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보다 낫습니다. 간밤에 기숙학원에 들어가 있는 딸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엄마,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홀가분해. 물론 뒷 일이 더 남아있겠지만 참 안타까워. 엄마같이 든든한 언니, 누나를 이제는 평생 못 볼 테니까.
당연히 엄마 입장에선 마음이 아프고 슬프겠지만 제삼자인 내 입장에서 보면 참 안타까워. 이모랑 그쪽 분들은 더 이상 맛있는 반찬도 진심 어린 충고도 평생 받지 못할 테니까.’
이걸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칼에 찔린 상처야 아물길 기다리면 됩니다. 마음의 정리가 끝났으니 미련 둘일이 없습니다. 마지막 인사도 거절한 그 들에게는 내가 더 이상 가족이라 이름 부르지 않을 거니까요.
상처의 회복은 의연히 이겨낼 겁니다. 그리고 이젠 좀 이기적으로 살고 내가 일군 나의 진짜 가족의 이해와 사랑을 받으며 어제보다 더 행복해질 겁니다.
오전에 바삐 움직여 주문받은 음식을 완성해서 퀵서비스로 보내 놓고 이제 한숨 돌리며 베란다의 식물을 보러 나갔습니다. 한 달 전에 병충해에 힘겨워하던 사계장미의 아픈 부위를 다 잘라주었는데 어느새 파릇한 새순을 돋아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짧게 잘라줘도 되나 싶을 만큼 몸통의 줄기만 남겨두었는데도 장미는 죽지 않고 더 건강한 새순을 내보내고 있는 걸 보니 매우 행복했습니다.
상실의 역사를 지닌 가족의 이야기를...번번이 거절당하고 버림받아야 했던 인생 1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 브런치에 올려볼 생각입니다.
음식을 만들면서 하나님께 의논을 드렸거든요.
‘하나님, 저에게 주신 이 경험을 저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들려줌으로 위로가 될 수 있는 글을 쓰면 어떨까요’라고요. 이전엔 단순히 불행을 전시하는 느낌이었는데 어떤 정확한 소명의식을 지니고 지난 아픔과 상실을 써 본다면 그걸 보고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란 위안도 얻고 자기 삶을 꾸려갈 희망도 생기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손에서 만든 음식이 사람들의 배를 채우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내 얼굴을 모르는 생판 모르는 타인들의 고마운 인사를 매일 받고 사는 복을 누리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매 순간 잊지 않고 어제보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살 겁니다.
내 헌신을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게 뭐 그리 울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딸의 말처럼 분명해진 건 진짜로 손해를 보는 건 내가 아니라 ‘저들’ 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