가 않았다. 양파의 상한 부분을 칼로 도려내고 도마에 올려놓으니 패잔병 같았다. 그 순간 아빠가 매년 보내주시던 함양의 양파가 너무 그리웠다.


매년 5월이면 아빠한테 돈을 보내드리고 양파를 구입해서 택배로 보내달란 부탁을 했었다.


왜 함양에서 자라는 양파는 일 년 내내 썩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고 사시사철 단단한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아빠가 보내주는 양파는 유난히 좋았다. 엄지손가락으로 양파 표면을 꾹꾹 눌러봐도 손톱자국만 남았지 절대로 나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표면이 탱글 매끈거렸다. 매사 배짱이 아빠였지만, 양파를 보내주는 그 일은 아빠가 유일하게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나눔이었다. 아빠가 보내주는 양파로 아빠의 존재감을 매년 재확인했다.


그 양파 덕분이었는지 그래도 아빠의 철없는 행동이 눈감아졌는지도 모른다. 눈이 조금만 침침해도 안경을 맞춰달라 조르시는 아빠는 내가 돈이 맨날 넉넉한 줄 아셨다. 한 번은 병원 쇼핑을 하고 난 후, 내가 돈 계산을 하며   투덜거리니 그러셨다.


“ 니가 왜 돈이 웂어 ? 니가 돈이 없다고? “


진짜 모르시는 건지 알고 싶지 않으신 거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아빠에게 나는 늘 든든한 큰 딸이었어야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빠가 해달라고 하면 서릿발 내리게 쌀쌀맞게 구박을 했다가도 기어코 해드렸다. 우리 형제들은 아빠를 미워하질 못한다. 반찬을 만들다가 무른 양파를 보고 아빠가 보내주던 양파가 그리워 맘이 축축해졌는데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를 돌보는 간병인 선생님이 힘이 드셔서 우셨다고 한다. 이제 정신이 온전해지신 아빠가 까탈이 그리 심해지셨다고 한다. 칠십이 넘어도 걸음이 재빠르셨던 건강한 몸이 이제는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실 노릇일 까는 안 봐도 알겠다.


어느 해던가? 아빠가 그해 보내준 양파가 두 포대 모두 썩어 문드러져서 내 속을 까맣게 태운 적이 있었다. 양파값을 좀 넉넉히 보내드렸더니 남은 돈으로 장터에 나가 막걸리를 거나하게 드셨던가 보다. 술에 흐려진 아빠를 알아본 장사꾼에 속아 썩은 양파 두 포대를  샀던 그 날, 아빠랑 크게 싸우고 속상해서 눈물 바람을  한 일이 생각이 난다.


왜 그렇게  평생 술을 입에서 못 떼고 자식들 속을 상하게 하는지 아빠가 너무 미웠었다. 다시는 아빠한테 양파 사 보내란 소리 안 한다고 큰소리쳤는데 다음 해에도  또 어김없이 아빠가 사 보낸 함양 양파가 집에 도착했었다. 아빠에게 유일하게 받아보는 선물이었는데 이젠 그 단단하고 매운 양파를 받아볼 수가 없다. 좋은 양파를 골라 보내셨다며 자랑하듯 뽐내듯 목청 큰 아빠의 목소리도 이제는 못 들을지도 모르겠다.


아빠한테 부릴 수 있는 유일한 투정이고 부탁이었는데 이젠 다시는 할 수가 없다.


“아빠! 양파 좀 사보 내줘!”

그 부탁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럴 수 있다면 막걸리에 흠뻑 적셔진 아빠가 썩은 양파를 잔뜩 보내도 화를 내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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