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아닌 권영국에게 투표한 이유
지난 6월 3일 치루어진 대통령 선거는 3년 전 대통령이 되었어야 하는 사람에게 원래 자리를 찾아주었다는 의미 외에는 다른 상징성을 찾기 힘들다. 대의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객관식의 형식을 띠고 있고 1987년 이후 이 나라의 유권자들이 최악의 선택지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느리게 진화시켜 왔다면, 2022년 대선으로 인해 살짝 뒤틀렸던 이 나라의 흐름이 비로소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의 의미를 살짝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이재명을 기본적으로 포퓰리스트(populist)로 본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페이스북 등 SNS를 적극 활용하여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이 정치인으로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주된 요인이었고, 당시 대표적인 치적으로 현재까지 선전하는 지역화폐 역시 대표적인 포퓰리즘적 정책이었다. 세금으로 마련한 지방정부 재원을 이용하여 지역화폐 할인율을 제공하겠다는 발상은 지역 외 소비를 지역 내 소비로 전환시키는 효과와 납세자의 소득을 지역 화폐 사용자 및 거래처의 소득으로 이전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국민이 시키면 한다"는 브랜딩 역시 걱정스럽다. 국민을 이끌어 나가는 자리가 대통령 아닌가.
이러한 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잘 할 것이다. 그는 분명 유능한 행정가로 평가 받았고 단기간 내 당을 장악했으며 여전히 높은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다. 최소한 이 나라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역량을 가지고 있으니, 전임자와 같이 엉망진창으로 나라를 갈라놓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권영국 후보에게 투표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기후 문제에 대해 유일하게 학습이 되어 있던 후보였다. 기후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우리 앞으로 다가왔고,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며, 기대하는 것보다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다행히 이재명 정부도 기후 관련된 부처를 신설한다고 하니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둘째, 그는 여성과 노동자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게 다가간 유일한 후보였다. 정의당이 녹색당, 진보당 등과 연합하여 민주노동당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정혜영 등 과거 정의당의 아젠다를 주도했던 페미니스트 그룹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여성 문제에 대해 가장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다. 노동자 문제에 대한 권영국 후보의 친밀한 접근 방식은 말해야 입만 아프다. 그는 고공농성자를 방문하는 것으로 대선 일정을 시작하여 숨진 노동자를 추모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열악한 처우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거대 자본의 약탈에 무방비로 시달리는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 우리 사회 소수자 집단에 대해 진심어린 애정을 가진 유일한 후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혐오와 갈라치기, 조롱과 비아냥이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린 정치권에서 오직 이슈에만 집중하며 법으로 완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 집단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던 유일한 후보가 권영국이었다.
나는 정치가 경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적 성과, 혹은 그로 인한 국민적 후생의 증대는 시장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정부는 시장이 실패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교정의 역할을 맡을 뿐이며, 시장이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자원을 잘 분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개선해 나가면 된다. 정부가 주도하여 시장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부분은 변화하는 대외환경에서 전략적으로 보호하고 육성할 산업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정도일텐데, 이 역시 시장의 목소리를 가만히 잘 들어주면 해결되는 일이다. 때문에 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 정부의 실책으로 인해 경제사정이 많이 나빠졌을 수는 있지만, 현 정부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살리려고 하면 과도한 인플레이션이나 정부부채 등 더 큰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우려했던 부분이 큰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와 그로 인한 시장질서 교란이었다. 나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정부의 역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할은 항상 최소한이 범위 내에서만 고려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정치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준석 등 혐오를 무기를 장착하고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여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는 정치인이 있는 반면, 입법과 국가예산이라는 강력한 자산을 바탕으로 여러 사회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 역시 정치인들이다.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 기능은 승자의 배를 지나치게 살찌우고 패자에게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것조차 빼앗아가는 냉혹함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다. 정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범위 내에서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최소한으로 보존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인은 모든 역량을 여기에 쏟아 부어야 한다. (시장에서는 정당하다고 주장하겠지만)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측은지심을 가지고 귀을 기울여주는 것, 이동권이 제한되어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모든 '정상적인' 국민들에게 들릴 수 있도록 확성기를 대어 주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더 많은 여성이 노동 현장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장기적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정치인의 역할이다. 혐오와 분열은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지 못한다. 법과 예산으로 혐오와 분열을 막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다.
권영국 후보는 1%에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질 수 있는 숫자다. 하지만 3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그의 패배를 충분히 예견한 상태에서도 표를 주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선거에서의 승패와는 상관 없이 나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나니 마음 속에서 충족감이 차올랐다. 이 맛에 투표하는구나, 싶었다. 그와 민주노동당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