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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Apr 15. 2020

나를 위한 음식이 무얼까?

대중목욕탕에서의 첫 싸움, 10살이었던가? 그쯤의 어린 정은이였다. 깡총한 단발머리의 정은이가 여동생을 데리고 읍내 목욕탕엘 갔었다. 수증기가 뿌옇게 가득 찬 탕 안에는 물 반, 사람반의 꽉 찬 실내였다. 겨우 잡은  자리에 목욕탕 의자가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생을 먼저 앉혀 놓고 내가 앉을 욕실 의자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반갑게 한 개를 발견하고 동생이 있는 곳으로 와 봤더니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동생이 깔고 앉은 목욕의자를 뺏어가고 있었다.

동생의 나이 다섯 살 정도였으니 아주 쪼그만 계집애였다. 아주머니가 의자를 빼앗기가 아주 만만했을 것이다.

내 안에 어떤 모습이 숨어 있다가 순간 튀어나왔다. 볼이 홍옥같이 빨갛고 깡총한 단발머리를 한 채로 아주머니에게 앙칼지게 성난 어린 고양이처럼 대들었다.


“이거! 제 동생 거예요!” 의자를 뺏어 자신의 큰 엉덩이를 깔고 앉을 찰나 어린 나에게 기습을 당하고 열없었던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어린것이 고약시럽네잉”

아니다. 사낙배기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런 뉘앙스의 꾸지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내 동생이 앉을 목욕의자 사수에만 신경이 쓰였었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을 잘 데리고 다녀야 하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자주 직무 유기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놀이터엘 가서 동생이 어찌 놀던 상관없이 내 볼일만 보다가 큰 사고가 났던 적도 있다.

그네가 널 뛰고 있는데 그 밑으로 지연이가 지나가다가 하강하는 그네와 부딪쳐서 머리가 깨졌다. 죄책감과 무서움에 얼어버린 나를 대신해 동리 아줌마가 할머니를 찾아 그 소식을 알렸던가 보다. 손에 삐삐 꽃을 한가득 쥐고는 몸빼를 입은 할머니가 헐레벌떡 쫒아와 통곡을 했다.

지연이의 이마엔 내 직무유기의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버거웠다. 내 몸 하나 팔짝거리며 뛰어다니고 놀고 싶었을 나이라 어린 녀석을 졸졸 끌며 데리고 다니는걸 무척이나 귀찮아했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 언니에게 잦은 구박을 받으며 쫓아다니던 내 동생이 아빠의 옆에서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엊그제 동생의 목욕의자를 뺏는 아줌마와 싸우던 열 살의 어린 정은이처럼 동생들을 대신해 ‘누군가’와 대차게 싸워야 했다.


나는 순한 사람인데 사람들은 자주 오해를 한다. 내가 사나울 거라고, 또는 아주 똑 부러질 거라고들 했다. 일처리가 매우 일사불란하고 인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냉정한 자아를 갖추고 있을 거라 생각을 하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잘못짚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싸움을 못한다. 돈 빌려주고받질 못하니 아예 돈거래를 하지 않고 내 감정의 어려운 부분도 타인에게 짐을 지우기가 싫어 혼자서 처리하려 애쓴다. 차라리 돈을 주고 상담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그 누군가와 막말을 해대며 싸워야 했다. 누워있는 아빠를 위해서이기도 했고 아빠 옆에서 고생하는 동생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사람을 칼로 찔러 살인을 한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이틀 밤을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중이다. 글은 못 쓰지만 글 쓰기로 내 상처를 핥아대던 내가 글로도 고백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답답했던지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써야겠구나 싶었고 그만 씩씩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목욕탕에서 동생이 앉을 목욕의자를 사수하던 날이 선 의기는 이제는 접어둬도 될 나이이다.


순하게 살고 싶다. 보험료 그까짓 거 없어도 사는데 동생들이 가족들이 마음을 다치는 일이 생기지만을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돈 냄새를 맡고 달라붙는 각다귀 떼가 있긴 하더라. 참 무섭고 징그럽다. 건강해야겠다. 마음도 몸도 건강하게 자신을 먼저 지켜내라고 동생들에게 당부를 했다.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려면 뭘 먹어야 할까? 오늘 저녁은 뭘로 나를 보신해줘야 할지를 고민해야지... 딸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나를 위한 보양음식을 찾아 먹어야겠다. 그리고 오늘 밤은 푹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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