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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Apr 18. 2020

혼밥 경력, 10년.


혼밥 경력이 10년입니다. 금요일은 주로 혼자 나들이를 다니는 요일인데, 광화문도 가고 동대문도 가고 영화관엘 제일 많이 들락거립니다. 극장 맨 뒷좌석에 앉아서 야금야금 샌드위치를 먹는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시죠?

혼자 보는 영화에도 길이 들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집중을 못합니다. 미술관은 혼자 못 갔는데 이젠 미술관도 제법 잘 찾아다니고 가는 곳이 점점 늘어나서 혼 놀이가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요즘 들인 새로운 혼밥의 재미는 금요일, 여의도로 글공부를 하러 가서 그곳에서의 먹거리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ㅇㅇ빌딩 1층의 칼국수가 맘에 들어서 삼주 내내 먹어도 봤고 설렁탕, 곰탕, 우거짓국 종류별로 먹어보기도 하였더니 1층의 먹거리가 입에 물렸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지하 1층으로 가서 신세계를 경험해보자 맘먹었더니 수업 가는 길이 더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처음 내려가 본 지하 1층의 식당가는 1층보다 더 풍성했습니다. 1인의 좌석을 차지하는 게 민폐가 되지 않을 조금은 한적한 식당엘 찾아 들어가 신중하게 메뉴를 골라 한상 거하게 차려 받은 직후였습니다.

“언니! 반가워요~” 하는 인사에 고개를 들어보니 같이 수업을 듣는 동생 둘이 방글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워낙 밝은 친구들이라 거부감 없이 합석을 해서 재밌게 밥을 뚝딱 먹고는 가게를 나섰습니다.

그런데, 수업 내내 명치에서 밥이 내려가질 않았습니다. 집에 오면서는 마을버스도 타지 않고 일부러 걸었는데도 소화가 되질 않았습니다.

약장에서 소화제를 찾아 미지근한 물에 먹고도 모자라 매실액을 한가득 따라 마시고는 등에 온기가 가득한 매트를 깔고 누웠습니다. 그리 애를 썼는데도 이 시간까지도 잠은 오지 않고 명치가 답답합니다.


혼밥이 유행이 되기 전부터 혼밥을 즐겨했습니다. 일의 마무리가 무작위로 끝나는 프리랜서라 친구를 청해 밥을 같이 먹는 일이 번거로웠습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집에서도 잘 차려먹고 나가서도 이거 저거 골라서 잘 사 먹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개인의 생활이 더 외로워져도 저는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늘 혼자 다녔었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하는 스타일도 아닙니다. 집에서 혼자 집 지키는 강아지처럼 사람 인기척이 들리면 너무 반가워 마음이 날뜁니다. 제 표정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 말소리가 그리워 귀가 쫑긋해서 하하호호 거리며 말도 잘 주고받아 놓고는 같이 먹은 밥이 소화가 안되어 반나절이 넘게 고생할 일은 무어랍니까.

이럴 땐 성미가 예민한 것이 참 지랄 맞기도 하다며 스스로를 나무랍니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스무 번 정도 다시 보기를 한 거 같습니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도 저처럼 혼밥을 즐겨하는 아가씨입니다.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하고 문을 열었는데 저녁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어야 할 엄마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매일 혼자서 밥을 해 먹습니다. 매일의 먹거리를 위해서 돈도 벌어야 합니다. 엄마는 왜 나를 두고 간 건지 이유를 물을 수도 없습니다.

수많은 물음을 뒤로 한채 한 끼의 식사에 골몰하는 그녀의 일상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마음의 감정선이 삐죽거리며 하한가를 치고 있으면 그 영화를 찾아 꺼내 틀어놓고 담요로 온 몸을 둘둘 말아 보호막을 삼고 그녀가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청하기도 여러 번입니다.


혼밥의 시간이 지인들과의 교류시간으로 바뀐 게 즐거웠어야 했는데 고작 그 한 끼도 소화를 못 시키는 저를 보며 저녁 내내 곰곰이 생각을 오래 하게 됐습니다.

밥상을 마주하고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을 행복한 순간으로 바꾼 십 년의 버릇을 쉽게 고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한 말이 혹시 실수는 없을지 검열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이라도 민폐가 되면 어쩌나 하는 조심스러움도 내려놓을 수가 있어서 나 혼자의 밥 먹는 시간이 편하고 좋았던 거 같습니다.


오늘 시켰던 밥상에서 나를 감탄시켰던 음식은 오래된 무장아찌였습니다. 산거 같지는 않고 그곳에서 직접 담아 무친 거 같은 투박하고 짜디짠 무장아찌가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어머나, 이거 물건이네 하며 혼자 감탄하며 먹을 새가 없이 동기들과 대본 쓰는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혼자 앉아 무장아찌에 감탄하기보다 그 사람의 대화가 맛있게 느껴지는 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타인과의 대화를 검열하지 않고 편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소화가 되지 않아 저녁내 꺽꺽 거리며 생각을 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 고민하기 싫어서 저는 다음 주도 혼밥을 하러 식당을 찾아다닐 거 같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생김 데로 살아야 편한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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