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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r 26. 2020

향산 새우에 맥주 한잔이면 족했을 저녁.

하필이면 그 자리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7월의 녹음에 푹 젖은 토요일 저녁이었고 남편과 함께 단골 중국집에서 그곳에서 제일 좋아하는 향산 새우를 양손으로 집어먹으며 크림거품이 하얗게 올려진 맥주 한잔을 끄억 소리가 나게 들이켜고는 얘기를 시작할 참이었다.
그 맞춤의 타이밍에 짭조름한 향산 새우의 맛이 혀끝에 남은 채로 남편에게 종일 목울대가 아프게 참고 있던 그 사건을 실컷 얘기하고 풀어볼 참이었는데  절묘한 찬스를 남편이 먼저 채간 것이다.

“ 너 있지,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내 여동생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칭찬도 하지 말고 험담도 하지 마. 그냥 다 듣기가 싫으니까 부탁이야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던가도 싶다. 왜 그런 장면 있지 않은가? 교통사고가 나는 순간 세상의 시계가 멈추고 모든 동작이 슬로모션으로 느리게 움직이 다가 차창의 모든 유리가 내 귀 옆에서 터지며 서운함의 파편이 온몸에 박혀버렸다. 눈물이 곧 둑을 넘으려고 물이 찰랑거리길래 오늘은 남편 앞에서 울기가 싫어 남은 요리접시와 반이 넘게 남은 맥주잔을 무시하고 먼저 일어나라고 했다

“오빠 먼저 일어나서 가줄래, 나 혼자 좀 있다가 들어갈게”
새우맛은 이미 실종이 되었고 시끌시끌한 토요일 밤의 중국 요릿집은 외식 나온 식구들이 한가득이어서 거기에서 혼자의 술을 이어가기가 곤란했다. 아는 지인분께 카톡을 보내 잠깐 찾아가도 되냐 묻고는 택시에 타자마자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런 맥락 없는 얘기를 남편은 나에게 던졌던 것일까 궁금했으나 묻지 못했다. 평소에 쌓아둔 서운함이었다면 다른 때 해줬음 정말 좋았을뻔했는데 그 타이밍이란 게 그 시기의 나에겐 너무 치명적이었다. 맥주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켜고 하고 싶었던 하소연을 누구에게 해야 하나 싶었다. 지인의 아파트 앞 공원에서 사람들이 지나가건 말건 개의치 않고 눈물 콧물 다 짜내며 손수건 한 장이 다 젖어가며 했던 일 년 전의 얘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 할머니를 내가 잘 모실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 내가 이렇게 두 달 만에 손들 줄 몰랐는데 할머니한테 종일 매여서 삼시 세끼 챙기고 약 챙기고 복지관 어서 가길 기다리고 복지관 끝날 시간이면 마음이 답답해질 줄 저도 몰랐어요. 깔끔하던 양반이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화장실에 기어가듯 들어가 혼자 그렇게 나 몰래 당신 팬티를 몰래 주물러 놓은걸 다시 빨아놓은 게, 늙는 게 어찌나 서럽고 슬프던지 할머니가 안쓰럽고 애통하다가도 내 몸 귀찮고  힘들어하는 감정에 배신감이 느껴지고...
오늘 그거 좀 얘기하려고 남편이랑 외식 나간 거였는데 뜬금없이 시누들 얘기하지 말란 모진 소리에 어이가 없어서 왜 그러냐 묻지도 않았네요. 할머니 귀찮아하는 마음이 너무 죄책감이 느껴져요. 그게 가장 힘들어요 “

그러면서 한참을 울었던 거 같다. 연세가 아흔다섯에 골반뼈가 부러지셨고 그 수술을 두 달 만에 이겨내고 재활까지 아금바리 지게 해낸 할머니의 뒷수발도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그 막바지의 힘듦을 그날 맥주 한잔에 곁들여진 수다 한 시간이면 괜찮겠다 싶었었다. 그게 어그러지고 집에 돌아와 그다음 날 종일을 식구들 전부에게 말을 안 하고 지냈다.
종일 부성 부성 운 얼굴로 할머니에게 눈치를 주고 남편과 딸에게도 말을 안 하고 화가 나 하루를 보내고는 바로 그 다음다음날 할머니가 막내 여동생 집으로 가시기로 결정하시고는 남동생을 불러서 가시는 날, 나를 불러 부탁을 하시는 게 날 또 두고두고 울렸다.

“ 정은아 , 고생 많았다. 내가 이 집을 또 언제 올라나 모르겠구나. 복지관 선상님들 고생 많았으니까 수박 한 덩이 사서 넣어주고 잡은데 네가 좀 혀라. 할미 밥 해주느라 욕봤다. 내가 잘 먹고 잘 쉬다 가니라”

가시기 이틀 전 , 그 종일의 부아를 안 부렸으면 할머니를 보내는 마음이 편했으려나 한참 생각했다. 나이 들어 내 육신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슬픈 일이 내 손으로 똥 누고 뒷감당을 못할 때란 걸 할머니를 돌보면서 선명하게 알아졌다. 목발을 짚고도 부축을 받으면서도 굳이 기저귀를 거절하고 화장실 변기에 앉으셔야 했던 할머니의 꼿꼿했던 자존심이 손녀 집에 와서도 속옷에 실수한 흔적도 숨기고 싶어 절름 절름 화장실에 기어가듯 도착해 실수한 팬티를 주물러 놓고는 빨래 더미 밑에 숨겨 놓으셨던 그날, 나는 그 흔적에 목이 메어 화장실에서 할머니 속옷을 빨며 작게 통곡을 했었다.


늙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고 저 깔끔한 노인의 뒷수발에 힘이 들기도 하고 애달프기도 하였던 슬픈 감정을 남편과 풀고 싶었으나 불발되었던 그날 이후로  글을 못쓰고 있었다.
어찌나 내 인성이 어쭙잖게 느껴지던지 , 내 글의 대부분의 페르소나였던 그 할머니를 슬프게 보낸 그 이후로 내가 쓰는 모든 글이 가짜로 느껴지 기도 했던가보다.
아침에 딸아이 도시락을 싸 보내고 신문을 폈는데 요양복지사 자격증을 공부해서 복지관 일을 한 달 경험한 기자가 쓴 요양원의 기사를 아주 담담히 읽고 난 후 작년의 내 일이 이제는 끄집어 올려도 되려나 싶어 물질을 해봤다. 기사 중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느 할머니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 똥을 누게 해 주니 기자의 손에 연신 뽀뽀를 해주며 너무 고마워하더라는...
늙음의 제일 슬픈 종착역은 내 똥을 내가 처리하지 못하는 슬픔이란 걸 29살의 여기자도 알아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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