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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l 20. 2023

'악귀'의 '아귀'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요즘 나름 챙겨보는 드라 하나가 있는데

김은희 작가의 '악귀'다.


김태리에게 씌인 '악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귀신들림'현상들을 다뤄가는 것이 흥미로운데

얼마전 '아귀'편이 문득 떠오른다.


https://namu.wiki/w/%EC%95%84%EA%B7%80(%EA%B7%80%EC%8B%A0)

아귀: 생전에 죄를 지어 아귀도에 떨어진 인간들의 혼이 변하여 만들어진 존재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탐욕스럽게 산 자가 환생한다. 주로 먹을 것이나 재물과 관련되어 죄를 짓거나 스님을 모독했거나 동물을 학대했거나 하는 등의 죄로 아귀가 된다고 한다. 물고기 아귀의 어원이기도 하다.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환생하는 귀신이라...

극중에서 아귀를 표현하기 위해 눈을 충혈되게 표현하고 있는데

물질의 욕망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의 탐욕을 잘드러낸다.


욕망은 정신분석에서는 '결핍'으로 정의하고는 하는데

근원적으로 충족될 수 없는 그 지점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물질을 탐하는 아귀의 욕망은 당연히 먹으면 먹을수록 결핍이 생기고

다시 또다른 물질로 채우는 끊임없는 욕망의 수레바퀴의 운동을 보여준다.


무한한 욕망의 순환, 그런데 그 결핍의 자리가 더욱 커지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 아닌가.


 


문득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귀'가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이 아닌가 싶다.

물론 한국을 대표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전용기를 타고 떠날 때는 '개념'을 챙기고자

'에코백'이라는 상징적 기호로 일단 자신을 숨길 정도의 인내는 있다.


그러나.

'툭!'

 인내가 끊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게 '아귀'의 본성이니까.


 '아귀'의 형상을 상상해보자.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보고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서 군침을 질질 흘리는 어떤 형상이 떠오르지 않는가.


'악귀'극중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산영씨 젊음이 탐나냐. 죽어서도 아귀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구나” 

젊음 앞에 속절없이 탐욕의 욕망을 치켜드는 아귀의 습성을 두고 주인공이 지적을 하는 장면이다.


얼마나 참기 어려웠을까.

한번 폭주한 탐욕은 공무원이 몇명이든 상관없이

이끌고 다니면서

리투아니아의 명품샵 5군데를 휩쓸었다.

무엇을 샀는지는 비밀이라고 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안샀다고 부정을 한다고 해도,

이미 저 사진 3장만으로도

이미 그녀를 가장한 '아귀'의 탐욕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버렸다.

설마 봉사활동하려고 명품샵 5군데를 둘러보는 영부인은 없을 것 아닌가.


명품을 샀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귀국길에 샤넬백을 에코백에 넣어왔냐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국민세금으로 공짜로 넘어간 타국에서

국민세금을 길바닦에 뿌리면서

자기 개인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거리를 활보했다는 것,

샵에 들어갔다는 것,

쇼핑에 눈이 멀어본 사람들은 다 안다.

구매를 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탐욕의 눈으로 그 제품을 '본 것' 만으로도 이미 욕망의 결핍은 더 커지고

더 간절히 바라게 된다는 점이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그 명품을 눈에 담는 순간

이미 그 제품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 자본주의의 상품논리가 아니겠는가.


사실, 그녀만 '아귀'이겠는가?

우리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소비가 추동하는 욕망의 굴레에 모두 어느 정도 '아귀'로 변해간다.


다만,

그녀는 절대적이다.

왠지 노리는 것, 원하는 것, 탐하는 것 모두를 갖고야 마는

'아귀' 그 자체.

외양도 점점 그 나이 때의 사람의 모습은 없어진지 오래다.

끊임없이 무언가로 대체하고, 영화 '페이스 오프'같이 안면을 분리하고

접착하는 과정은 이미 명품백과 같이 얼굴도 상품의 진열장에 언제나 놓여있는 셈이다.


난,

 김은희 작가의 '악귀'를 계속 시청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드라마든 사회의 실재를 반영하는 만큼

직접 '아귀'를 보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드니

재현된 '아귀'가 오히려 더 순해서 보기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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