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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Nov 16. 2021

레미제라블과 장발장

'레..미 제라블??'


'장발장 가져와야지 이 책은 뭐야???!!!'


중1때 담임은 체육선생이었다.


그것도 폭력을 일삼는 그 당시 전형적인 체육선생. 


학기초에 첫 싸다귀에 내 초등동창생 얼굴에는 피가 튀었고


우리반 모두는 그 한방에 이미 기가 죽었었다.


그리고 한달여가 지났을 때는 당시 반 55명 전체를 의자들고 책상위에 무릎꿇게 하더니 


무려 50여명의 뺨을 다 후갈기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다 때린 그 선생의 체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40이 넘은 나는 팔 한쪽만 30초 이상 들고 있어도 뻐근하다.


여튼 


당시 반별로 책을 한권씩 구매해서 

한달에 한번씩 옆반으로 책을 돌려가며 읽는 독서프로그램이 있었다


책 한권값으로 12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니 좋은 취지였다.

어느 달이었던가,

나는 맨 앞줄 교탁 앞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옆반 여학생 두명이 우리반에 넘겨줄 도서를 가져왔었다.


남자반에 여학생이 들어온 것만으로 설레던 시절이었는데. ㅎㅎㅎ

여튼 그달 우리반이 인수받을 책이 바로 '레미제라블, 장발장'이었다.


그런데 담임이 들어온 책을 확인하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옆반 여학생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것도 처음읽는 듯한 떠듬거림으로 

'레.....미...제라블??'

왜 이걸 가져왔냐며 목소리를 깔고 타박을 하는데

옆반 여학생은 얼굴이 벌개져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 그게 장발장이랑 같은 거예요'


ㅋㅋㅋㅋㅋ 


담임도 무안했는지 여학생들을 얼른 내보냈다.

그 얘기를 앞부분의 나를 비롯한 몇명과 그 여학생들만 들었던 것 같다.


여튼 나는 그 얘길 퍼트렸던 것 같고, (생각해보니 워낙 재미있는 사례라 그걸 들었던 학생 몇몇도 이미 말하지 않았을까싶다) 금방 우리 담임의 전설 중 하나로 남았다. 


어떤 무식의 상징이랄까.


그런데 


오늘 난 레미제라블을 읽었다.


그것도 우리 초등학생 딸아이가 워낙 책을 싫어하기에


책에 흥미도 붙여줄겸 직접 옆에 앉히고 읽어준 책이 


마침 그 '장발장'이었다. 


내가 고른게 아니라 


책을 아무거나 골라온 우리 딸이었다. 


아이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집어온 것이 분명했다. 


딱 2장만 넘겨도 '장발장'이 뭔지가 나오는데


아이는 30분째 혼자 읽은 척 하려고 빠르게 100페이지까지 


훑어보고서는 '아빠 근데 장발장이 뭐야??' 


누구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뭐냐고 묻는다는 것은 

책을 몇장조차 읽지 않았다는 것. ㅠㅠ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3일에 걸쳐서 


250페이지 정도되는 초등학생용 장발장을 함께 읽었다.(당연히 글밥이 많지는 않았기에 꽉찬 250페이지를 생각하면 안된다)


책을 그렇게 싫어하던 딸아이도 아빠가 함께 읽으니 


처음으로 책의 재미에 빠져들었나보다. 그렇게 다 읽고나니


신기하게 나도 뿌듯했다. 


첫째, 딸아이가 조금이나마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점.

둘째, 나조차 최근 제대로 완독한 책이 없었기에 책을 다 읽었다는 의외의 뿌듯함

셋째, 장발장의 스토리가 어떤 것인지를 나조차 이제 알았다는 점!!! 


바로 이 세번째가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물론 장발장이 레미제라블인 것을 알고 있고

장발장이 빵을 훔치다가 감옥에서 오랜 생활을 보냈고

자베르라는 원칙론자 형사와 갈등관계인 것도 어릴 적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몇년전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서나 알았던 내가 아니던가. 

그나마 그 음악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5번 넘게 본 것이 더욱 도움은 되었으나

당연히 뮤지컬과 영화 특성상 굵직한 줄기만 담아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2021년에서야 나는 내가 몰랐던 장발장의 스토리를 새로 알게 된 점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원작은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1권이 400~500페이지 아니던가? 전권이 몇천 페이지이기에 

아마도 앞으로도 읽지는 않을 듯 하고, 그 안에는 더 많은 세세한 스토리가 있을게다. 

하지만 

난 초등학교 딸아이를 위해 읽어준 이 초등생 문고본 200페이지 짜리 내용조차도 사실 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더 어릴적 상식에 기반해서 

장발장을 '읽었다' 라고 확신했던 것. 


분명 거짓은 아니다. 20~30페이지 그림책도 읽은 것은 읽은 것이니까.

그러나 오늘 내 머릿속에

중1때 담임을 비웃었던 장면은 다시금 떠오른다. 

물론 어린 아이들을 손쉽게 때리던 나쁜 교사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도

난 그의 무지를 비웃을 정도의 자격은 되었는가?에 대한 자성을 해본다. 

그저 내가 그 담임보다 많이 알고 있었던 것은 장발장과 레미제라블이 같다는 상식정도에 불과했다.


정작 나 역시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누가 누구를 평가하겠는가. 


비단 이 사례만이 아니라 

살면서 이런 태도를 여전히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장발장이 레미제라블과 같은지 아닌지보다 

장발장만 읽었더라도(끝내 같은 책인지 모른다 해도)

장발장이 빵을 훔치고 당한 판결이 정당한지,

혹은 그럼에도 도둑질이 허용되는지,

자베르의 원칙주의가 보여주는 가치는  없는지,

당시 서민들의 가난의 문제가 왜 지금도 여전한지, 등의 

문제인식만 갖게 된다면 그게 더 훌륭한 독서가 아닐까. 


그래, 생각해보니 정작 '레미제라블' 원어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독자들은 몇명이나 있을까??

그저 '레미제라블과 장발장'이 같은 책으로 알고 있을 뿐이지 같은 의미도 아닌 것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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