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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n 09. 2022

[철학의 쓰잘데기] 데카르트 편


[쓰잘데기]

쓰잘머리. (명사) 사람이나 사물의 쓸모 있는 면모나 유용한 구석.(비슷한 말), 쓸데.

https://ko.dict.naver.com/ko/userEntry/koko/42f81814a4e3c5fab4d1bdf9de5e5a99




첫번째 쓰잘데기 인물: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중세를 끝내고 근대를 열어젖힌 철학자다. 근데 그게 오늘날 내게 무슨 쓰잘데기가 있는가? 단순 상식의 쓸모정도에 불과하다면 그건 퀴즈 대회를 준비하는 거대한 상식 책의 아주 작은 한 귀퉁이만 차지할 정도의 가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정도의 지식을 알기 위해 그 어려운 데카르트의 책을 힘들게 읽는 행위야말로 쓰잘데기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지금 나에게 어떤 쓰잘데기가 있을까?


하나는 ‘방법적 회의’ 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절대적 진리였음에도, 그 진리를 찾기 위해 일보 후퇴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모든 것을 의심해보는 그의 과감한 연구방법이야말로 나에게 필요하다. 나는 평소 누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믿어준다. 거기에 조그만 논리라도 곁들여지거나, 혹은 직책, 권위가 더해지면 더더욱 쉽게 믿어버리고는 한다. 여기에 데카르트였다면 일부러 의심을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내 눈에 보이는대로 남들도 보이고 있는 것인가? 지금 여기가 현실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2+3=5라는 자명한 수학적 지식도 틀린 답일 수도 있지 않을까? 등, 그의 노력이 내게도 필요하다. 무작정 믿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의심해보면서 스스로를 설득해가는 과정. 분명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비효율이어도 옳은 길일 수 있다. 효율적이어도 틀린 길일 수 있다. 오지랖 넓은 데카르트의 의심은 결국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낳았다.



두 번째, ‘데카르트 좌표’다. 

물론 이 지식이 나에게만 단독적으로 어떤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기에, 당장 어떤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개발한 좌표평면 덕분에 인류는 분명 많은 것을 얻었다. X축과 Y축 평면에 그려지는 점들과 직선은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축소해 준다. 적어도 우리가 하루에 한번 씩은 열어보는 지도 어플의 원리에는 데카르트의 좌표가 있다. 나는 그 덕에 서울이든 지방이든 낯선 곳에서도 지도 검색을 통해 위치와 거리, 시간을 파악한다. 물론 계산도 내가 하지는 않지만....



세 번째, ‘그의 늦잠’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주로 그의 침대에서 이루어졌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그는 아침에 일어나지만 정말 일어나지는 않는다. 즉 눈을 뜨고 의식도 깨었으나, 침대에서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한다. 누워서 한없이 사유하는 것. 오죽하면 그의 주저가 ‘성찰’이겠는가. 정작 데카르트 정도의 명예도 얻을 것 같지 아니하고, 그 정도의 업적도 남기지 않을 것 같은 내 삶이 왜 그보다 더 바쁘고 분주한 것인가? 위대해지려고 해서가 아니다. 그냥 오늘날의 분주함을 내려 놓기에 데카르트의 습관이 왠지 도움이 될 것 같다. 자다가 깨서 스마트폰부터 들여다보지 말고 발가락이나 꼼지락거리며 그냥 생각을 해보자. 누가 알겠는가. 나도 그처럼 위대한 책하나 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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