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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r 23. 2021

새순이 돋을 겁니다.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보다 낫습니다. 간밤에 기숙학원에 들어가 있는 딸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엄마,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홀가분해. 물론 뒷 일이 더 남아있겠지만 참 안타까워. 엄마같이 든든한 언니, 누나를 이제는 평생 못 볼 테니까.

당연히 엄마 입장에선 마음이 아프고 슬프겠지만 제삼자인 내 입장에서 보면 참 안타까워. 이모랑 그쪽 분들은 더 이상 맛있는 반찬도 진심 어린 충고도 평생 받지 못할 테니까.’


이걸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칼에 찔린 상처야 아물길 기다리면 됩니다. 마음의 정리가 끝났으니 미련 둘일이 없습니다. 마지막 인사도 거절한 그 들에게는 내가 더 이상 가족이라 이름 부르지 않을 거니까요.


상처의 회복은 의연히 이겨낼 겁니다. 그리고 이젠 좀 이기적으로 살고 내가 일군 나의 진짜 가족의 이해와 사랑을 받으며 어제보다 더 행복해질 겁니다.

오전에 바삐 움직여 주문받은 음식을 완성해서 퀵서비스로 보내 놓고 이제 한숨 돌리며 베란다의 식물을 보러 나갔습니다. 한 달 전에 병충해에 힘겨워하던 사계장미의 아픈 부위를 다 잘라주었는데 어느새 파릇한 새순을 돋아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짧게 잘라줘도 되나 싶을 만큼 몸통의 줄기만 남겨두었는데도 장미는 죽지 않고 더 건강한 새순을 내보내고 있는 걸 보니 매우 행복했습니다.


상실의 역사를 지닌 가족의 이야기를...번번이 거절당하고 버림받아야 했던 인생 1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 브런치에 올려볼 생각입니다.

음식을 만들면서 하나님께 의논을 드렸거든요.


하나님, 저에게 주신  경험을 저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들려줌으로 위로가   있는 글을 쓰면 어떨까요라고요. 이전엔 단순히 불행을 전시하는 느낌이었는데 어떤 정확한 소명의식을 지니고 지난 아픔과 상실을  본다면 그걸 보고 나만 이런  아니구나란 위안도 얻고 자기 삶을 꾸려갈 희망도 생기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손에서 만든 음식이 사람들의 배를 채우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내 얼굴을 모르는 생판 모르는 타인들의 고마운 인사를 매일 받고 사는 복을 누리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매 순간 잊지 않고 어제보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살 겁니다.


내 헌신을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게 뭐 그리 울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딸의 말처럼 분명해진 건 진짜로 손해를 보는 건 내가 아니라 ‘저들’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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