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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킬러 Apr 08. 2023

스위스의 부활절

온 세상이 토끼와 초콜렛으로 가득한 날들

2023년 4월 7일 금요일부터 4일에 걸친 부활절 휴일이 시작됐다. 스위스는 국가의 근간이 카톨릭인지라 거의 모든 국경일이 종교와 관련돼 있지만, 성당/교회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인구가 해마다 바닥을 찍다보니 부활절도 그 의미를 잃고 그저 '노는 날'로 자리잡은 듯 하다. 주말 끼고 무려 4일이나 쉬는 날은 흔치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일찌기 짐싸서 인근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먼 곳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곤 한다. 

슈퍼마켓에 수북히 쌓인 토끼 모양 초콜렛이 등장하면 부활절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워낙 사건사고가 드물고 별다른 이슈가 없는 나라라 그런지 부활절같은 대형 행사(?)만 왔다 하면 두세달 전부터 미친듯이 관련 상품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행사는 대부분 초콜렛으로 포문을 열고 초콜렛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행사 내용이야 어쨌든 무작정 초콜렛부터 찍어내고 본다. 어떻게든 초콜렛 먹을 구실을 찾아 1년을 보내는 사람들 같다. '세상에서 초콜렛 소비 제일 많은 나라'라는 타이틀은 이렇게 얻는거다.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한 대형 (초콜렛)이스터버니
토끼+초콜렛 숭배자들 
산처럼 쌓인 부활절 초콜렛들 feat.달걀 장식

다들 알다시피 이곳에서도 부활절의 상징은 '토끼'와 '달걀'이다. 한국에선 부활절 주일에 교회 다니는 지인들을 통해 가끔 달걀을 얻어먹었을 뿐이었던지라 부활절이 토끼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까먹고 지냈다가 이곳에 와서야 '아, 부활절에 이스터 버니가 있었지'라는 오랜 기억을 끄집어 냈다. 독어로는 오스터하제Osterhase라고 부르는 부활절 토끼. 그런데 왜 달걀과 하등 상관없는 토끼냐고? 토끼가 번식력으로 알아주는 동물이다보니 뜻이 확대돼서 토끼=재생과 부활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됐다고 한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달걀과 토끼 상징물이 도처에 깔려서 좀 무서워질 지경이다. 토끼는 사랑스럽고 예쁜 동물이지만 초콜렛으로 대량생산되면 미래 세계 로봇 공장을 보는 느낌이라 공포감이 엄습한다.

이 정도면 공포 아닌가

초콜렛 외에 오스터쿠헨Osterkuchen이라 불리는 달달한 파이도 먹는다. 단 거 먹어야 명절이 지나는 사람들 답게 역시나 버터와 설탕, 크림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오스터쿠헨(출처: Betty Bossi)

남편에게 결혼 전에는 부활절 어떻게 보냈느냐 물었더니 어린 시절 달걀 모양 초콜렛을 집안 곳곳에 숨겨놓고 찾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민주적인 우리 시부모님은 빨리 찾는 사람이 독점해버려 자녀 셋 사이에 쌈박질이 벌어지지 않도록 초콜렛을 정확히 3등분하고 그 위에 이름을 써서 각자 같은 수의 초콜렛이 돌아가게끔 후처리를 하신 뒤 숨기셨단다. 가족 간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현명한 자세 배워야겠다.



올해 우리 가족은 아기와 함께하는 첫 부활절을 맞았다. 아직 이도 두 개 밖에 없는데다 나이가 어려 초콜렛을 먹을 수 없는 아기는 이번엔 토끼 모양 인형을 쓰다듬는 걸로 만족해야 하지만, 아마 7년 쯤 뒤엔 집 안에 숨긴 토끼 초콜렛을 찾느라 바쁠 것이다. 이제 내게 부활절은 달달한 음식을 잔뜩 먹으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기억될터다. 

but 꿈에 나올까 무서운 이 토끼 조형물은 올해가 마지막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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