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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Ended Mar 27. 2022

경청(傾聽)보다 먼저 해야 할 것

영어로 대화할 때처럼 말을 아끼자.

2011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길어야 사오 년이면 한국에 다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벌써 미국에서 산 지도 11년이 거의 꽉 차 간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미국에서 지내왔건만 영어로 말하고 듣는 건 여전히 숙제이자 큰 도전이다. 늦은 나이에 미국에 와서 그렇다는 건 사실 핑계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고 그 불편함에 직면해야 했다. 다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더 두꺼워지는 얼굴 덕에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 일단 지껄여보는 경우가 많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나의 부족한 영어가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빛을 발할 때가 있다. 바로 두 번 말할 거 한 번만 말할 때다. 영어가 부족하다 보니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거나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경우이다.


개인적으로는 참 답답하지만 그렇게 말을 아끼는 모습이 (사실 강제적으로 아껴진 것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더 좋은 대화상대로 비치도록 도와주는 듯 하다. 그들은 나를 더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내게 더 많은 정보를 주려는 것 같았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기에 더 집중해서 상대방의 말을 듣는 자세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들을 옆에서 자주 지켜본 아내는 내가 미국에 와서 적어도 대화에 있어  나은 사람이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는 한국에 있을   대화방식에 문제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상대의 말을  듣기도 전에 끼어들기도 하고 남의 말을 듣고 있는 척하면서 내가 다음에 대꾸할 말을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같다. 한국어로 말하니 당연히 이 더 다. 지금도 한국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문제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영어로 대꾸를 잘 못해서 더 나은 대화 상대가 되었다는 게 참 웃픈 현실이지만 여기에 효과적인 대화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 있는 것 같다. 바로 말을 줄이는 것이다. 두 번 말할 걸 한 번만 말하고 열 번 말할 걸 두세 번으로 줄일 때 우리는 더 나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내 말을 아낀다면 더 나은 듣기가 가능하다. 대화의 무게 중심이 말하기에서 듣기로 옮겨간다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傾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부터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강조하셨다. 최근 발견한 아래 메모도 언제 써 주셨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같은 맥락으로 적어 주신 것 같다. 아마도 ‘경청(傾聽)’의 중요성과, 맨 아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경청(敬聽)’에 대해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사실 아버지야 말로 이 경청(敬聽)의 의미를 몸소 실천해서 내게 보여주신 분이다. 우리 아버지라서가 아니라, 내 아버지처럼 말씀을 아껴하시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시는 분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내 말들도 늘 경청(傾聽)하고 또 경청(敬聽) 해 주셨다.


아버지의 외모를 쏙 빼닮은 나는 그 중요한 경청의 자세는  닮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부단히 노력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영어로 대화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청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언제나 더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말을 더 잘 알아듣고야 말겠다는 자세로 더 귀 기울여 듣고 그 참 뜻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노력한다면, 나는 아버지를 조금 더 닮은 아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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