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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an 07. 2022

[오늘 자본을 읽다]5장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케인즈의 예언 오류


케인즈는 1928년에 100년 이내로 선진국의 생활수준은 4~8배, 노동시간은 하루에 3시간, 일주일에 15시간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러나 현재 그의 예언이 맞은 것은 1인당 생활수준일 뿐, 정작 노동시간은 일주일에 40시간 정도로 노동시간에 있어서 그의 예언은 빗나가 보인다. 

 그렇다면 케인즈의 예언은 왜 빗나간 것일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요인에서 이미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설령 직장에 기계가 도입되어 업무 소요시간이 현격하게 단축된다고 해도 그만큼 퇴근시간이 빨라지는 일은 없다. 즉 기계가 노동시간을 줄여준다고 해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줄어든 노동시간이 어디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줄어든 노동시간은 자본가에게 귀속된 것이다. 케인즈가 보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라는 경제구조에서 생산에 관여하는 사람은 노동자 한 사람만이 아니라 자본가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본주의의 기술 발전은 자본가와 노동자 이 둘의 관계이자, 그 간의 계급투쟁이 만들어낸 결과다. 따라서 노동시간이 그로 인해 줄어든다고 해도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기술발전이 시작된 이유는 장시간 노동이 하루의 길이라는 자연적 한계와 계급투쟁이라는 사회적 한계에 가로막혀 지속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하루 노동시간이 10시간 정도로 제한되면 기존 15시간 노동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5시간의 노동을 채워줄 노동자를 새로 고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자본가의 잉여가치를 줄어들게 하기에 자본가는 그 한계와 손실을 극복하려고 방법으로 노동력을 덜 사용하는 방법을 찾게 되고, 이는 대개 생산력 증가로 부르는 방법을 의미한다. 

 생산력 증가는 동일한 물건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노동력을 적게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노동력을 대신할 기계 도입->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 감소-> 상품 가격 하락-> 노동자의 생계비 하락-> 생계비의 하락은 노동자의 노동시간 가운데 노동자 자신을 위한 노동시간을 줄여준다. 즉 자본가, 타인을 위한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어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전체 노동시간을 고정한 상태에서 두 노동시간의 상대적 비율이 변화한 것이고, 이를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부른다. 


" 노동자가 사실상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소비하던 노동시간의 일부가 자본가를 위한 노동시간으로 전화한다. 즉 변하는 것은 노동일의 길이가 아니라 그것이...... 분할되는 비율인 것이다."(제1권:438)


여기서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생산력의 증가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여주고,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간주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고단함을 줄이고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것.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두 가지라는 점. 생산력의 증가는 노동시간 전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만을 줄일 뿐이다. 즉 기계가 창출한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의 단축이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에 기여하지는 않는 것이다. 


특별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주의의 결정적 특징은 교환에 있다. 생산된 물건들이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만나 서로 비교되고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생산은 사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생산의 결과는 시장에서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모순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 상품은 사회적 평균 조건 아래에서 생산된 대다수의 같은 상품들보다 더 적은 노동시간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는 자본가가 자기 상품을 그 사회적 가치......로 판매한다면, 그는 그것을 그것의 개별적 가치보다...... 높게 판매한 것이고...... 특별 잉여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제1권 443) 

 생산력 증가는 개별 자본가의 생산 영역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상품은 시장에서 판매된다. 그런데 그 교환가치는 상품의 생산에 실제로 소비된 노동시간이 아니라, 그 상품의 생산에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개인이 사용가치를 만들기 위해 실제로 투입하는 노동시간과 여러 개인들이 교환을 위해 합의하는 사회적 노동시간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한 자본가가 이룬 생산력 증가를 다른 자본가들이 아직 못 따라잡았다면 이 자본가가 생산한 상품의 개별적 가치와 그 상품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사회적 가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원가 절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원가절감이 그것을 이룩한 개별 자본가에게만 따로 이익을 안겨주게 되는데 이것이 특별 잉여가치다. 이러한 특별 잉여가치는 생산력 증가 외에 제품 혁신을 이루었을 때도 발생한다.

 다만 이런 특별 잉여가치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가의 경쟁의 특성상 곧 따라 잡히고 마는 것이다. 새로운 생산방식은 곧 일반화하고 개별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차이는 소멸하게 됨으로 특별 잉여가치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특별 잉여가치를 얻기 위한 새로운 생산력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은 끊임없이 진행되게 되어 있다. 이 치열한 경쟁 끝에 시장에서 상품 가격은 꾸준히 하락하는 경향이 생긴다.

 결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토대를 침식하면서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더 많은 교환가치를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가 오히려 그 교환가치를 점차 줄여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생산력의 발전에 반비례하여 감소하지만...... 잉여가치는 그 발전에 정비례하여 증가하므로, 결국 같은 하나의 과정이 상품의 가격을 하락시키면서 동시에...... 잉여가치를 증가시킨다. 그리하여 교환가치의 생산에만 관심이 있는 자본가가 왜 상품의 교환가치를 끊임없이 저하시키려고 노력하는지 그 수수께끼가 해명되는데......"(제1권 446)


빌 게이츠의 착각, 창조적 자본주의의 진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현상 중 하나가 자본가의 수익이 노동자의 노동시간에서 비롯되었다는 부분에 대한 의구심이다. 즉 삼성이나 빌 게이츠 같은 경우는 예외가 아니냐고 보는 것이다. 이 기업가들의 창조적 천재성에 가치의 동력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가난의 원인을 자신과 같은 창조적 능력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없기 때문이라고 보며, 자신의 능력에 기반한 성과를 그들에게 나눠주면 불평등의 모순도 해결될 거라 생각했었다. 이를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사실 특별 잉여가치의 생산을 혼동한 데서 만들어진 개념일 뿐이다. 빌 게이츠가 생각한 창조성은 그 자체가 가치의 원천이 아니라, 다른 자본가와의 경쟁을 통한 차이로부터 그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게이츠와 잡스를 무인도에 보내본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의 창소성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가 말한 창소성은 다른 자본가와의 경쟁을 통한 차이이며 독점과 하청의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경쟁을 통한 차이의 가치는 결국 노동자의 노동시간에서 나올 수밖에 없으며, 게이츠가 얻은 수많은 가치는 노동시간 중 '타인을 위한 노동시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빌 게이츠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고자 한 것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이며, 이는 바로 그 가난한 자들의 것일 뿐이다. 


협업, 분업과 매뉴팩처 


생산력 발전의 자연법칙 


"노동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것은 자본의 내재적 충동이자 끊임없이 지속되는 경향이다:(제1권 446)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필연 법칙이다. 생산력의 발전 법칙에서 생산력은 스스로 후퇴하는 법이 없으며, 그 발전의 한계에 부딪히고 나서야 비로소 발전을 멈추게 된다. 그 지점이 자본주의의 전환점이다. 여기서 생산력 발전이 빚어내는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생산력의 발전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발전의 한계를 찾아 그것을 더욱 발전시킬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고 이는 변증법적 발전원리이다. 

  생산력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생산을 수행하는 노동과정이 노동력과 생산수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두 요소의 비율, 노동력 한 단위가 얼마의 생산수단과 결합하느냐가 대개 생산력의 지표로 쓰인다. 자본주의적 생산력은 초기에는 노동력의 변화를 통해서 발전해가다가 그것이 한계에 부딪히고 나서는 다시 생산수단의 변화를 통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전자가 협업과 매뉴팩처의 형태라면 후자는 기계제 대공업이다. 


 협업 

협업은 자본주의 생산의 출발점이다. 원래 혼자 생산하던 독립 수공업자가 다른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다른 수공업자와 함께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여기서 양적인 확대가 일어난다. 이러한 1과 1의 결합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기에 단순한 양적 확대만이 아닌 질적 변화도 수반한다. 

생산력 자체가 새로운 생산력으로 바뀐다. 이전에 없던 집단적 생산력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적 생산력은 총생산물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하게 된다. 그것은 상대적 잉여가치를 만들어낸다. 


 "이 특수한 생산력은......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다. 이 생산력은 협업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다른 사람과의 계획적인 협력을 통해서 노동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유적 능력을 발휘한다." (제1권 458)


 자본주의가 되면서 사용가치가 교환가치로 발전하고, 이 교환가치는 두 사용가치의 공통된 양적 기준인 가치를 전제로 한다. 위의 '유적 능력'이 그 공통된 양적 기준을 가리키는 말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1과 1의 두 노동력이 협업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전혀 다른 2의 생산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첫째, 자본주의적 생산력은 봉건적 생산력이 성숙한 결과물이다. 자본가의 등장은 역사적 필연이며, 사회적 생산력을 창출하는 것은 자본가의 역사적 임무였던 셈이다. 이는 자본가의 역사적 순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방향은 사회화이고, 이 사회화가 최종 한계에 봉착하면 자본주의적 생산력은 멈추게 된다. 여기서 새로운 생산체제로의 전환의 지점이 나타난다. 


분업과 매뉴팩처 

 협업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분업을 기초로 한 매뉴팩처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완성된 노동과정은 여러 개의 부분 작업으로 분해되고, 각 노동자는 이들 부분 작업 가운데 하나만을 전담하게 된다. 


"매뉴팩처는...... 비숙련 노동자라는 하나의 부류를 만들어내는데...... (이들에게는) 교육비가 전혀 필요 없으며...... 교육비의 소멸...... 에서 생기는 노동력의 상대적 가치 저하는 곧바로 자본의 더 높은 가치 증식을 포함한다" (제1권 483)


매뉴팩처의 분업은 노동력의 숙련을 떨어뜨려서 상대적 잉여가치를 만들어 낸다. 사실상 이는 노동자들의 개별 생산력을 희생시켜서 분업으로 조직된 총노동자의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는 원리인 셈이다. 

 한편 매뉴팩처도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만큼 생산력의 발전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작업 과정을 분해해도 부분 작업 자체는 결국 노동자들의 개별 생산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작업에 적극적이길 바라는 자본가와 그걸 거부하는 노동자의 갈등은 항상 있었고,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기계적 대공업으로 발전해 나간다. 


기계와 대공업: 공장과 기계 


노동력의 생산력에서 기계의 생산력으로 


매뉴팩처에 의한 생산력 발전은 노동력과 생산수단이라는 두 생산요소 중 주로 노동력의 변화에 의존하는 방식이었으나 이는 노동자들의 저항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 기계이다. 기계는 노동력 대신 생산수단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기계는 작업도구가 진화한 것이다. 노동력의 생산력을 기계의 생산력으로 대체함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해버리는 것이 기계의 본질이다. 

 기계와 작업도구는 구별해야 한다. 원래 인간이 동물과 달리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도구를 통해 신체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도구가 인간의 생산력을 높이면서 인간에게 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여가시간을 타인을 위한 노동시간, 즉 잉여가치로 바꾸는 것을 기본원리로 한다. 즉 도구가 인간에게 여가시간을 주었다면 기계는 오히려 타인을 위한 노동시간이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계가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하는가?? 


공장

기계의 본질은 생산력을 노동력으로부터 빼앗는 것이고, 그것이 실현된 생산체계가 공장이다. 매뉴팩처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자신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기계의 수단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공장 체계 안에서 노동자는 기계를 돕는 보조자의 역할에 불과해진다. 저급한 숙련만을 갖게 되는 셈이다. 결국 기계를 통해 인간의 생각하는 기능이 노동에서 분리되어 타인의 수중으로 이전된다. 이제 노동자는 기계의 움직임에 따라야만 한다. '군대와 같은 규율'(1권 572)이 생겨나고 강제적 수단이 동원되어 '벌금과 임금 삭감'이라는 징벌제도가 들어온다.

 기계는 생산력을 노동자들에게서 빼앗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의 저항은 분쇄가 된다. 결국 이는 자본주의의 목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해 움직인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기계를 통해 어떻게 생산되는가?


기계에 의한 잉여가치 생산 

 기계는 도구 사용에 필요한 육체적 조건을 완화함으로써 과거에는 노동할 수 없었던 사람들, 즉 여성, 심지어 아동까지 노동자로 만든다. 잉여가치의 생산 영역이 크게 확장이 되는 것이다. 원래 성인 남성 노동자 한 사람의 임금으로 지급되던 가족의 생계비가 여러 사람의 임금으로 나눠지게 되어 아내와 자녀까지 노동현장에 저임금으로 끌어들이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개인별 임금이 하락하고, 노동자들의 총 노동시간이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적 잉여가치는 증가한다. 

 기계는 임금 하락 효과 외에도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결과도 가져온다. 기계는 인간과 달리 자연적 한계가 없어서 24시간 가동이 가능하다. 기계가 작동하는 한 당연히 노동자들도 함께 노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인간의 노동시간을 줄여주는 기능을 하던 도구가 기계로 진화하게 되니 오히려 인간의 노동시간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수단이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모든 생활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전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뒤바뀌는 경제학적 역설이 생겨난다. "(제1권 551)


게다가 기계는 노동강도도 높인다. 원래 노동강도가 높으면 노동시간은 반비례로 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는 피로를 느끼지 않기에 인간까지 덩달아 기계의 높은 강도와 함께 노동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계의 속도가 올라가면 인간의 신체 노동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노동강도가 높아지면 결국 노동시간을 늘린 효과가 난다. 그래서 노동강도를 내포적 노동시간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기계의 생산력이 자본가에게 특별 잉여가치를 안겨주는데 그러다 보니 기계는 자본가들의 경쟁 속에서 가속적으로 도입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계의 도입은 노동력을 대체하는 만큼 일자리를 줄이게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상태는 극히 불안정해진다. 기계의 발전이 노동자의 불안정한 생활의 일상화를 가져오는 셈이다. 

 기계는 도구가 진화한 것이고, 원래 도구는 인간의 노동시간과 노동의 부하를 줄여주는 문명의 이기일뿐이었는데 정작 이 기능을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관계가 바꾸었다는 점이다. 도구의 긍정적인 기능이 모두 타인을 위한 노동, 잉여가치의 생산으로 돌린 것이다. 

 그렇다고 기계를 없애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관계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방법이다. 


테일러의 복음, 과학적 관리법의 진실

 1911년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출간. 

'과학적 관리법은 고용주와 노동자 모두 '최대 번영'을 이루는데 기본 목적을 둔다'

'단언하건대 근무 태만은 분명 미국과 영국의 노동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사악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를 '빈틈'이라고 표현했는데 매뉴팩처 분업과 기계제 공장이 이 '빈틈'을 메우기 위해 노동자들의 숙련을 떨어뜨리고 생산의 주도권을 노동자들에게서 빼앗는다고 보았다. 

테일러가 말한 '최대 번영'은 결국 고용주에게만 실현되고 노동자에게는 '저주'가 되었다. 노동자는 작업량이 4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런 과학적 관리법에 의해 작업량이 증가하여 남아돌게 된 노동자들은 모두 싸구려 서비스 노동자들로 밀려나게 된다. 

 결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천재적인 발명이 아닌, 반세기 전 이미 마르크스가 말한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한 방법에 불과하다.


대공업에 의한 매뉴팩처, 수공업, 가내공업의 혁명


생산력의 자연법칙과 노동자들의 고통 

자본주의 생산력은 협업과 분업의 원리에 기초한 매뉴팩처-> 기계에 의한 공장제 

이 발전과정은 경쟁의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기계는 수공업에 기초한 협업과 수공업적 분업에 기초한 메뉴팩처를 모두 폐기시킨다....... 오두막 공장과 실질적인 공장과의 싸움은 12년 이상 지속되었다. 결과는 오두막 공장 300개의 전멸로 끝났다'(제1권:615)


 '자본은...... 공장 노동자와 매뉴팩처 노동자, 수공업자 말고도...... 가내공업 노동자들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써 조종한다.'(제1권 618)


 공장에 비해 생산력이 낮은 매뉴팩처나 가내수공업자는 생산력의 격차를 만회하기 위해 열악한 노동조건과 가혹한 노동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장시간 노동, 협소한 작업공간, 건강에 해로운 작업조건, 형편없는 임금 등의 사례들이 이에 해당한다. 상위 자본가가 하위 자본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노동자 수탈을 가중시키도록 하는데 기여하면서 방조하는 셈이다. 오늘날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관계, 다국적 기업과 개발도상국의 하청업체들도 그러한 사례다. 

 그리고 생산력의 격차는 의지의 문제로 극복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결국 생산력이 낮은 자본가는 결국 모두 전멸하게 되는데 이것이 생산력의 자연법칙이다. 


자연법칙이 가리키는 미래, 공장법 

생산력의 자연법칙은 경쟁에 의해 발생하고, 자본가들의 갈등과, 노동자들의 고통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갈등과 고통의 결과로 반드시 사회적 평균을 만들어 내는데, 자본주의 생산력의 경쟁은 바로 사회적 평균의 산물로서 공장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장법은 노동자 입장에서가 아닌 자본가의 필요에 의해서 나온 것이다. 


 '공장법은... 대공업이 낳은 하나의 필연적 산물이다... 공장법을... 일반화해야 할 필요성은... 경쟁조건... 의 평등을 요구하는 자본가들 자신의 주장이었다. ' (제1권 642) 


 자본주의적 생산력이 발전하기 위해 자본가들에게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공장법이다. '노동량을 연중 전체 기간에 걸쳐 균등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었고, 이것은 '노동일의 규제'로써만 가능했다. 또한 끊임없이 새롭게 도입되는 기계를 움직이려면 노동자의 숙련을 확장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동자 교육의 필요, 또한 이 교육을 위해서는 보건상태와 경제상태가 개선되어야만 했다. (공장법의 노동시간 규제, 육제. 정신적 보호조항)


생산력의 법칙과 농업의 운명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봉건제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농민을 임노동자로 만든다. 


'농업 영역에서 대공업은 그것이 낡은 사회의 보루인 '농민'을 소멸시키고 그들을 임노동자로 대체하는 경우에만 가장 혁명적으로 작용한다.'(제1권 672) 


농업은 자본주의적 농업으로 바뀐다. 농업과 매뉴팩처 간의 원시적 가족적 유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해 파괴된다.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던 봉건제에서는 소비되는 만큼만 생산하였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생산이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무한한 부의 증식이 목표다. 결국 자연적 한계를 넘어서야만 했고 여기서 기계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 기계가 다시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토지와 인간 사이의 물질대사-즉 인간이 식품과 의류의 형태로 소비하는 토양성분이 토지로 되돌아가는 것을... 교란시킨다.'(제권 672)


결국 토지 생산력의 지속적인 원천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자연적 한계를 돌파한 자본주의 생산력의 한계는 바로 생산력의 토대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자본주의 생산력 자체가 된다. 결국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할 수가 없는 필연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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