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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r 26. 2020

조구 새끼


욕실에서 빨래 두어 개를 조물 거리다가 너무 허기가 지면서 급하게 밥을 먹고 싶어 졌다. 아침을 먹기엔 늦은 시간이고 점심을 먹자니 너무 이른 오전 10시에 아주 깊은 허기가 몰려왔다. 잡곡도 섞지 말고 그냥 부드러운 흰쌀밥 고봉으로 얹어서 할머니가 담아준 싱건지에 (전라도 사투리: 물김치) 깻잎장아찌 꺼내 다 말고 냉동실에 얼려둔 조기 새끼가 생각이 났다.

아침에 생선을 그것도 혼자 먹어보겠다고 5마리씩이나 프라이팬 위에 올리고 있자니 참 별일이다 싶었는데 노르스름 바싹 구워 가장자리 뼈 알뜰하게 발라내고 손에 들고 우적우적 먹고 싶어서 군침이 흐를 지경이라 맘이 바쁘게 움직였다 다른 먹잘 것은 생각도 안 나고 조기 새끼 굽는 고소한 냄새에 허기가 궁극으로 치달아 굽자마자 작은 소반 끼고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황석어라고 불리는 게 맞는 명칭이지만 전라도 친정에선 늘 불리는 이름이 조구 새끼다. 비늘 다 벗겨져 꾸덕하게 하루 말려진 조구 새끼가 할머니의 칠이 듬성 벗겨진 오래된 철 프라이팬에서 치직소리를 내며 구워지기 시작하면 배가 안 고파도 입에 침이 고이며 밥상에 달라붙기 마련인데 이 조구 새끼가 한참 맛있을 철이 가을 찬 바람 진하게 불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등허리 선득해지는 가을바람이 담벼락 사이 휘잉 거리고 돌아다닐 늦가을이 찾아오면, 알찬 조구 새끼 굽는 냄새가 작은 대검산 부락을 휘감고 돌았다. 네 명의 아녀석들이 옹말종말 달라붙은 소반이 좁아터지는 데 먹는 식성도 좋아서 한 아이에게 두 마리씩 배당을 해주어야지 안 그러면 서로 한점 더 먹겠다고 난리가 나서 꼭 할머니는 두 마리씩 갈라 나눠주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늦가을 시작하면 꼭 먹던 그 맛난 조구 새끼 구이를 스무 살 무렵부턴 잘 안 먹게 되었는데 작은집 더부살이로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이다. 안 그래도 눈치가 저절로 보이는 살림에 성질 우락부락하지만, 조카 생각 끔찍한 작은 아빠 성화에 억지 춘향으로 시조카 떠안은 아직 젊은 새댁이었던 작은엄마 눈치가 어지간히 보였더랬다. 알음 눈치로 집안일도 거들고는 했지마는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밥이 눈칫밥이라고 그 밥상에 둘러앉아 내 좋아하는 조구 새끼를 젓가락으로 건드려볼 엄두가 나질 않더라니... 살뜰하게 조기 살과 뼈를 분리해 깔끔하게 먹으시는 작은엄마 앞에서 언젠가는 한번 조구 새끼 배 가운데부터 건드렸다가 생전 안 듣던 잔소리를 듣고 나서부터인가 보다 생선뼈를 가장자리 발라내고 어두육미라고 생선 머리에서도 발라낼 알토란 같은 실한 살점이 그리 잘 숨어있는지는 우리 작은 어머님의 젓가락질로 처음 알았던 것이다. 흉내를 낼 수도 없게 어쩜 그리 깔끔하게 발라 알뜰하게 드시는지 십여 센티도 되지 않는 황석어가 삼십여 센티는 됨직한 고등어 한 마리 발라드 신 거 같이 실하게 드셨다.  깨끔질로 배 한가운데서부터 헤집어 아무리 깔끔하게 발라먹을래도 나는 그런 재주는 없었는지 생선 아깝다는 타박을 들은 후로는 아예 작은집에서의 7년 동안은 생선을 입에 대질 않았다. 작은어머님은 그분대로 또 얼마나 불편하고  또 불편했을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요즘에야 깨달아지는 마음이고 그때는 되도록이면 한 밥상에 마주 앉지 않으려 애를 쓰는 걸로 그 서운한 맘을 숨기곤 했지만, 작은 어머니의 그 마음이 이제는 안쓰럽게 살펴진다. 창천동 언덕배기에 어렵게 마련한 신혼집에 다 큰 시댁 조카가 얹힌 현실이 그 어린 새댁에게도 매운 시집살이같이 느껴졌으리라. 이쁘게는 안 봐지더라도 잘 챙겨주고 싶으셨겠지만 젊은 혈기에 잘 다스려지지 않은 마음으로  흩뿌려진 서운함을 시집와서도 한동안 서럽게 간직하고 살았더랬다. 지난 추석,, 전 부치고 난 후 밥상에 둘러앉아 할머니가 구워준 조구 새끼를 또 그 신공의 기술로 머리뼈도 츄르릅 사탕처럼 빨아 드시고 내놓으시는 아금찬 작은 어머니의 얼굴에도 삼십 년 세월에 말라버린 사과같이 주름이 져있다. 작은어머님의 지청구가 싫어 젓가락도 대기 싫었던 황석어를 이제는 혼자 배 채우려고 아침나절부터 구워대며 생각이 이십 년 전쯤으로 흩어졌다 돌아왔다. 생선가시처럼 걸려있던 더부살이의 서운함보다는 그때의 힘들었을 작은엄마의 인생이 살펴지는 게 나도 좀 나잇값을 제대로 하려는 모양이다 저녁시간, 학원가는 딸아이 밥상에 앉아 아침에 먹고 남은 조기를 다시 덥혀 노릇하게 구워진 살점 발라 밥 위에 뚝뚝 올려주니 달게 참 맛나게도 먹는다. 그 모습이 흐뭇해서 다 먹지도 않았는데 자꾸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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