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화 기록

육아와 가사, 노동의 틈바구니 속에서 본 영화들

by Jong

2024년에는 총 18편의 장편 영화를 보았다. 시리즈물이나 아이들과 함께 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제외한 기록이다. 남들보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예년의 나 - 2020년 이후의 나 - 에 비해서는 월등히 많은 영화를 보았다. 원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대학생 때부터 동숭아트시네마나 아트선재센터 등을 찾아다녔고, 미국 유학 시절에도 동네에 독립영화 상영관이 없어 차를 몰고 근처 다른 도시까지 가서 작은 규모의 영화를 챙겨 볼 정도로 나름 열심히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모든 열정은 출산과 육아 앞에서는 그저 보잘것없는 헛된 욕망에 지나지 않았다. 노동의 시작을 육아와 가사의 끝으로, 다시 육아와 가사의 끝을 노동의 시작으로 이어나가는 일상 속에서 한 편의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는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24년 여름 서울로 이사를 왔고,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장거리 출퇴근을 경험하면서 영화를 볼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통 기차 안에서는 일을 하지만, 가끔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해 일에 집중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을 때 영화를 틀었다. 매일 장거리 출퇴근이 불가능한 탓에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것도 삶의 큰 변화 중 하나인데,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잠시 짬을 내어 근처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거나 살림을 하는 와중에 아이패드 등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올해 본 영화 대부분이 하반기에 몰려버렸다.


올해 본 영화들 모두 하나같이 나름의 의미를 가진 수작들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객관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시비를 걸 작품들은 아니었다. 한 해 동안 영화를 접하며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깐느나 부산 등 주요 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예술영화들이 상당히 많이, 그것도 꽤 빠른 시간 안에 국내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자그마한 독립영화 전용관이 많이 생긴 덕분인지, 넷플릭스나 유플러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소화해 줄 여력이 되었기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다.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어 올해 본 영화들에 대한 생각을 짤막하게 정리해 본다.


1월 1일. 새해 첫 영화로 넷플릭스를 통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았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설정하고 등장인물 간 대립을 통해 서사를 전개시킨다는 점에서 태생부터 메타포로 가득 찬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에 대한 여러 해석 중 나는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신약을 대표하는 예수 간 대립을 표현했다는 의견에 한 표를 던졌다. 구약의 신 야훼는 적대적이고 강압적이다. 예수로 대표되는 신약의 신은 운명론적이긴 하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식을 강조한 윤리적인 신이었다. 교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한 번 죽음) 반으로 기울어진 건물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는(부활) 주인공의 마지막 서사는 이 영화의 종교적인 시선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8월 20일. 서울로 이사 온 후 집 근처 라이카 시네마에서 전부터 보고 싶던 알리체 로르와커의 신작 <키메라>를 보았다. 영화 문법 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영화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봐도 계속해서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비로운 로르와커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한 것은 <행복한 라짜로>와 같은 가슴을 울리는 영화적 기적이 아니었을까. 무리한 기대를 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이들이 극찬한 엔딩씬에서의 감동은 크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날 보았을 텐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이날 기록이 남아있다.


8월 20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키메라>와 함께 지난해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영화는 기대를 충족시킬 정도로 훌륭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아사코>, <드라이브 마이 카>와는 결이 다른 영화를 선보였음에도 여전히 일정한 경지 이상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개발사와 주민 사이에서 펼쳐지는 숨 막히는 토론 씬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마도 지난 해 보았던 영화들의 순위를 매겨야 한다면 가장 꼭대기에는 이 영화가 있을 것 같다. 모든 씬, 모든 컷이 완벽하게 직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배우들의 얼굴, 혹은 배경이 되는 자연 그 자체가 거대한 에너지를 뿜으며 혼신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미 여기저기에서 많이 이야기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저평가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8월 21일.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친구 진하 씨가 극찬했던 영화다. 씨네필인 그가 작년(2023년) 최고의 영화였다고 강추하니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키 키우리스마키 감독의 작품을 많이 본 편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는 정도에 따라 드문드문 국내로 배급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그의 영화가 한결같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색채가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정말 좋았다. 단순하고 간결한 서사구조에 노동자 계급의 거의 모든 감정을 녹여냈다. 배우들의 연기도 무척 훌륭했다.


8월 26일.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영화는 가능하면 무조건 보려고 한다. <다운사이징> 같은 실패작도 있긴 하지만, <디센던트>와 <네브래스카>에서 가족 내부의 갈등의 구체적인 모습과 이에 대한 희미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방식은 지금도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동의하는 바다. <바튼 아카데미>는 페인 감독이 오랜 기간 추구해 온 '가족의 재구성' 테마를 심화시킨 작품이자 그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한 크리스마스 영화다.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조차 정당화시키는 폴 지아마티의 연기가 무척 좋았다. 페인 특유의 리듬을 좋아한다. 민망하거나 답답한 상황에 인물들을 배치시킨 후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앙상블을 통해 서사를 단단히 쌓아나간다. 그의 영화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한결같이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배우들도 그 리듬 안에서 절정을 맛보았을 것이다.


8월 27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개봉한 지 꽤 된 영화인데 마침 넷플릭스에 올라와 빨래를 개며 보았다. 물론 빨래를 다 갠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끝까지 시청했다. 많은 이들이 애정을 듬뿍 담아 추천한 작품인데,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길게 이어지는 쌉싸름한 감정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다. <프랜시스 하>의 오슬로 버전이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프랜시스 하>가 더 좋았다.


8월 28일. 거장 켄 로치의 은퇴작이라는 엄청난 수식어는 <나의 올드 오크>의 첫 신을 보고 나면 완전히 잊게 된다. 그만큼 로치 감독은 마지막까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인간성의 상실을 집요하게 다룬다. 혹자는 그의 영화가 여전히 성기고 거칠다고 투덜거릴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이미 충분히 이야기된 주제를 또 전달하는 것은 동어반복 아니냐고 시비를 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영화가 던지는 정직한 '직구'가 너무 좋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일상은 켄 로치의 영화보다 훨씬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나는 정의롭지 못했다. 켄 로치는 일상의 비겁함을 강하게 질타한다. 이 세상에 그의 영화가 계속 상영되어야 하는 이유다.


10월 2일. <고질라 마이너스 원/C> 역시 빨래를 개며 본 영화인데, '킬링 타임'용이라고 하기엔 무척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패전 직후 일본인들이 가진 무기력함과 지진 등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외부의 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을 고질라라는 실재하는 괴수의 형태로 발현하는 과정이 비약 없이 논리 정연했다. 괴수영화의 구성요소를 충실히 따르는 동시에 블록버스터로서의 의무도 다한다는 점에서 오락영화로서는 이만한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11일. <추락의 해부>는 분명 좋은 영화다. 아마 이 해에 나온 모든 영화들 중 가장 좋은 영화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긴 시간 이어지는 부부싸움 씬은 작년 한 해 보았던 모든 씬 중 최고였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진실과 믿음, 편견과 오만 등의 주제를 서사와 인물, 화면구성과 씬과 컷의 편집, 카메라의 움직임 등 거의 모든 영화적 요소에 녹여내어 완벽한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하지만 관객을 헷갈리게 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하기 위해 지나치게 모호하게 만든 지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변호사와 여자 주인공 간 관계 같은 것.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몇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10월 16일. "몇 분이면 충분했을 작품을 두 시간으로 억지로 길게 늘였다"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한 비판은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음향 등 감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기에 서사를 중요시하는 비평가라면 아마 상당히 지겨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두 시간짜리 영화로도 충분한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과를 몰래 가져다 놓는 소녀 장면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를 보며 지루함을 느끼는 감각조차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극히 평화롭고 따분하게 흘러가는 한 가정이 일상이 시대의 비극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은 어느새 이 비극의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10월 17일. 서울로 이사 온 후, 집과 회사를 오가는 출퇴근길은 거의 정확하게 세 시간이 걸린다. <오펜하이머>를 보기에 적절한 시간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최근 관심 밖으로 벗어난 감독이어서 사실 이 영화도 크게 볼 생각이 없었는데, 길고 긴 퇴근길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이 영화를 발견한 후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 영화로 놀란 감독이 전성기 시절로 돌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이룩한 성취의 대부분은 배우들의 몫이다. 감독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사, 편집, 음악, 효과, 카메라 등은 충분히 상투적이었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배우를 과잉 사용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예를 들어 플로레스 퓨의 활용 같은 것. 놀란의 후속작도 굳이 극장으로 찾아가서 보지는 않을 것 같다.


10월 17일. 나는 여전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혼란스럽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10월 28일. 넷플릭스에 <기동전사 건담>의 극장판 3부작이 올라왔길래 냉큼 봤다. 그중 마지막 3편은 영화적으로도 꽤 훌륭했다. <역습의 샤아>로 건담을 시작했고, 이후 우주세기를 중심으로 건담 시리즈를 즐겨 왔지만 정작 오리지널 기동전사 건담은 보지 못한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어 오랜 숙제를 끝낸 듯한 후련함을 느꼈다.


11월 16일. 나의 음악 친구들은 지난해 <챌린저스>가 최고의 영화였다고 말했다. 아마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 때문일 것이다. 그의 박진감 넘치는 오리지널 스코어가 테니스를 소재로 인물들 간 티키타카를 극대화하는 영화의 구조를 적절하게 잘 살려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루카 구아다니노의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메라의 사용과 컷과 씬의 편집, 다층적인 캐릭터의 직조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자유자재로 주무른다. 구아다니노의 영화 기술을 즐기는 것 만으로 충분히 즐겁다. 결말이 조금 허무하긴 한데, 이 영화에서 결말이 갖는 작은 비중을 고려할 때 큰 흠은 아닌 듯하다.


11월 22일.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인가, 자서전적 영화인가, 아니면 완벽한 허구인가. 자파르 파나히의 <노 베어스>는 영화적으로 매우 강렬하지만 현실로 돌아온 관객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픈 영화다.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국가 중 하나인 이란 정부의 핍박을 받는 파나히 감독 본인이 실명으로 출연할 뿐 아니라 국경을 넘기 위해 여권 브로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커플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찍는다는 극중극 형식, 더 나아가 국경 근처 마을에서 벌어지는 배타적인 이웃의 관습에 의한 폭력까지. 현재 이란 사회가 가진 모든 문제를 하나의 영화에 이토록 정갈하면서도 날카롭게 담을 수 있다니, 보는 내내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감탄과 감독이 처한 현실에 대한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결말이 더 먹먹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12월 17일. 미야케 쇼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가능하면 모든 영화를 다 보려고 노력한다. 그의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상당히 인상 깊게 보았고, 여운도 꽤 길게 이어진 터라 신작 <새벽의 모든>도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미야케 쇼는 하마구치 류스케와 다르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인간성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을 대표한다면 미야케 쇼는 따뜻한 시선을 대변한다. 엔딩 크레딧까지 이어지는 영화의 마지막 씬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12월 22일. 이유는 모르겠지만 항상 헷갈리는 짐 자무시와 빔 벤더스. 이번에 본 <퍼펙트 데이즈>는 누구의 작품인가. 빔 벤더스의 것이었다. 이 영화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어 당연히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 생각한 <패터슨>은 짐 자무시의 것이고.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 영화 역시 음악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음악 친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명곡들과 함께 하는 잔잔한 일상 영화라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이상의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주인공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의 얼굴이 영화의 이미지뿐 아니라 주제의식까지 대표하는데, 감독은 과거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의 캐릭터, 혹은 행위의 당위성 등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왜 인생을 사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지,라는 안도의 기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이브에서 성탄절로 넘어가는 밤,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포장하며 아내와 함께 <코다>를 보았다. 윤리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나와 딱 맞는 영화였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 도서와 영화가 원작이라는데, 영화에서는 감독의 자전적 내용이 배경으로 잘 녹아들어 전형적인 미국식 가족 드라마가 완성되었다. 신파라고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좀 있지만 억지스럽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영화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당위성에 쉽게 설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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