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다가 조난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12월 25,26,27일 연휴에 뭘 할까? 생각하다 무박으로 설악을 가보고 싶어 졌다. 하산 코스로 안 가본 천불동 계곡이나 수렴동 계곡 쪽으로 가고 싶었다, 올라가는 건 언제나 오색! 가장 짧으니까, 24일 밤 출발로 갈려고 했는데 인원이 안차서 취소가 돼서 다음날 25일 출발하는 거로 급 변경하였다.
날씨는 24일까지 그럭저럭 포근하였는데 갑자기 25일부터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뚝 떨어지면서 한파로 바뀌었다. 젠장 가뜩이나 설악산 정상부 쪽은 추울 텐데 지상이라도 따뜻해야 위에서 덜 추운데 날씨운이 따라주지 않는구나, 남들은 잠자리에 들시간 12시까지 양재역으로 향한다.
오색분소까지는 3시간 남짓이면 가는데 동절기라 오색 개방시간이 4시부터라고 어느 휴게소에 차를 세워두고 시간을 때우다 10분 전에 오색에 도착하였다. 너무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연휴라 그런지 북적대는 인파도 없었고 승용차 서너 대에 산악회 버스 두대가 전부였다. 노면 상태를 보니 눈이 안 내려서 너덜길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뭐 아이젠은 위쪽에 가다가 차야겠구나 하고 출발했다.
4시 땡 되니 문을 열어준다. 새벽 추운 공기가 옷 속으로 파고든다. 좀 있으면 열나겠지 하고 오르니 역시나 땀이 나서
옷 하나 벗고 올라가니 설악폭포 부근부터 바람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린다. 오색~대청 코스가 골짜기라서 바람이 없었지만 설악폭포 이후부턴 간혹 가다가 강풍도 불어오고 있었다.
이미 바닥은 얼음과 눈으로 미끄러운 곳이 너무 많아 돌만 딛고 요령으로 아이젠 꺼내기 귀찮아 미루고 미루다 결국은 아이젠은 배낭에서 꺼내서 착용하고 오르니 이제 눈발까지 날린다, 아래쪽에서 고요하던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그런데 저 위 높은 나뭇가지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소백산 바람 소리랑 다르다. 이때까지만 해도 위에 대청봉 상황을 모르고 그냥 부는 바람이겠거니 하였는데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가 웅~웅
거리다가 왱~왱하는 소리는 나무가 우는듯한 정도의 위력이었다.
대청까지 70% 정도를 올라갔을 때 바람이 쌔서 등에 땀나던 것도 없어지고 체온이 떨어지고 있었고, 거기에 수면부족으로 잠까지 졸려온다. 수면부족으로 체력도 떨어지고 감기 초기 증상이 있어서 그런지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다른 산은 스틱 없이 올라가서 하산할 때만 사용하는데 깜깜하니 볼 것도 없고 사진 찍을 것도 없어 스틱을 처음부터 사용하는데도 힘에 부쳤다. 얼마 가다 잠시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쉬면서 졸다 가다를 반복해서 대청까지 4시간이나 걸렸다. 해발 1000m 고지를 넘어서면서 나뭇가지마다 화려한 상고대가 헤드랜턴 불빛에 반사되며 반짝이지만 손가락이 추우니 만사가 귀찮아져서 평소 같으면 수백 장 찍을 사진도 10분에 1도 못 찍었다.
대청에 7시 50분에 도착하는데 바로 허둥지둥 오색 쪽으로 내려가는 산객 두 분이서 아래쪽에도 바람 불어요?
하고 물으시길래, 아뇨 아래에는 하나도 안 불어요! 왜 물어보지? 하고 숲이 우거진 곳을 지나 사방이 트이는 대청봉에 다다르자 10시 방향에서 강타하는 돌풍에 몸이 휘청~ 뒤로 3 스텝 와다다~! 어이쿠 이게 뭔 일이냐? 졸리던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몸을 바람 부는 방향으로 기울이고 자세를 낮추고 꾸부정 폼으로 정상석에 접근하니 사람들은 모두 중청대피소 방향으로 황급히 모두 피하고 6명 단체사진을 찍어주는 분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손 시려서 싫다고 휴대폰이 아니라 카메라라고 하니까 그럼 달라고 하여 찍었는데 바람에 버티니 엉거주춤 이 되어 버렸다.
대충 찍고 나도 빨리 중청으로 대피해야겠다 하고 카메라를 받는데 뭐라 그러신다. 바람소리에 대화도 잘 안된다
모자 저리 날아갔어! 엉? 아뿔싸 내모자 여자분이 가리키는 쪽은 등산로가 아닌 대청봉 정상석에서 북동쪽 2시 방향이었다.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어디까지 날아갔는지 알 수도 없고 무엇보다, 강력한 돌풍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칼바람이 옷깃 틈새로 강력하게 밀고 들어오고 있어서 체온이 떨어져 몸은 얼어있는 상태였고 옷을 5개나 입었는데도 몸은 체온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장갑은 2겹에 안에 소형 핫팩까지 들었는데도 손가락은 얼어서 감각이 없이 이미 돌덩이처럼 딱딱했다. 카메라 전원 버튼을 누르는데 전혀 감촉이 없었다.
중청으로 몃몃분들이 서둘러 내려가는데 난 맨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칼바람이 부는 와중에 간혈적으로
돌풍 펀치가 날아올 땐 몸이 오른쪽으로 들썩거려서 아무래도 몸이 뜰 거 같아 이동을 못하고 오른쪽에만 있는 목책에
밧줄을 잡고 버티는데 맞바람을 맞으면 눈보라로 앞을 볼 수가 없어서 바람을 등지고 게걸음으로 옆으로 걷는데 바람이 뒤에서 때리니까 그걸 버티기 위해 허벅지 근육 양쪽에 순간 쥐가 온다 다리를 피면 쥐 나고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면 쥐를 못 느껴서 엉거 주춤으로 중청대피소까지 내려오는 500여 미터 거리를 20분이나 걸렸다. 500미터가 마치 5km처럼 느껴졌다.
평소 맑은 날은 중청에서나 대청에서나 서로 빤히 보이는 거리인데 이날은 눈보라로 가시거리는 20~50미터 밖에 안 보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할 수 없어 직감적으로 그냥 걸어간 것이었다. 정확하게 보이는 것 오른쪽에 목책 기둥과 밧줄로 여기가 등산로 라는걸 확인할 뿐 같이 간 짝꿍은 대청을 먼저 통과하여 내려가 있는 상태였는데 사전 약속은 소청대피소에서 야침을 먹자고 약속했는데 아마도 상황에 중청에 있을 거 같았다. 이 눈보라 속에 소청까지 못 갔을걸 나는 100% 확신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중청으로 혼비백산 피신하여있었기에
중간쯤 내려오자 중청대피소가 100여 미터 정도 멀리서 흐릿하게 보인다, 휴~ 살았구나 안도를 하며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짝꿍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도 몸이 뜰 정도라 많이 걱정했다고. 한 시간 동안 안 내려오길래 뭔 일 났는 줄 알았다고, 중청대피소는 바람을 피해 들어온 산객들로 인산인해였고 복도며, 취사장이며 피신해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취사장은 어디 배낭 하나 놔둘 자리도 없이 대만원이라 대충 구석에 배낭을 던져두고 라면을 끓여먹으며 몸을 녹였다.
체중이 80kg는 족히 넘어 보이는 장정들도 휘청거리고 몸이 떴다고 하니 그거에 비하면 나는 체충이 깃털처럼 가벼우니 남들은 휘청일 때 나는 몸이 들썩거리는 수준이라 눈보라가 몰아치자 순간적으로 이거 오색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중청에 가면 바람이 여기보다 안 불 거야 일단 내려가 보자 하고 내려온 것이었다. 이렇다가 바람에 밀려서 넘어져 바위에라도 부딪치면 조난당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처음 느껴본 공포였다.
낭떠러지 높은 곳에서도 아래를 처다 보는 나인데 고소공포증 없는 나에게 몸을 가눌 수 없는 눈바람은 시야를 막고 몸을 제어가 안되기에 더 더욱 공포였었다. 다른 산객들이 말한다 산중에 칼바람은 소백산이 최고라고 하지만
셀 수도 없는 지방 원정 산행에도 이런 바람은 처음이었고 같이같 짝꿍은 30년이 넘는 경력에도 처음 겪는 바람이었다고.
소백산 칼바람 이것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도대체 얼마가 불었나 풍속 기상청 측정자료를 찾아보니 26일 아침 기온은 영하 11도에 풍속은 25~26 m/s 이였다. 해발 8000미터급 히말라야가 30 m/s 분다고 하니 얼마나 세찬 바람이었는지 비교가 된다. 대청봉 기온에 풍속을 계산하면 체감온도는 -38도 된다.
1월 1일 일출 시에도 대청봉에 바람이 11m/s 나 분다고 예보가 있다. 이제 따듯한 남쪽으로 가서 남해군에서 일출을 봐야겠다. 눈이 많은 거 는 좋지만 기온이 낮고 추운 게 더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