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끼리 노시죠

가족모임이라는 핑계 아래 부모의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가짜 어른들에 대해

by Jong

어떤 부모들의 모임이 있다. 장소는 주로 부모들이 장시간 수다를 떨 수 있는 곳 위주로 고르는데, 아이들이 뛰어 놀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도 이해받을 만한 곳을 고른다. 한강 공원이나 대형 몰, 혹은 키즈카페 등이 꽤 괜찮은 대상으로 거론되며 실제로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그곳에서 대략 서너시간 정도를 보내는데, 그 과정에서 남는 것이라고는 사실 아무 것도 없다. 장기간 집중하기 힘든 유아의 특성 상 부모들 간의 대화는 거의 매순간 단절되며, 짧은 시간 동안 '합'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대화의 소재는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부여되어야 하는지(영어유치원, 사립 초등학교 등 교육시장의 '사치재'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 혹은 부동산과 관련된 이야기(학군 좋은 곳, 강남3구, 마용성 등 자산시장의 '사치재'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로 제한된다. 식사는 돈까스나 볶음밥 등 거부감이 최소화되는 정크 푸드 중 아이들이 입에 '한 숟가락' 단위로 집어 넣을 수 있는 메뉴가 주로 선택되며, 이 때 부모들은 번갈아 가며 식사를 하거나 조금 지친 경우 아이들에게 영상을 틀어준 후 편하게 식사하는 쪽을 택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어른들을 쫓아 다니며 이동하기 바쁠 뿐 아니라 함께 놀이를 진행해야 하는 친구는 부모들의 자녀들, 즉 극히 소수로 제한된다. 특히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부모의 친교 관계에 따라 강제적으로 '짝'이 지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본인의 놀이 성향을 상대에게 잘 설득하지 못하면 그날은 하루종일 놀이에서 소외당하거나 하기 싫은 놀이를 억지로 따라 해야 한다. 이 모임에서 부모는 아이들의 놀이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이 잘 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앞서 설명한 분절적으로 행해지는 가벼운 어른들의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놀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가 우울해 하면 해당 부모가 다가와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지만,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에 "그래도 기분 풀고 잘 놀아야지" 정도로 격려하는 차원에 그친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오는 길, 부모는 뒷좌석에 앉은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재미있었지?" 이 때 아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아마도 "그렇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생각보다 많이 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있어 부모와의 관계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며, 부모보다 아이가 더 이 관계를 그르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오늘도 재미있었다"는 대답을 강요한 부모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은 후 카톡창에서 그날 모임의 결산을 이야기한 후 다음 모임을 언제로 잡을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아이가 "그 날 재미있었어"라고 기억을 환기시키면 자신의 선택에 뿌듯함을 느끼며 이 모임을 지속하려는 욕망을 잔뜩 키워낸다.


이런 종류의 부모 모임은 한 부모의 집에 다른 부모와 그들의 아이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가족모임을 좋아하는 부모는 사실 이 유형을 더 선호한다. (외부에서 아이들을 케어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술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대리운전 등을 통해 부모 모두 술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다. 부모가 판을 벌이고 술과 음식을 즐기는 동안, 아이들은 거실 한쪽 구석에서 틀어진 영상을 장시간 시청하거나 그 집에 사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공유하며 노는 것을 강요당한다. 호스트 가족의 아이와 성향이 맞지 않는 아이는 꽤 고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꼴을 보기 싫은 부모는 주로 영상을 계속 틀어주거나 짤막하게 아이를 격려해주는 것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그 결과 아이는 상당히 오랜 시간 영상에 노출되거나 사실상 방치된 상태로 낯선 공간 여기저기를 배회하게 된다. 만약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끊임없이 부모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구원을 요청하지만, 이미 술이 들어가고 흥이 오르기 시작한 부모는 내심 아이 혼자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 아이 옆에서 친구의 역할을 대신하여 오랜 시간 함께 놀아주거나, 아이의 기분을 감지한 후 모임을 즉시 중단하고 귀가를 결정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행복이 아닌 부모들 간 친교를 목적으로 이 모임을 주선하기 때문에, 아이의 '사소한' 기분 정도로 모임을 끝내는 것은 거의 대부분 인정받지 못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상당히 길게 느껴졌을 몇 시간의 모임이 끝나고 귀가하는 차 안에서 부모는 묻는다. "오늘 재미있었지?" 아이는 "그렇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거실 한쪽 구석에서 바라본 멀리 앉아있던 부모의 오늘 하루는 꽤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의 기분을 일부러 망치고 싶어하는 아이는 없다. 부모는 아이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강요한 후,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을 잡는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나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모임에 반복적으로 불려 나갔다. 대부분 아내의 친구들과 관련된 모임이었고, 가끔 어린이집 동기 가족들과 함께 키즈카페를 대관하여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연락하며 지내는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 친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내 친구의 가족과 함께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가족과 함께 다녀온 모임의 대부분의 경우는, 이 글에 설명한 두 경우 중 하나였다. 다 같이 어딘가로 놀러가거나, 다같이 누군가의 집으로 가거나.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거의 모든 모임에서 아내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어른들 사이의 대화에 집중하려 했고, 그들 사이에는 꽤 많은 술과 맛있는 음식들이 오갔다. 오히려 내가 '어른'들을 상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집중할 경우 핀잔을 들을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내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아내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꽤 활동적인 성향의 나이 많은 남자 아이 두 명이 거실에서 축구를 하거나 욕설이 섞인 말을 하는 등 조금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그 집에 있던 시간 중 대부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그렇다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 활동적이고 나이 많은 남자 아이 둘과 번갈아 오목을 두거나 그들의 취향을 파악하여 조금 얌전한 놀이를 제안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웠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로부터 "다음에는 내 친구들(어른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으면 좋겠다"는 불평을 들었다. 아내의 목적은 나와 함께,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대화를 하는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아내에게 있어 아이들은 '알아서 잘 노는 존재'일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내 아이들이 낯선 공간에서 불편해 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을 발견한 후에도 어른들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은 '방치'라고 판단했다. 지금도 당시 내 판단은 정확했다고 믿는다. 그 후에도 수 없이 많은 부모들의 모임에 아이들과 참석했고, 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놀이의 상대가 되어 주는 등 ('괴물'이나 '도둑', '술래' 등은 어른이 해주는 것이 좋다) 그 공간에 있던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도록 나름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것이 희생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것은 당연한 전제였다. 하지만 아내 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부모들에게 비슷한 종류의 핀잔을 들었다. "오버하지 마라", "가만히 두어도 잘 노는 아이들에게 왜 그러느냐", "이 자리가 불편해요?", “당신이 그러면 다음 차례에 나도 그렇게 (놀아줘야) 해야 하지 않느냐” 등.


내 기억에, 아이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어른들의 대화를 우선시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을 방치하지 않으려 애썼던 유일한 두 사람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두 명 모두 아이가 없었다. 오랜 음악 친구인 진하씨와 대원 형님이 그들인데, 진하씨의 초대를 받아 아이들과 함께 도착한 그의 집에 아이들을 위한 것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무척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우선 진하씨의 고양이 세 마리가 큰 역할을 해주었고, 술을 (무척) 좋아하는 진하씨와 대원 형님은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아이들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늘 좋은 음악이 나오던 진하씨의 고급 스피커에서는 루나가 춤을 배웠다는 <롤리폴리>가 흘러 나왔고, 씨네필인 진하씨의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티니핑>이 상영됐다. 아이들 없이 나 혼자 진하씨네에 놀러가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나는 술과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그들이 나의 아이들때문에 불편해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진하씨는 "다음에도 꼭 또 아이들과 함께 와요"라며 즐겁게 환송해주었다. 몇 개월이 지났지만 루나는 여전히 "고양이 아저씨네"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또래 친구는 한 명도 없었지만, 루나와 태오의 기억에는 좋게 남아있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그들이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아이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조상님들의 격언은 확실한 거짓말이다.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은 반면, 아이를 낳지 않아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는 어른도 많다.


술을 먹고 싶다면, 아이들 없이 어른들끼리 만나기를 바란다.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면, 어른들끼리 만나서 그 이야기를 다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아이들을 인질로 삼아 그들의 삶 중 일부를 쓸데없는 시간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놓고 "아이도 재미있었대잖아"와 같은 시덥지 않은 자기 최면으로 면죄부를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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