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쳤구나.

엄마들은 반쯤은 무당이다

by 종은

엄마들은 반쯤은 무당이다.


나의 고모는 일이 있을 적이면 꼭 꿈을 꿨다.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났던 때,

밭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

고모에게 소식을 알리면.

어쩐지 꿈자리가 그렇더라니.

나에게 한번 오지 않는 할머니도 고모 꿈에는 그리도 자주 찾아왔다.

할머니가 춥다더라 하며 찾아왔다던 때도,

묫자리에 무슨 문제가 생겼었다.


친정엄마도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꿈자리가 사납더니 그래서 그랬구나 저래서 그랬구나.


신기했다. 우리 집안 여자들이 약간 신기가 있나?

할머니의 시어머니, 내 증조할미가 큰 보살이었단 소린 얼핏 들었다.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도 세보였다.

신기하지 않나? 앞을 본다니.

허나 나 또한 신기한 꿈을 꾸긴했다.

남편이 암투병을 시작하고, 6개월인가 후에 꾼 꿈이다.

노인이 병상에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머리는 희고 깡 마르고 창백한,

주위로 가족들인듯한 사람들이 둘러싸웠다.

그들 옆으론 원색의 빨강,파랑 천들이 짧게 쳐져있었다.

내가 문을 열자 일제히 그들은 나를 쏘아보았다.

그 꿈을 꾸며 오줌까지 싸고 무서웠다. 그치만 너무도 생생해서 적어두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꿈.

그로부터 4년뒤 똑같은 장면을 보았다.

내 남편이 죽을때의 모습.

너무도 건장하고 튼튼했던 그가, 4년을 항암치료 하는 동안에도 건장했던 그가.

마지막 2달 반은 물도 마시지 못 했다.

그러니 몸은 미라처럼 마르고 머리는 희고 노인 같고,

임종한 그의 몸 주위로 시댁식구들이 이미 와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미리 보았던거 같다.

그후로 믿게 되었다.

예지몽이란 이런거구나.


애도 심리상담을 받으며 꿈이야기를 했더니 내게 도움이 될거 같지 않다면 적지 말라고 했다.

나도 무서워 그만 두었다.


엄마들은 애정하는 것들에 대한 지극한 감이 있다.

나의 엄마가 결혼을 반대했던 것도.

남편 죽고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도 친정동네로는 너무도 가기 싫었던것.

지금 고민하고 있는 아데노이드 절제술도.

작년에 아이가 중이염이 여러차례 와서 동네 이빈후과담당쌤은 편도절제술을 강력하게 권했다. 세브란스, 서울대병원까지 다녀왔으나 결과는 같았다.

수술시키라고.

하지만 너무너무 시키기 싫었다.

다른 면역기관이 많다고, 어렵지 않은 수술이다, 많은 아이들이 받았다, 검증되었다 등등 수많은 글들이 인터넷에서 나를 유혹했다.

그치만 싫었다. 무식하게 싫었다.

작년 6개월의 중이염 투어를 마치고 11개월간은 한번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비염은 여전하고, 키는 많이 크지 않았다.

아이도 불안했겠지...엄마가 병원투어를 다녔는데...

글을 쓰다보니 느낀다.

아이 중이염보다 내가 애를 끌고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면서 애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왜 이걸 지금에서야 번뜩 났을까.

그렇다고 왜 밥을 많이 먹지 않느냐, 숙제를 하지 않느냐 윽박을 했을까.


내가 쓰고자 한 글은

엄마들은 반 무당이며

점쟁이들은 남의 팔자는 알지만 내 앞길은 모른다.

세상에 애정하는 것들에 대해선

앞길이 보이나, 애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모른다고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내 앞길은 보이지 않는게 아닐까 하는 식의 글이었는데


갑자기 번뜩 떠올랐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햇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보다 무서운게 지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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