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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l 19. 2021

시뮬라시옹과 단상1

"좌파는 혼자서도 그리고 자발적으로 일을 아주 잘해 준다"


 보드리야르는 미국 대통령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들면서 위와 같은 얘기를 했다.


굳이 우파의 음모와 사주가 아니더라도

좌파 스스로도 얼마든지 스스로를 붕괴시킬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파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우파는 우파대로 좌파의 일을 대신해주는 어리석음.


생각해보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좌파진영에서는 이명박 의 탓으로 돌리지만,

정작 노무현대통령의 처참했던 지지율은 좌파 스스로 만들어가지 않았나싶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것을 두고 '트로이의 목마' 운운하며 오히려 노대통령을 보수가 심어놓은 프락치 취급을 좌파가 하지 않았던가,


진보는 도덕적이고 투명해야 한다는 해괴한 한국정치의 문법은 놀랍게도 보수가 지정한 자리가 아닌 진보스스로 자청한 자리이며, 이것이야말로 지옥의 아가리가 아닌가.

진보의 도덕성과 투명성의 잣대가 보수에게 향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보수진영에서 몇백억을 해먹는것과 진보진영에서 수천만원을 해먹는 것이 동일하게 처리된다.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던 노회찬 의원의 자살이야말로 가장 상징적이다. 그 스스로 진보의 자살골을 가장 세게 때려넣었고...(그렇다. 그냥 툭 밀어서도 자살골이 될 형국이었는데 굳이 그것을 극단으로 밀어넣었다) 그렇게 정의당은 붕괴되었다. (지금의 정의당은 무슨당인지 알길이 없다. 그냥 알 수 없는 소수정당이라 부르고 싶다) 오히려 절대 죽지 말고 버텼어야 했는데, 노회찬이라는 세글자에 새겨진 상징성이 너무 강했다. 진보는 도덕적이고 투명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기치가 결국 '무결점주의'로 흘러간 셈이고, 그 치부가 드러난 순간 그는 진보가 쌓아올린 그간의 모든 탑을 무너뜨리며 자신도 쓰러져갔다.

박원순 시장의 사례는 말해 무엇할까. 여성인권신장의 상징적 존재였었던 과거의 박원순이 3선 서울시장 박원순의 발목을 스스로 잡았다. 어떻게 싸워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잘못했더라도 그 잘못을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가를 진보진영 모두와 함께 했어야 했다. 분명 진보 스스로 더 거세게 비난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수가 가장 바라는 결과를 진보 스스로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권력투쟁의 장이지 종교적 해탈의 장이 아니다. 종교가 정치와 만나면 잘해봤자 전광훈이 아닐까? 그보다 최악의 정치가 또 있을까. 광신자 집단이 권력을 잡으면 모두가 고통받을 뿐이다.

결국 각자의 정치적 스탠스가 있다. 그렇다면 그길을 향해 가면 될일이다.  가는 여정에 어찌 똥이 묻지 않겠는가. 남이 묻힐 수도 있고, 내 스스로 싼 똥일지도 모르겠으나, 정치는 홀로 하는 것도 아닌만큼 자신의 공적 위치에서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상대방이 원하는 플레이를 해주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될까? 앞으로도 또 반복될 것같고, 기시감이 늘 우리 눈 앞에 아른 거릴 듯하다. 따갑고, 가렵고, 걸리적 거리는 그 이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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