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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y 03. 2020

아... 들기름!!!

할머니, 나 어떡하지?

음식 맛은 기름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물이든 마른반찬이든 화룡정점, 들기름 한 스푼씩 넣어줘야 하는데 그 고소한 향으로 사람들은 그 집의 반찬 맛을 결정합니다.

나물을 데치고 무치는걸 아무리 잘해도 기름이 신선하지 않고 고소하지 않으면 그 나물은 실패작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산 기름의 냄새는 나물 맛을 망치는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친정엄마가 주는 밥에 늘 굶주린 제가 마케팅의 기획일을 접어두고 다시 시작하게 된 일은 엄마의 부엌을 빌려주는 일이었습니다. 평생 엄마의 밥을 그리워하던 중년의 여인이 엄마의 밥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며 산지가 십 년입니다.

이 일이 이렇게까지 이어지게 된 꾸준한 힘의 원동력은 사실은 할머니가 친정에서 보내주는 된장, 고추장, 들기름이었습니다.

중국산 한 톨 쓰지 않고 토종 땅에서 자라는 들깨를 수확해서 먼지 하나 없이 돌을 일어내고 기름을 짜서 보내주는 역할은 할머니였습니다. 가을이면 수확하는 들깨를 손녀 몫으로 저장해두었다가 제가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동네 방앗간으로 가서 기름 짜는 기계 앞에서 보초를 서며 지켜보셨습니다.

그 동네 육십 년 토박이였던 할머니를 속 일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도 할머니는 기름 짜는 기계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 방울 똑똑 떨어지는 기름이 허투루 다른 곳으로 샐까 봐 지켜보시다가 소주병에 담아 보내는 일을 담당하던 할머니가 이제는 그 보직을 내려놓을 시기였습니다.

아직 마음은 칠순 안팎의 젊은 열정을 담고 있는 육신이 이제는 노쇠해서 큰손녀 반찬 하는 일에 기름을 대는 일을 못하게 되자 많이 속상해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연세가 아흔일곱입니다. 여태까지도 분에 넘치게 저를 위해 기름을 짜 주신 세월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그 중요한 보직을 대신할 방앗간을 알아내는 일이 저에겐 시급했습니다. 서울에서 그 시골 방앗간을 재연해 낸 곳이 있을리가요. 많이 상심해하던 차에 남편의 직장동료의 장인어른이 하신다는 방앗간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사는 곳에서 이십여분 떨어진 곳이라 한걸음에 달려가 봤는데 시골집 현아네 방앗간처럼 겉은 허름하였으나 고소한 기름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사장님 두 내외분과 금세 안면을 트고 앉아 인심 좋은 안주인 사장님의 친근함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평상에 앉아 주시는 맨드라미 차를 달게 마시며 기름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그 한 시간 동안 사장님 내외분의 사십 년 묵은 결혼생활도 엿볼 수가 있었고 바깥 사장님이 오십견으로 고생하시는 얘기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맘의 빗장이 모두 풀려버렸습니다.

사람을 무턱대고 믿는 순둥이는 아닌데, 어느 순간에 심장의 스위치가 눌려지면 무한 신뢰를 보내고 경계를 하지 않습니다.

맨드라미 차를 마시며 듣게 된 시집살이 설움도 동병상련이 되고 오십견의 고통을 알고 계신 바깥 사장님의 고통에도 같이 공감하며 깨가 볶아지고 기름이 짜지고 있었습니다.


그 평상에 앉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름 냄새를 한껏 품고선 오월의 미풍이 불어오는 평상에 앉아 기름이 짜지는 그 풍경을 오래 기억해야겠다 생각하던 찰나였습니다. 들깨를 압축하던 맷돌 기계의 잠금장치가 풀리고 깻묵이 턱 하니 떨어져야 했는데 깻묵을 보여주지 않는 게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할머니는 마지막 깻묵까지 확인을 늘 하시던 게 생각이 났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제가 가져간 빈 병에 들기름을 부어주시는 사장님의 손길을 보며 기쁜 마음에 함박웃음을 짓다가 뭔가 이상했습니다. 제가 가져간 병이 절반이나 빈병으로 남았습니다. 할머니가 짜 주던 기름의 양과 절반이나 달랐습니다. 소주병 열병을 넘기고도 한두 병이 더 덤으로 나오던 시골집 방앗간의 기계와는 다른 것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런데 차마 그 순간 두 분의 사장님에게 이의 제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저에게 맨드라미 차를 대접해주고 두 분의 사연을 들으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던 제가 안색을 바꾸어 기름이 적게 나왔다며 이의 제기를 한다는 게 입이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이 감동의 드라마를 감동적인 엔딩으로 마무리해야만 할 거 같은 사명감에 마음이 급박하게 내달렸습니다.


기름 네 병으로는 한 달도 쓰지 못할 양이라 방앗간에서 파는 기름을 세병이나 더 사서 급하게 인사를 드리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다간 저의 실망한 표정을 두 분 내외분에게 들킬 거 같았거든요. 차에 타자마자 도둑에게라도 쫓긴 듯 한숨을 훅 쉬는 저를 딸아이가 알아챘습니다. 무슨 일 있구나라고 채근하는 딸에게 할머니가 짜 주던 들기름과 양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하소연을 했더니 그러더군요.


“엄마, 빨리 차에서 내려서 사장님한테 물어보고 와, 깻묵 보여달라 그러고 평소보다 양이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얘길 해.”


하지만 저는 그건 죽어도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사장님에게 상황을 정확히 물어보는 대신에 여동생과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이게 맞는 건지 물어보는 저를 딸이 한숨을 쉬며 지켜봤습니다.


“우리 엄마, 또 한 달 내내 들기름 얘기하겠다. 아빠 기대해도 좋아. 엄마의 들기름 하소연을 내가 노랫말로 만들 수도 있어”


인심 넉넉한 여동생은 그랬습니다. “ 색깔이 시커먼 것이 더 꼬숩게 짜줬나 보지, 잊어버려. 내년엔 내가 여기서 해 줄게”

할머니는 그러셨습니다. “하이고, 그 아깐 것을 어쩔까, 소주병으로 열두 병이 나오던 것이 네 병이 나왔다고야?”

남편은 그랬습니다. “잊어버려, 다시는 안 가면 되지....”


남편이 제일 그 상황이 미안했을 겁니다. 냉장고에 들기름 네 병을 집어넣으며 눈물이 찔끔 나려는 걸 참았습니다. 어찌나 속이 짜던지 밤잠을 이룰 수가 없더군요.

아침밥 먹은 그릇을 물에 헹구고 돌아서는 나의 기색을 남편이 살피며 묻습니다.


“아직도 들기름 생각하는 거야?”  


“응, 나는 왜 그 두 분에게 들기름의 양이 이렇게 적냐고 묻지 못한 게  너무 답답해.”


저는 왜 그랬을까요, 정담이 오가던 평상위의 감상을 깨고 싶지가 않았고 두 분에게 얼굴색을 바꿔서 이게 왜 이런 건지 따지 지를 못했습니다.

저를 속이셨던 걸까요? 차마 두 분이 저를 속였다고는 생각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게 더 속상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저는 그 두 분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속상해하는 걸까 싶었습니다. 어디서든 부모정을 대체할 뭔가의 감정이 내 맘에 들어서면 저는 그걸 의심 없이 덥석 받아먹습니다.

설령 그게 사기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닌데도 그런 분위기에 매우 약합니다.

아빠가 해 주듯, 엄마가 딸 챙기듯 그리 챙겨주는 어른이 계시면 나도 모르게 내 맘의 경계심을 후루룩 허물어 버립니다. 그리곤 제대로 된 이의 제기도 하지 못합니다.


들기름의 양을 속인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들깨가 너무 많이 볶아져서 기름이 적게 나온 걸 겁니다. 그럴 겁니다... 그게 맞겠지요?

절대로 저를 속인 게 아닐 겁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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