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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r 26. 2020

보리굴비 한 마리

한 마리 남은 보리굴비를 쌀뜨물에 불려서 찜기에 올리고 반건조 가자미도 프라이팬에 기름 넉넉히 둘러 굽기 시작합니다. 보리쌀 섞은 밥은 좀 진 듯 만 듯 적당히 물기가 있게 지어놓고 물김치 한보 시기 꺼내고 애호박 하나 나박나박 썰어 새우젓 한 숟갈 넣고 들기름에 볶아놨더니 초여름 밥상이 금세 푸짐해집니다. 엊저녁 먹고 남은 순두부에 간장을 좀 얹어 내어놨더니 금세 후루룩 먹고는 젓가락으로 잘 쪄진 보리굴비를 헤집으면서 아빠의 불평이 시작됩니다.

“ 진짜로 수술을 안 해도 된다고 혔어? 눈도 안 뵈고 허리도 자꾸 꼬부라지고 아파서 고추 농사도 못 짓고 거시기 뭐냐 눈이 자꾸 침침 하당께 검사를 또 안 해봐도 되겄어 ? 전주 무신 병원서는 허리에 철심 박으믄 허리가 꼿꼿이 선다고 허고 눈도 200백만 원만 주믄 죽은 신경이 좀 살아난다고 내가 들었다니까는  어허이, 참말 답답허네 ... 낼모레 죽더라도 허리는 고치고 뻣뻣이 피고 살아야 안 쓰겠냐. 내가 돈 줄 판이 고만, 수술을 못 하게 허네...”

아빠의 투정인지 진심인지 모를 수술 타령에 말 안 보태고 보리굴비 쪽쪽 찢어 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어쩐지, 어제 틈만 나면 눕고 싶고 시간만 나면 입에 뭘 넣고 먹고 싶더라니, 오늘 우리 떼쟁이 아부지 쫒아 정형외과, 안과, 내과, 피부과를 휘둘러 병원 쇼핑하느라 미리 에너지 비축하느라 그랬나 봅니다.

‘아빠! 아니 도대체 왜 그래? 정형외과 가서도 본께로 아빠가 젤로 허리가 뻐싯거리고 키도 젤로 크고 두 팔 두 다리 멀쩡하셔 가지고는 내가 창피스럽더구먼 , 아니 거그 허리뼈 분지러진 사람도 안 보입디요? 눈은 나이가 들어 노안도 오고 시력도 약해져서 그것이 수술 헌다고 심봉사 눈뜨드키 번쩍 안 뜨인다고 선상님이 안 그렸소?
허리도 그 나이 먹고 안 아프면 아빠가 로봇 트지 잠깐 진통제 먹고 더 안 아프게 운동 잘하라고 안 헙디여? 참나, 그 수술이 뭣이 좋다고 자꾸 입원을 시켜 달라고 떼를 쓰요, 쓰길...’
하고 싶은 긴... 잔소리를 앞치마 뒤로 숨겨놓고 말없이 애꿎은 보리굴비만 잘기 잘기 뜯어놨더니 나이가 들수록 철이 없어지는 울 아버지 젓가락이 더 바빠집니다.
어휴 ,, 송가인이 부르는 대동강아 ~~ 가 큰소리로 부르고 싶었던 저녁시간을 마무리하고 남동생 불러 모시고 가서 하룻밤 재워 내일 시골 가는 기차에 태워드리라 당부해 보냈습니다.
전생에 울 아버지가 자식이고 내가 속 엄청 썩이는 못난 자식이었지도 모르지 하며 위안 삼아봅니다. 큰 병 아닌 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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