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맞벌이 체험, 영속적일 수 있는가
지난 10월부터 아내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육아휴직 대체직으로, 6개월 단기 계약직이다. 계약서 작성 시점에 총 휴가일수와 월급은 고정되었으며, 병가 및 자녀 양육수당 등 정규직 직원에 제공되는 혜택은 배제되었다. 이 업무는 사실 아내가 퇴직 전 마지막으로 맡던 일이었다. 결혼 후, 아내는 근무하던 외국계 회사 내에서 보직 이동을 시도했다. 기존에 있던 부서에서 실적 압박이 심했던 모양이다. 몇 가지 옵션을 두고 고민하다 새롭게 맡은 업무가 이 것인데, 이 역시 심적 부담이 심했는지 매일 출근길이 고행길이었다. 아침마다 얼굴이 흙빛이 되어 출근하던 아내는 결국 내가 지방 도시에 있는 직장에 취직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퇴직하였고, 이후 약 5년 간 임신과 출산, 육아에 집중하며 살았다. 퇴직 당시 이 업무를 친한 동료에게 인계하고 나왔는데, 그 동료가 이번에 둘째를 임신하게 되어 그나마 해당 업무에 익숙한 아내에게 육아휴직 대체직 제안이 온 것이다.
회사는 다행히 아내의 사정을 이해하여 주 5일 재택근무를 허락해 주었다. 업무 첫날, 아내는 업무용 노트북을 수령하기 위해 서울의 본사로 출근하였는데,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준비하여 오전 일곱 시 반 기차를 타야 겨우 아홉 시까지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에 성공한 아내는 이후 지금까지 오직 단 한 차례 더 본사로 출근을 시도했다. 재택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내가 주로 사용하던 서재는 아내의 작업실로 전환되었고, 나는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 패드 및 발판 등을 준비해 주었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 다 그러하듯, "서재"라고 부르는 곳은 사실상 창고처럼 사용하게 되므로, 하루 종일 앉아 작업을 하기에는 썩 쾌적하지 못한 환경이다. 말이 좋아 재택 근무지, 업무에 전혀 최적화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회사 내와 동일한 업무 효율성을 발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꽤 우량하다는 회사의 대다수가 서울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 오랜 시간 출퇴근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운이 좋아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회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알아서 업무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아내는 그 녹록지 않은 환경에 뛰어든 셈이다.
9시부터 6시까지 근무 시간을 지켜야 하는 아내의 업무에 맞추어 우리 가족의 일상에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오전에 아내는 출근 준비와 아이들 등원 준비를 동시에 해야 했다. "출근이라고 해봤자 거실에서 서재로 들어가는 정도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9시에 정상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책상 앞에 앉아 여러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아내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일하는 특성으로 인해 수시로 비대면 화상 회의가 진행되므로, 씻고 화장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왜 그렇게까지?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6개월 계약직의 심정은 결코 정규직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는 오전 시간이 두 배로 바빠졌다. 결국 나에게 넘어오는 육아의 몫이 조금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루나의 머리는 내가 묶고 있었고(최근에는 심지어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칭찬까지 받고 있다. "아버님,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주차장까지 배웅 나오던 엄마가 더 이상 현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자, 주차장에서 주저앉거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통제하는 몫도 오롯이 나에게 돌아왔다. 퇴근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6시 퇴근 후 바로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했으며,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는 일을 맡았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책상 앞에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게 된 아내에게 주기적인 운동은 필수였기에, 유일하게 짜낼 수 있는 평일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아내가 운동을 하러 가면 남은 가사와 육아의 책임은 내 두 어깨에 실린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도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다. 밀린 설거지, 밀린 빨래, 아이들이 치우지 않은 놀잇감들, 그리고 회사에서 가져온 잔업들..
아내와 나는 더 무거워진 짐을 조금씩 나누어 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사전 합의나 토의는 전혀 없었다. 그저 새로운 상황이 주어졌을 뿐이고, 그 상황에 대처하는 큰 방향에 대해서만 한 두 마디 정도로 짧게 동의한 것이 전부였다. 이제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아니 뒤통수만 슬쩍 봐도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사이가 되었다. 일을 시작하여 바빠진 아내의 빈틈은 내가 매운다. 내가 학교일로 바쁘면 아내가 자투리 시간을 더 짜낸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서로 만의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온 우리가 축적해 온 팀워크와 전우애의 두께는 꽤나 두터움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느꼈다.
문제는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왜 아내는 일을 다시 시작하는가? 왜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가? 맞벌이에 따르는 부작용은 아내가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막 지난 요즘 벌써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루나는 내가 묶어준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풀이 죽어 있다가 선생님이 "머리 풀어줄까?"라고 물어보면 "아니에요. 아빠가 묶어준 거니까 하고 있어야죠."하고 대답한다고 한다. 아내는 퇴근 후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7시 넘어서까지 주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묶여 있기 일쑤다. 일하기 전에는 가끔 내가 일하는 곳으로 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아내 혼자 영화를 본 후 함께 하원시키는 일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가까운 과거의 일상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상담 시간에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모성의 부재를 더 강하게 느낀다며, 칭얼거림이나 떼쓰는 경향이 심하다고 조언해 주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평일에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2시간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부분 저녁식사나 목욕 등 루틴을 소화하는 과정에서의 접촉일뿐, 아이와 엄마가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거나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1시간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 맞벌이를 통해 가계소득을 증대시키는 행위는 아이들과 부모와의 접촉면을 줄인다는 심대한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그럼에도 주변의 많은 부모들은 맞벌이를 택한다. 실제로 태오와 루나가 속한 회사 어린이집의 '슬기 2반'7명의 경우, 아내가 일하기 전까지 태오와 루나를 제외한 5명 모두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었고, 이제 7명 전원이 맞벌이 부모를 둔 가정이 되었다. 등원과 하원을 전담하는 나는 매일 어린이집에서 다양한 부모의 얼굴을 마주친다. 우리 가족처럼 쌍둥이를 이 어린이집에 보내는 한 부부의 경우, 부모 두 명 모두 일이 바빠 4~6시 사이 하원 시간을 맞추지 못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 할머니도 오시고, 할아버지도 오시고, 등하원 도우미 이모님도 오시고, 심지어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직원(아마도 부하 직원일 것이다)이 대신 데리러 오는 경우까지 목격했다. "아빠 일하고 계신 곳으로 지금 갈 거야. 아줌마랑 같이 가자"라고 말해야 하는 그 직원과 생전 처음 만난 성인 여성을 따라가야 하는 그 쌍둥이 남매가 처한 상황이 서글픈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직접적으로 생중계하는 듯 느껴졌다.
맞벌이 부부가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를 보유하지 못했을 때, 이 부부가 택할 수 있는 옵션은 아이를 낳지 않거나, 아이를 최소한 낳는 것이다. 아내와 나의 지인들 중 상당수는 결혼하였지만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으로 살고 있으며, 아이를 낳은 부부들은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커리어를 지속하기 위해 조력자를 구하려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다. 양가 조부모 중 한쪽이라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지 여부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은퇴 연령이 지난 조부모에게 양육의 책무를 다시 지우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효라고 생각하지만(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조부모의 도움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환경을 가진 것이 불행으로 느껴진다고 해도 그것이 틀린 감정은 아닐 것이다. 아내와 나는 양가 조부모와 가까운 곳에 살지 않고 있으며 등하원 도우미 등 별도의 양육 서비스를 지불할 정도의 수입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므로, 아내와 나의 개인적 시간을 짜내어 커리어와 육아를 진행해야 한다. 업무 시간의 육아 의무를 상당 부분 해소해 주는 어린이집에 지불하는 비용은 국가가 보전해 준다. 이 비용은 아이 한 명 당 한 달에 대략 30~40만 원 정도로, 국가가 추정하는 육아의 비용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잘 보여준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경제적 비용은 고려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과 그로 인한 잠재적인 근로소득의 감소분은 경제학적으로만 발생하는 기회비용일 뿐, 회계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아니기에 정부는 이에 대해 비용을 추정하지 않는다.
2024년 4월이 되면 아내의 계약은 종료된다. 나는 아내가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다. 가계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외벌이로 벌어도 우리 네 가족이 먹고 살 정도는 된다. 육아로 인해 여성의 경력이 끊겨 나가는 모습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외침은 현재에 와서 모든 여성이 각자의 경제적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명제로 치환 가능하다. 경제적 자립성이 높은 여성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는 정체된 유교문화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을 것이며, 가부장 사회가 발생시키는 다양한 사회적 비용 역시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을 방치해 둔 결과 남성과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여전히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가운데 출산율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 만약 여성이 안전한 사회보호망 속에서 원래 성취되었던 수준의 커리어로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출산과 육아를 꺼려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불안정한 계약직에서 벗어나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나는 아내의 사회 복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회사에서 본사로 출근하라고 한다면 우리 가족은 회사 근처로 이사 갈 것이다. 아내가 회사 일에 집중해야 한다면 아이들의 기상부터 취침까지 내가 온전히 책임질 수도 있다. 둘 중 누군가의 커리어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형편에 있는 남성인 나의 것이어야 한다. 슬픈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부부 두 명 모두의 커리어가 온전히 지켜지는 가운데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