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대화할 때처럼 말을 아끼자.
2011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길어야 사오 년이면 한국에 다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벌써 미국에서 산 지도 11년이 거의 꽉 차 간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미국에서 지내왔건만 영어로 말하고 듣는 건 여전히 숙제이자 큰 도전이다. 늦은 나이에 미국에 와서 그렇다는 건 사실 핑계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고 그 불편함에 직면해야 했다. 다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더 두꺼워지는 얼굴 덕에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 일단 지껄여보는 경우가 많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나의 부족한 영어가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빛을 발할 때가 있다. 바로 두 번 말할 거 한 번만 말할 때다. 영어가 부족하다 보니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거나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경우이다.
개인적으로는 참 답답하지만 그렇게 말을 아끼는 모습이 (사실 강제적으로 아껴진 것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더 좋은 대화상대로 비치도록 도와주는 듯 하다. 그들은 나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내게 더 많은 정보를 주려는 것 같았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기에 더 집중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자세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들을 옆에서 자주 지켜본 아내는 내가 미국에 와서 적어도 대화에 있어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는 한국에 있을 때 내 대화방식에 문제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상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끼어들기도 하고 남의 말을 듣고 있는 척하면서 내가 다음에 대꾸할 말을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 같다. 한국어로 말하니 당연히 말이 더 많다. 지금도 한국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이 문제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영어로 대꾸를 잘 못해서 더 나은 대화 상대가 되었다는 게 참 웃픈 현실이지만 여기에 효과적인 대화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 있는 것 같다. 바로 말을 줄이는 것이다. 두 번 말할 걸 한 번만 말하고 열 번 말할 걸 두세 번으로 줄일 때 우리는 더 나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내 말을 아낀다면 더 나은 듣기가 가능하다. 대화의 무게 중심이 말하기에서 듣기로 옮겨간다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傾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부터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강조하셨다. 최근 발견한 아래 메모도 언제 써 주셨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같은 맥락으로 적어 주신 것 같다. 아마도 ‘경청(傾聽)’의 중요성과, 맨 아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경청(敬聽)’에 대해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사실 아버지야 말로 이 경청(敬聽)의 의미를 몸소 실천해서 내게 보여주신 분이다. 우리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내 아버지처럼 말씀을 아껴하시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시는 분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내 말들도 늘 경청(傾聽)하고 또 경청(敬聽) 해 주셨다.
아버지의 외모를 쏙 빼닮은 나는 그 중요한 경청의 자세는 닮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부단히 노력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영어로 대화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청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언제나 더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말을 더 잘 알아듣고야 말겠다는 자세로 더 귀 기울여 듣고 그 참 뜻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노력한다면, 나는 아버지를 조금 더 닮은 아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