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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Jan 16. 2024

우울의 급습

운동화로 피신할 것

2024년, ‘여유로운 사람’이 되기로 하였고 그러기 위한 Action plan 중 하나는 ‘이어폰 없이 밤산책하기‘이다. 하지만 아직 해본 적이 없다. 밤 시간에는 무산소성 근육 운동을 한 뒤, 러닝 머신 위에서 아드레날린을 솟게 하는 음악을 들으며 뛰기 바빴다. ’걷기 명상‘을 예찬하는 글이나 음성을 접한 적은 많으나 정말로 걷기 명상을 해본 적은 없다. 길거리에서 들리는 어떤 소리도 나를 방해하지 못하게 노캔을 켜고는 ’오디오북, 팟캐스트, 그게 아니면 음악‘을 듣고 다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커피를 마실 때 커피만 마시는 일이 명상이라고 했는데, 나는 효율을 추구한답시고 걸으면서도 걷기에만 집중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오디오북에 집중하고 있지도 않다. 그냥 걸을 때는 걷기만, 팟캐스트를 들을 때는 팟캐스트만 듣는 게 좋지 않을까? 1월이 지나기 전에 해본다!


‘타이탄의 도구’들에 나오는 감사일기도 쓰고, 스케줄러 겸용 다이어리(사르르 다이어리)도 쓰지만 기록도 멈추게 하고, 운동중독자인 나의 운동마저 멈추게 하는 일이 1년에 1–2번 찾아온다. 그게 어제였다. 갑자기 우울했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 내가 모든 의욕의 불씨가 꺼졌다. 우울과 불안은 친구여서 함께 왔다. 지금껏 이뤄온 것들이 우연 같이 느껴지고 내 실력은 풍선이라는 생각이 나를 찔렀다. 그냥 먹고 즐기고 누워버리고만 싶어졌다. 그러한 욕구에 굴복했다. 카페에서 일도 하고 운동도 가려고 배낭에 노트북과 운동복을 넣어 두었는데 외출하지 않고 후회할 시간들을 보냈다. 오락성 유튜브 영상을 보며 집에 있는 (많이 먹으면 나쁜) 음식들을 먹어치우고 술도 조금 마셨다. 그리고 12시간을 내리 잤다.


일어나니 역시나 후회가 밀려왔다. 일단은 어제 안 한 (먹고사는) 일들을 좀 하고, 헬스장을 갔다. 우울과 불안은 여전히 어깨 위에 있었는데, 몸을 풀고 레그 익스텐션을 시작한 순간 사르르 사라졌다. 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운동 처방을 내리는지 알 것 같았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이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신묘한 기분을 신에게 돌리겠지. 나는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나는 신체와 마음의 유기적 연결 체계에 돌리고자 한다. 몸이 곧 마음이기에 움직임이 결국은 내면의 힘을 기르는 데 필수적이라는 내용을 담은 ‘내면 소통’이라는 책과 ‘움직임의 힘‘이라는 책을 읽다 쉬는 중인데, 직접 깨닫게 되었다. 하루를 버리고 다음날 얻게 된 깨달음이어서, 버려진 하루가 업사이클되었다(오히려 좋아.).


애플워치에 내 기분을 하루에 두 번 묻는 ‘마음 챙김’ 기능을 켜두기 시작했다. 현재 순간의 느낌을 5단계로 묻고, 여러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들 중에 고르게 하고, 그것이 어느 영역(피트니스, 가족, 연애, 직장, 학업 등등)에 기인한 것인지 고르게 한다. 스스로를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켜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기능 중 하나이다. 내 마음을 모니터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거마저 어려울 때는, 운동화를 신고 일단은 외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오늘의 깨달음, 우울이 급습할 땐, 운동화로 피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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