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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시나페홀로
May 04. 2020
신해철의 죽음을 통해 알게된 30,40대의 영웅부재
마왕 신해철
(이 글은 2014년 가수 신해철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에 신해철을 애도하면 썼던 글입니다)
마왕 신해철이 허무하게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의 떠남을 통해서
그는 우리세대에게 '영웅'의 뒷모습,혹은 그림자로 다시 다가왔다.
그렇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
신해철을 그리워하고,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으며,
그의 지나간 명반들과 행적들을 다시 기억하고 있는 이 시기에
나 역시 이 글 하나만큼은 남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남기고 싶은 것은
신해철의 죽음이 그간의 다른 연예인들의 죽음과는 무언인가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물론 다른 연예인의 생명이 신해철보다 더 가치가 없다거나,
영혼이 가볍다는 말도 안되는 망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느낌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나만의 느낌이 아닌, 바로 나와 같은 30대, 혹은 40대 초반의 세대도 분명 같이 느끼고 있는 느낌이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기에 이 글을 쓸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신해철의 골수팬들은 지금 묘한 양가감정을 느낄거 같다.
한가지는 고마운 마음,
그동안 크게 신해철에게 관심도 없어 보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함께 슬퍼해준다는 점에서.
또 한가지는 정반대로 분노, 혹은 질투의 감정이다.
평소에는 신해철이 힘들때 별로 목소리도 내주지 않던 대중들이 이제와서 그의 죽음앞에서 슬퍼하는 것은
'자기만의 마왕, 우리만의 마왕' 신해철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해서다.
나 역시 바로 광팬들의 분노의 대상이 될게다.
나는 신해철을 광적으로 좋아한다거나, 심지어 평소에 자주 듣는 음악목록에도 신해철이 들어있지 않다.
물론 신해철이 나에게 음악적으로 준 영향은 분명 많다. 학창시절부터의 시간이니까 어찌 영향이 없었겠는가, 여하튼 나는 신해철을 잊고 있다가 지금 그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그를 기억하며
진심으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바로 그 팬아닌 팬중에 한명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와같은 입장의 대중들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점이다.
특히, 30,40대...
여기서 나는 한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신해철은 단순한 뮤지션도 가수도 아니였음을,
그는 지금 우리세대에게 꼭 있어줘야 하는 상징적인 영웅이었던 셈이다.
즉, 평소에는 영웅으로 인식하지도 추앙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부재를 통해서 드러나는 존재감인 것이다.
그는 분명 우리세대의 영웅이자 거인이었다.
혹은 우리세대가 해야할 짐을 대신 지고가는 자? 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세대를 뒤돌아보자,
70년대와 80년대에 태어난 현재의 30,40대층은 초딩때나 청소년기에 신해철을 만나게 되었던 세대다.
흑암의 한국현대사를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일종의 충돌과 끼인 세대라고 표현하고 싶다.
즉 완전한 군사독재시절에서 오직 복종만을 통해 자라난 그 이전세대와는 달리,
새로운 시대, 민주화가 뿌리를 내리는 시대에서 나름의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복종의 시스템을 여전히 받아들여야 했던 세대가 아니였을까,
지나친 사교육의 시작점이기도 하며,
부모가 시키는대로 공부하고,
그러다 한국외환위기를 겪고,
그 후 밥벌이가 안되는 진로를 택할 권리조차 박탈당한채
경영학과를 선택해야만 했던 세대,
그렇게 취업을 하고나서도
삶이 결코 여유롭지 못하며,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부동산거품으로 인해
여전히 삶에 허덕이는 세대...
우리는 그렇게 자라나는 와중에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를 들었으며
이승환의 환타지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해철을 앞에 내세워 그나마 비겁한 우리의 목소리라도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즉, 지금 2015년의 30,40대는 힘들다. 최악의 경제난에 30대가 넘어도 여전히 결혼조차 할수 없는 사람들도 많고, 취업은 더더욱 힘들며,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이어도 야근을 밥먹듯 하며, 여전히 군대에 있는듯한 조직의 경직성,
그리고 가족을 여차저차 꾸려도,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집값,
치솟는 생활비,
양육이 무서워서 결혼조차를 포기하는 커리어 우먼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번거운 현실을 실현시킨 주체들도 바로 지금의 30,40대다.
즉, 이들이 20대일때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았을까? 외환위기를 겪고 정신없이 살아가면서
자기세대에게 유리한 투표조차 하지않던 세대, 정치에 무관심한것이 쿨한 것이고, 시크한 것이라는 이상한 철학을 소유하며,
자기만의 길만을 걸어가려던 세대, 그런데 정작 그 길은 앞세대가 그대로 만들어놓은 길일뿐
우리의 길이 아니였다.
대학에 가서 데모를 하는 것은 빨갱이라며, 혹은 시간낭비라며 전혀 참여하지 않다가 대학등록금은
하늘높은줄 모르고 10여년간 치솟아버렸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현재의 20대들이 지게 되었다.
투쟁을 해야할때 자기 길만을 생각한 죄의 결과는 참혹한 미래를 스스로에게 가져다 준 셈인것이다.
최악의 20,30대 투표율은 고스란히
기성세대만을 위한 정책과 정치권력을 탄생시켰고, 거기서 고스란히 배제된채
2015년 지금 그대로 개고생을 하고 있는 암담한 세대가 바로 우리다.
그런데 왜 지금 이런 얘기를 하냐고?
신해철의 존재가 여기서 빛나는 것이다.
그는 묵묵히 자기 할말을 다하면서
바로 그런 기성세대에게 쓴소리를 날리고,
정치영역이고 뭐고 상관없이 자기 소리를 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소리가
우리 세대가 하고 싶었던 소리가 아니였을까??
정작 현실에서는
'네 알겠습니다. 엄마말대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 뜻대로 다시 하겠습니다' 처럼 앵무새노릇을 하지만
우리의 진심을 신해철이 온갖 비난과 욕을 다 먹어가면서도 대신 하고 있어줬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던 한 투쟁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진보란 끊임없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움직이는 역동성에 있다.
그런점에서 신해철은 철저하게 진보적이다.
그 진보적인 사유와 실천이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음악을 중심으로 곁가지를 쳐서
섹스, 교육, 직장, 연예,,,등등의 모든 분야로 퍼져나갔던 셈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나를 위해 대신 싸워주던
그 영웅을 잃어버림으로써 우리는 영웅의 존재를 깨닫게 된것이고,
그 부재가 견딜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그저 이렇게 어이없이 벌써 가버리면 안되는 존재가
갑작스럽게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금,
우리세대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길가에 내버려진 느낌을 묘하게 받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문득, 같은 세대의 음악인인 서태지와 이승환등이 떠오른다.
서태지 역시 문화대통령으로써 꾸준히 우리세대와 함께 음악을 통해서 목소리를 내어왔지만,
그는 음악속에 혹은 본인의 신비전략속에 너무 묻혀있었다.
이승환은 최근에서야 정치적인 목소리를 과감하게 내고 있지만,
이전에는 어린왕자로써 현실을 도피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이 어지러운 세계 너머의 꿈의 나라로 우리를 안내해 왔을뿐
현실과 싸우는 법을 노래하지는 않았다.
그런점에서 나는 신해철이 우리 세대에게 영웅이었고, 거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기로에 서있다.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의 억압된 원래의 목소리를 내던 몇 안되는 영웅중 한명이 사라졌다는 점.
이제는 우리가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할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움직일것인가?
어쩌면 이명박의 독재와 나꼼수열풍, 세월호사건과 박근혜의 독재는
이미 수많은 30.40대의 정신을 깨우고 있기는 하다.
도저히 두고보다가는 앞으로의 10,20대, 아니 지금 우리 자식세대에게도 지옥을 물려주게 되는데,
이 꼴은 도저히 두고볼수 없으니 말이다.
신해철이라는 거인은 어쩌면 지금 이 시기에
매트릭스 세계에 숨어버린 찌질한 우리 30,40대들에게
가장 강렬한 독설을 남겨준 것일지도 모른다.
신해철의 어록들과
신해철의 음악들은 다시 기억될 것이며
재해석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는 일종의 힘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유재하가 아무리 천재였더라도
그는 그저 음악가에 불과했지만
신해철은 자신의 음악을 통해
수많은 족적을 이미 남겼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자신의 주변부부터 변화시키는 실천철학자에 가깝다.
이제 그 족적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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