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일본 작가의 소설제목과 같아서 관심이 갔는데, 생각해보니 소설을 읽게 된 계기도 오로지 제목때문이었던 기억이 난다.(역시 제목이 중요하다. 인간실격! 왠지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지 않은가? 다들 그렇게 자기 찔림과 함께 뭔 얘긴지 들어나보자는 반응 아닌가?)
여튼 제목에 두번이 낚여서 결국 이 드라마 1회를 아내와 함께 방금 보고 난 후다.
우선 최근 트렌디한 드라마와는 다르다. 무엇보다 속도가 매우 느리다. 마치 아이유와 이선균의 [나의 아저씨]가 초반에 그 무거움과 느림으로 오해? 를 샀듯이 [인간실격]의 호흡은 더 느렸다. 장면 하나하나 배우들의 숨소리와 표정이 디테일하게 담긴다.
그렇다. 이건 연기력이 중요한 드라마다. 이 긴 호흡에 발연기가 시전되면 드라마 완전 망하기 좋다.
그런데 1화만으로도 매우 좋았다. 작가가 담아내고자 하는것, 감독이 다시 담아내는 과정도 얼핏일지라도 분명 강하게 여운을 남겼다.
그 중 전도연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하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참고로 전도연은 출판사에서 일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가사도우미를 하고 있고, 아버지는 파지를 줍는일은 하신다)
부정(전도연) : 나 자랑 아냐, 아부지. 나 자랑이라고 하지 마. 나 그냥 너무 나빠진 것 같애. 그냥 다 나쁜 거 야. 그냥 이유가 없어요. 길에서 고생하면서 키워 준 아버지 생각하면서 열심히 노력하려고 했는데 노력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아부지 나는 아무것도 못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 됐어. 결국 아무것도 못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 아부지. 아부지도 있고, 정수도 있는데 그냥 너무 외로워.
정말 이 대사가 나오는데 가슴에 하나하나 비수같이 꽂힌다.
40살이 넘은 중년의 여성, 결혼은 했으나 5살 연하의 관계도 냉랭해진 남편을 두고,(2화예고를 보니 바람피고 있는 남편같다) 괴팍한 시어머니가 있고, 아버지는 여전히 가난한, 그 와중에 자신은 직장을 잃고 부잣집 가사도우미를 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대사다.
상황은 모두가 다를지언정
그럼에도 누구나 나이를 먹고
그 누구나 중에 태반은 자기 삶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누구나 생각할듯 하지만
함부로 내뱉지 못한 그 말이
드라마 대사로 튀어나오는데
이게 바로 '공감'이 아닐까.
과연 중년이 되어 몇 사람이나
내 인생 참 자랑스럽다고 외치겠는가.
몇이나 미래는 참으로 밝다고 자랑하겠는가.
과연 그동안 잘 살아온 것이 맞는지
그때 그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후회가 밀려오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직 40년은 족히 더 남은 인생 앞에
어떻게 마주서야 할지 두려움도 가득하다.
가득해도 아내 앞에서,남편 앞에서,혹은 부모 앞에서, 혹은 자녀 앞에서 함부로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 사람 또 얼마나 되겠는가.
카타르시스.
나를 대신해서 내뱉어주는 전도연의 대사가
오히려 내 삶의 파편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어떤 정화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마침 또 다른 영화의 한 대사가 같이 떠오른다.
최민식의 [꽃피는 봄이오면]에서
음악연주를 전공하고
별볼일 없는 삶을 전전하다가
탄광촌 음악교사를 맡아
낯선 산골에 홀로 자취하는 노총각 최민식이
홀로 술집에서 술을 퍼마시다
홀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하는 대사 그 한마디.
현우(최민식): 엄마..........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어머니(윤여정): 뭘?
현우: 그냥 뭐든지...
어머니: 어이구, 넌 지금이 처음이야. 뭘 처음부터 다 시 시작해..
어머니의 위로의 대사도 좋지만
일단 최민식의 슬픔과 회한의 대사가
이 영화를 다시 보는
내 마음을 후벼팠다. ( 이 영화를 아내와 연예시절 극장에서 봤을때는 20대였다면 지금 감동을 받은 두번째 시청은 40대가 되어서였다. 그만큼 세월은 중요하다. 젊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심지어 조금 심심했던 이 영화가 다시보니 이제는 하나하나 마음에 든다)
물론 이 대사에서 느낌 감동을
아내에게 얘기한 것은 실수였다.
자칫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사는 모든걸
되돌리고 싶다는 남편의 후회로 들렸을테니 말이다.
분명 난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의 삶은 내가 책임지는 삶이고
그 안에서 충실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또다른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감정들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만 그것을 드러내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크지만 ㅎㅎㅎ
게다가 [꽃피는 봄이오면]의 결말은
다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최민식의 엄마가 이제 시작이라고 하는 것처럼
최민식 또한 그 후회의 대사를 엄마에게 쏟아내었을뿐
결국 그 자리에서 이겨낸다.
자신의 현재를 부끄러워하거나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자신이 사랑하는 오랜 연인에게도 용기를 내게 된다.
(아니 심지어 똥고집을 버리고 이제는 타자에게 기댈 용기도 낸다. 같이 이겨내는것이 삶이 아닌가)
나 또한 그것을 전달하고 싶었으나
아내에게는
엄마..........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 어.
이 대사만 충격으로 각인된듯 싶다. ㅜ ㅜ
나 역시 지금 이 자리에서 이겨내고자 한 것인데 ㅎㅎㅎ 그리고 당신과 함께 이겨내리라 생각한 것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