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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y 17. 2021

남동생

어느 시골 마을, 연년생 터울로 남매가 태어난다. 한 살 많은 누나는 엄마의 사랑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 살 어린 남동생은 엄마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고 성장한다. 누나는 빨간 겨울 부츠가 너무 갖고 싶었는데 도통 엄마가 사 줄 생각을 안 했단다. 동생은 비싼 백화점 장난감도 많았는데.


어느 날, 누나는 빨간 부츠가 갖고 싶어서 엄마에게 얼굴이 간지럽지만 편지를 써서 몰래 엄마의 가방에 쪽지로 넣었다. 저녁에 식구들이 밥을 먹는 사이 엄마가 가방에서 누나의 쪽지를 발견했나 보았다. 살얼음이 낀 마루에 놓인 요강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싸던 누나가 방에서 엄마가 웃으며 쪽지를 읽는 소리를 듣고는 배시시 부끄럽게 웃었다.


이젠 엄마가 부츠를 사주시려나? 발이 안 시리게 나도 빨간 부츠를 신고 학교를 갈 수 있으려나?”


누나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다음 해 남매의 엄마가 집을 나가버려서 그럴 기회가 영영 생기지 않기도 했다.


몇십 년 후에 사이좋던 남매가 사이가 갈라졌다고 한다. 50년 후에나 볼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요즘엔 세상이 하도 빨리 돌아가서인지 누나가 생각했던 50년 후는 5년 후도 아니고 일 년 후에 우연히 이루어진다.


남동생을 보기도 전에 누나가 눈물을 한 바가지나 손수건으로 훔쳐내었다고 한다. 남동생을 마주하고 딱히 할 말이 생각이 안 난 누나가 남동생의 손만 쳐다보았단다. 정비일을 하는 남동생의 손에서 기름때가 빠지지 않아서 손톱 끝이 시커맸다.


어이구, 저 녀석. 가게도 반듯반듯 청소 좀 잘하고 손도 수세미로 빠득빠득 문질러 기름때 좀 잘 벗기지 그랬냐’


누나가 그 말을 그냥 삼키고 밥을 사 먹이고 돌아왔다고 한다. 남동생은 누나를 보고 많이 미안했다고 했단다. 왜 그랬냐고 화를 엄청 낼 거라 생각했는데 화가 나질 않았다고 한다.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용했다고.


남동생이 누나에게 그런 말을 해줬다고 한다.


누나, 난 그래도 아빠가 살아있어서 좋아. 아빠가 죽지 않아서 좋아. 아빠가 예전처럼 술 마시고 화를 내지 않아서 좋아. 그때는 누나가 아빠를 요양원에 버리는 줄 알았어. 내가 오해해서 미안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누나의 머릿속에는 남동생의 손에서 벗겨지지 않은 시커먼 기름때가 자꾸 생각나더라고 말해줬다. 원망도 미움도 없어지더란다. 그냥 남동생 눈에서 눈물 안 나고 예쁜 아들이랑 불편함 없이 잘 살길 바란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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