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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Nov 02. 2022

불안과 미룸, 그리고 질적 연구

불안은 나의 힘

나는 미루기 대마왕이다. 

중학교 때는 일주일 동안 세 시간을 자면서 시험공부를 벼락치기로 했다.

분명 공부 스케줄은 2주 전부터 짰는데, 결국엔 이틀 전부터 제대로 했다.

시험 치기 직전이 부스트.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험 전날에는 밤을 새웠다. 새지 않으면 시험 범위를 다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다면 여러 번 보았을 텐데...라는 후회의 연속.

중고등학교 시절을 그렇게 살았는데도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버릇은 그대로였다. 또 밤새서 시험공부를 했다.

교양 수업의 글쓰기 과제 두 개를 제출일 아침 3시간 동안 쓴 적도 있다. 친구들은 그게 가능하냐고 했지만, 나는 불꽃같은 집중력이 찾아오는 마감 직전이 아니면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아마 제출 일주일 전이었다면 깜박이는 커서를 한없이 바라보았을 것 같다.


또 인생의 큰 시험을 치게 되었다. 그리고 교단에 섰다.

교사가 되어서는 시험을 내는 입장이 되었다. 버릇은 그대로였다.

조금 더 일찍 출제했다면 여러 번 검토했을 텐데... 재시험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렇게나 미뤄온 인생인데도 그럭저럭, 남들이 보기엔 꽤 괜찮은 성취를 이루며 살아왔다. 

혼자만 관련된 일이라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지만, 남이 관여되는 일은 D-1 전에 끝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타인에 민폐 끼치는 일을 정말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그래서 남들은 내가 열심히 사는 줄 안다. 


나는 집에서 유튜브, 팟캐스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에 200 보도 걷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인데.

책을 좋아하지만 사는 것을 더 좋아하며 읽는 데는 한없이 게으른데. 몇 년 전에 산 책들도 완독 하지 않고 쌓아두었다가 결국엔 새 책으로 기부를 하는 기부 쟁이인데.




팟빵에서 추천한 《비혼세》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작명 센스에 감탄했다. 그리고 본인의 미룸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시는데 내 얘기인 줄 알았다. 영노자, 밀림의 왕, 비혼세 세계관을 섭렵하면서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미루는 것은 완벽주의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오은영 선생님이셨다! 대화의 희열3, 어른이도 고민이 있어요.). 일단 시작하면 되는데 잘하지 '못' 할까 봐 시작을 유예하는 것이다. 캥작가님이 지하철에서 방송 대본을 쓰실 때 집중이 가장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아닌가. 나도 방송작가였다면..?' 


곽민지, 이진송 작가님의 공동 저작물 『미루리 미루리라』를 읽고 내 인생이 정당화된 느낌을 받았다. 

곽민지x이진송 『미루리 미루리라』

두 분 모두 훌륭한 창작자이시고 다양한 일들을 성취해내셨는데 이렇게나 미루며 살아오셨다니.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불안을 낳았고

불안은 시작을 미루게 했고

마감 직전에 황홀한 몰입감이 타올랐다. 

나는 미룸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마감 직전의 엑스터시'에 중독된 것이다.


대학원에 입학해 질적 연구를 접하면서 패러다임 대전환을 경험했다.

내가 수집한 데이터를 계속 들여다보고 관련 문헌을 찾아 읽으며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는 나날들을 보냈고

어떤 해석이 적합한지 지금 읽는 논문이 도움이 될지 안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연구 데이터는 그대로인데 연구 과정에서 연구 질문과 연구 방법이 계속 바뀌었다.

질적 연구는 원래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s://dohwan.tistory.com/984

그래서 입학 초기에는 너무 불안했다. 

A를 투입하면 B가 나오는 공식이 있는 게 연구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질적 연구에서는 마감 직전의 엑스터시를 발휘하기 어렵다.

내가 완성해야 할 것은 학위논문이지 소논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었다.


훌륭한 교수님의 지도에 따라 약 1년 반에 걸쳐 써온 작은 글의 파편들이

논문의 초록과 목차 초안을 완성한 지금, 퀼트 조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며칠을 고군분투하며 번역한 40페이지의 논문을 내 논문에 인용하지 못할지라도

연구의 감을 잡게 도왔다는 것, 연구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 즉 말이 통하는 연구자가 되도록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질적 연구자로서 살다 보니 조금씩 덜 미루고 일단 착수해보게 되었다.

'석사 논문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말에 안도하며 완벽함 내려놓기를 연습 중이다.


하지만 논문 쓰기를 미루고 미룸과 마감 직전 엑스터시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미루미인가 아닌가.


글쓰기 오픈카톡방에 내일까지 인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글을 쓴 것은

미루미 탈출을 위한 일보 전진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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