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을 향한 태도

연극 <생추어리 시티>와 단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발견한 것

by Jong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에 등록된 학생은 총 12명, 그중 두 명을 제외하면 모두 외국인이다. 한국인 이름을 사용하는 미국인 대학원생까지 "이 강의실에는 세 명의 한국인 학생이 있습니다"라고 가끔 실없는 농담을 하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에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학생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10명의 외국인 학생 중 한 명이 몇 주 전부터 수업에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적은 우즈베키스탄, 학교 측에서 입학 허가를 내주기 꺼려하는 '주의' 국가다. 이메일을 몇 번 보내보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렇게 학기 중 수강생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일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학교 근처 식당에서 수업을 빠지고 홀서빙을 하던 베트남인 학생을 마주친 적도 있고, 이 도시의 외국인 출입국 관리소 공무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당시 한 방글라데시 학생이 교통사고를 냈는데 이번이 세 번째라 어쩔 수 없이 규정에 의해 추방해야 한다며, 당시 학과장이었던 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을 선처할 만한 명분이 있는지" 물어본, 나름 선한 의지를 가진 공무원의 전화였다. 요즘 내 수업을 들어오지 않는 그 우즈벡 학생은 - 나의 섣부른 추측에 의하면 - 아마도 이 도시와 인접한 소도시의 작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학교로의 입학을 주선한 현지 유학원(혹은 브로커)의 알선을 통해 알게 된 그 공장에서 일하기로 한 약속을, 내 강의에 대한 수강신청보다 먼저 결정했을 수도 있다.


장기결석 외국인 학생에 대한 학교의 방침은 이미 확고히 정해져 있다. 담당교수인 내가 학과 측에 출석부를 제출하면 학과는 비슷한 사례를 취합해 국제교류본부로 보낸다. 외국인 학생 관리를 총괄하는 그 부서는 몇 가지 간단한 서류 확인을 거친 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할 것이고, 그것으로 학교 측은 이 학생에 대한 모든 의무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수업을 듣던 우즈벡 학생은 불법 체류자로 신분이 바뀔 것이고, 이 나라에 사는 시민으로서 누리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다. 공장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아마도 이 나라에 온 유일한 목적이었을) 고국의 가족에게 송금을 보낼 때에도 타인의 명의를 빌려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를 속이려고 덤벼들 것이며, 부당한 거래를 제시하며 그의 얄팍한 주머니를 강탈해 갈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학교 측 관계자에 따르면, 내가 속한 학교는 "그래도 외국인 학생들 관리를 꽤 잘하는 편"이며, "도망간 학생을 잡는 것에도 이제 제법 능숙해졌다"고 한다. 그들의 능숙한 관리 덕택에 아마도 내 수업을 듣던 우즈벡 학생은, 몇 개월 내에 고국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질 것이다.


대학가 근처에 있는 인도 식당, 빛도 잘 들지 않는 빌라촌 한가운데 있는 중국인 마트, 건설 현장에 붙어 있는 5개 국어의 안전 문구들. 이민자의 삶이 아직 어색한가. 우리나라에 먹고살기 위해 건너온, 나라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 어려운 그 어색한 국가에서 온 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아직 상상해 본 적이 없는가. 이민자와 함께 살아가는 한국 사회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에 이미 도착해 있는 현실이다.


폴란드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뉴욕에서 성장한 극작가 마티나 마이옥의 연극 <생추어리 시티>는 뉴욕주 뉴아크의 이민자 밀집 지역에 사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911 테러 직후인 2002년 시작된 이야기는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인 2006년 말에 끝난다. 테러로 인한 외부로부터의 집단적 공포를 내부의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했던 시기, 가장 취약한 계층이었던 불법 이민자 가정 내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던, 방치된 십 대들에 대한 이야기다. 소년과 소녀는 어머니 만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한부모 가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학대와 방치에 노출된 채 성장한 듯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만난 이들은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서로에게 기댄 채 버티어 냈다.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퍼붓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녀는 소년의 방에서 잠들기를 청하고, 소년은 좁은 침대의 한편을 내어준 대가로 따뜻한 온기를 건네받는다. 반테러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결국 소년의 어머니는 추방당하고, 홀로 남겨진 소년을 위해 소녀는 식은 빵부터 실없는 농담까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려 노력한다. 그들이 도달한 해결책은 결혼. 까다로운 질문을 통과하기 위해 과거를 꿰맞추던 이들은 소녀의 대학 진학으로 인해 갈라져야만 하는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위에 간략히 기술한 소년과 소녀의 두터운 과거의 감정들을, 한 시간 가량 진행된 1부에서 두 명의 배우가 80여 개의 신을 바삐 오가며 엄청난 양의 대사와 간결한 몸짓 만으로 전달한다. 1부의 무대 장치는 조명과 배경음악, 단 한 개의 오브제 만으로 절제되어 있으며, 관객은 당시 유행하던 팝송과 시대 상황을 암시하는 문학적 대사를 통해 소년과 소녀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인식하게 된다. 2부는 1부에 비해 상당히 전통적인 양식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무대 소품과 보다 직관적이고 현실적인 장치들, 그리고 전통적인 희곡의 문법에서 행동하고 이야기하는 배우들까지, 2부는 관객들에게 본격적인 몰입을 요구한다. 1부에서 충분한 정보를 빠르게 주었으니, 이제 함께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제안을 던진다. 2부에서는 소년과 소녀가 감정적으로 멀어진 이유들이 하나씩 등장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소녀는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3년 반을 흘려보냈고, 소년이 소녀를 간절히 원하던 순간에 결국 소년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은 고된 노동에도 벗어날 수 없는 빈곤 속에 살고 있으며, 소녀가 있었던 보스턴의 대학에 몰래 방문한 후 "손에 닿지 않는 것"을 감히 바랄 수조차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이 위장결혼을 성사시키거나, 혹은 좌절시킬 수 있는 제3의 인물인 헨리가 나타나고, 이때부터 극은 본격적으로 배우들 간의 앙상블을 통해 절정으로 치닫는다. 소년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자 다시 나타난 소녀, 그리고 소년이 사랑한 헨리. <생추어리 시티>는 궁극적으로 혼자 남겨지게 된 소년이 마주한 고단한 삶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막을 내린다.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쓰인 희곡, 이를 한국적으로 결코 과하지 않게 옮긴 번역, 상징적인 무대 연출, 그리고 밸런스가 잘 맞춰진 배우들의 연기와 에너지까지, 흠잡을 곳이 없는 좋은 극이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오바마를 받아들이며 의료보험제도 개혁, 사회보장제도 강화, 성소수자 결혼 합법화 등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아주 짧은 부흥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트럼프가 등장한 후 미국사회는 급격히 무너져내렸다. 마약에 찌들고 총기범죄는 규제당하지 않으며 소수자를 위한 탄압과 폭력은 어느새 정당화되기에 이르렀다. <생추어리 시티>는 과거의 시제가 현재에도 유효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탁월한 작품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작품이 갖는 보편성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사회 위에서 읽어내려가도 때리는 지점이 꽤 타당하고 명확한 작품이기도 하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 연극을 보는 내내 김기태의 단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떠올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진주와 니콜라이는 묘하게 <생추어리 시티>의 소녀와 소년을 닮아 있다. 제도권 교육 안에서 최소한의 숨 쉴 곳을 마련한 '시민권자' 진주는 보스턴의 대학에서 제도권 교육의 안온함을 거부하지 못한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대학이라는 신분 상승 기회를 애초부터 박탈당한 채 불안정한 견습생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딘 니콜라이의 모습은, 수학숙제를 풀지 못해 괴로워하지만(그리고 그토록 학교에 다니고 싶어 했지만) 결국 늦은 새벽까지 술집에서 일해야 하는 <생추어리 시티> 속 소년의 한국적인 모습이다. 니콜라이는 정규직이라는 희망이 점점 옅어지는 가운데 절망과 싸우는 법을 억지로 익혀야 한다. 소년은 강제 추방이라는 공포 속에서 벗어나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소녀의 연락을 기다리며 3년 반 째 지독한 피곤과 가난 속에서 사투하는 중이다. 소녀가, 혹은 헨리가 사다 주는 파마산 치즈가 올라간 샌드위치를 얻어먹어야 하는 소년의 저릿한 마음과, 삼만구천 원짜리 작은 식탁을 큰맘 먹고 구입했지만 볼트 구멍이 잘못 뚫려 있는 불량품임을 알고도 웃어야 하는 니콜라이의 단단하게 굳은 마음 사이에는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결국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과거와 고통뿐인 현재, 그리고 기어이 박탈당한 미래를 손에 쥔 소년의 모습보다는, 마을버스도 오지 않고 방음조차 잘 되지 않는 허름한 집에 살고 있지만 저녁에 진주와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삶으로까지 나아간 니콜라이의 현재가 조금은 더 마음이 놓인다. 그 정도의 연한 차이가 둘 사이에 존재한다. 그것이 미국과 한국의 차이일까. 잘 모르겠다.


<생추어리 시티>와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아픈 지점이 있다. 연극에서 헨리의 역할, 혹은 단편에서 "비즈니스 담임"으로 불린 진주의 담임교사의 역할과 같은, 주인공보다 조금 일찍 사회의 내부자로 받아들여진 '시민권자'의 역할, 혹은 경계인을 바라보는 태도의 문제다. 소년이 사랑한 헨리는 소년의 추방 이후를 설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고국으로 함께 가서 살자는 소년의 제안에 정색하며 거절한다. 자신이 쌓아 올린 내부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은 헨리에게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진주의 담임교사는 진주의 형편에 맞는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전달해 준다. 담임 입장에서는 "비즈니스"였겠지만, 어쩌면 선한 의지에 의한 '베풂'이었을 수도 있다. 헨리의 태도는 맞는가. 그렇지 않다면, 진주의 담임의 태도는 맞는 것인가. 경계 안쪽으로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민자를 자신의 '밑'에 두고 자신의 것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은 채 약간의 선한 마음을 건네는 것이 이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유대이며 연대인가.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만든 '테두리' 안으로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들이지 않으면서 이들과 연대한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위선적인 시민권자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교수로 일하게 된 2018년 이후, 학교에서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때로는 그들을 환대했으며, 때로는 그들을 냉대했다. 그들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때로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나를 만난 외국인들은 거창한 꿈이나 야망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 졸업장 하나 받아서 가고자 하는 것이 전부인 이들이었다. 혹은, 이 학교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국경을 넘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었든 이들은 모두 큰 용기를 내어야 했다. 국경을 넘어 아는 이 하나 없는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한지 모르는 바 아니다. 나 역시 미국에서 6년 동안 그러한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으므로. 가난에 허덕이고 불안함에 시달리며 비틀거리는 6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진 자'의 위치에서 내가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어 주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상담을 위해 찾아온 방글라데시 학생에게 "졸업 후 고국으로 돌아가실 건가요?"라고 차갑게 물어보았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우즈벡 학생에게 "내가 도와줄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라고 짐짓 친절한 척 이메일을 보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추어리 시티'는 미국 내에서 그나마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곳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대학교와 학교 주변 빌라촌이 한국에서 생추어리 시티에 해당하는 구역일 것이다. 혹은, 안산이나 조치원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도 어쩌면 생추어리 시티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아주 외롭지는 않을 것이므로. <생추어리 시티>의 소년과 소녀처럼, 어렵고 힘든 순간에 실낱같은 희망으로 도움을 청할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존재할 확률이 0%는 아닐 것이므로. 그리고 한국에서 이 생추어리 시티는 점점 면적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혼혈의 얼굴을 한 다문화 가정 출신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더 자주 보일 것이고, 우즈베키스탄, 혹은 몽골에서 온 젊은이들이 구직을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파란 눈의 한국인이 내 아들과 딸의 옆자리에 앉아있을 확률은 매우 높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민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이미 현재에 도착해 있는 이곳에서, 준비를 차분히 할 시간적인 여유 따위는 주어져 있지 않다. 지금 당장, 이들을 이웃으로 품어 안을 여유가 우리에게 있는지 물어볼 시간은 어쩌면 조금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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