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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Oct 02. 2021

[오징어 게임]과 [마그리트]

[오징어 게임] 흥행의 이유를 한 가지 덧붙이면서

 (혼자 하는 잡소리라 스포는 없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모르면 '오징어'가 되어버리는 그런 시기다.

하루에 몇 번은 [오징어 게임]에 대한 기사가 오징어 다리 개수처럼 나온다.

'10년 동안 한국에서 까였던 대본을 넷플릭스가 받아줬다'는 둥, 반대로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챙겼다'는 둥, 또 혹은 '인도 빼고 넷플릭스 계약 맺은 전 세계 83개 나라에서 압도적 1위' 라던가.... 여하튼

이 정도로 쏟아지는 기사 속에 오징어를 안 씹어 볼 수 있겠는가.

 마른오징어도 무척이나 비싸진 지금 시대에 편의점 오징어칩이라도 한 봉지 먹으며

[오징어 게임]을 몇 편 시청해보았다.(이제 두 편만 더 보면 된다 ㅎㅎㅎㅎ)


이미 한 두 편 봤을 때 충분히 흥미로웠고, 어느 정도 기사를 통해서 소재는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궁금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직업이 떠올랐다.

최근 학생들 논술시험을 대비해주면서 다양한 대학의 기출문제를 나 역시 풀고 있다. (지난 한 주 동안 15개 이상을 풀었으니 학생들보다 내가 훨씬 많이 풀어본 셈이다.)

경기대학교 기출문제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제시문 가]에 등장했다.

'오호라 마그리트!' 나름 마그리트의 그림을 많이 봐왔기에 반갑기 그지없었다.

거기서 마그리트의 그림의 특색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데페이즈망, 이는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 내 전혀 다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하는 것'


 '데페이즈망', 한자로 '전치'라고 하는데 여하튼 마그리트의 그림의 특색을 다른 말로 하면

'니가 왜 거기서 나와?'가 될 수 있겠다. 분명 평범한 소재임에도 그게 엉뚱한 자리에 배치되면 그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고 낯설게 된다.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믿었던 애인이 한밤중 클럽에서 술에 취해 나오는 그 모습이 충격적이듯,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위치에 배치되면 우리는 기이함을 느낀다.


 


마그리트의 그림이 바로 그렇다. '데페이즈망'

사실 그의 그림 속 대상들을 따로 떼어내면 하나도 특이할 게 없고, '초현실'은 온데간데없다.

그런데 그 대상들의 조합이 우리를 기이하게 만든다.

대체 이 그림은 밤인가 낮인가? 왜 평범한 밤의 주택 풍경과 평범한 한낮의 하늘을 너무나

능글맞게 병합해 두었다.


 

두 번째 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미술학원 몇 년만 다니면 충분히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에 거대 구름을 그려놓고, 거기에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유리잔을 그려 넣는다.

이 대상 하나하나는 웬만한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다 그려낼 거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여기에 그의 상상력으로 엉뚱한 배치 아이디어 하나로 독창적인 그림을 만든다.


마그리트의 절정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누가 봐도 파이프를 그려놓고

정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글을 써놓으니

이 배치의 낯섦이 사람들로 하여금 한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오징어 게임으로 돌아가 보자.


이 드라마의 성공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단연코 '마그리트적인 데페이즈망'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자본주의 사회에 절망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회나

끝까지 자기 이익을 위해 동료를 배신하는 인간의 야비함 등의 문제의식에서 찾을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런 주제는 이미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에 닳고 닳은 공식과도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것들을' '매우 이상한 공간'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정작 오징어 게임보다 더 대표적인 장면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한 장면을 보라.

그렇다. 이 드라마가 세계인을 사로잡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정작 제목인 오징어 게임이 아니다.

바로 이 '무궁화 꽃이....' 다.

 시청자를 단 한편으로 끌어들이는 마력의 주문이 여기서 나온 셈이다.

'어린이와 어른'

 누구나 할 수 있는 어린아이들의 놀이, 추억의 놀이라는 매우 평범한 설정이

정작 인생에서 가장 위기에 처한 한없이 진지한 상황의 어른들에게 배치되는 순간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하나씩 떼어서 보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놀이와 어른을 가져다 붙이니 기이해진다.


'놀이와 죽음'

 게다가 가장 파격인 배치는 바로 놀이와 죽음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놀이는 생의 에너지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주로 한다. 생의 에너지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어린아이들이 죽고 또 죽어도 게임일 뿐이기에

한없이 반복하며 하루 종일 즐기는 것이 바로 이런 골목게임, 골목놀이가 되겠다.

그런데 죽음은 그 생의 에너지 반대편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생명이 사라질 때 그 누구의 죽음보다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와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의 전유물인 놀이에 죽음이 한없이 가까이 다가와 붙어있는 배치!

여기서 모두가 충격에 빠지는 셈이다.

정말 단 한 가지의 스포도 없이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 가장 승리자다.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초현실적 충격을 고스란히 경험했을 터이니 말이다.

마치 이 게임에 얼결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앞에 정말 총에 맞아 죽은 다른 참가자를 보며 느낀 그 충격에 가까운........

 생의 에너지인 놀이가 생의 끝자락인 죽음과 맞닿은 이 배치야말로

마그리트의 승리이자, 이 오징어 게임 작가의 승리이며, 감독의 승리 이리라.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난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싶겠지만

원래 그런 것이다.

 마그리트가 그림을 저렇게 그렸을 때

처음 배치한 그 순간만이 진정성이 있을 뿐, 그것을 다른 사람이 모방하는 순간 싸구려 아류가 될 뿐이다.

결국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조합을 만들어

현실을 낯설게 비트는 힘은 마그리트가 최고인 것은 분명하다. 다시 한번 그의 그림을 보라. 그림 자체를 잘 그렸는가?? 기교가 화려한가?? 중요한 것은 그의 비틀기이자 그의 배치적 시선일 것이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는 내 눈에 21세기의 마그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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