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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Aug 29. 2023

[소비의 사회]1-보드리야르

낭비,탕진,소모에 관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는 엄밀하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항상 낭비하고 탕진하고 소모하고 소비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즉, 개인이나 사회가 생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초과분과 여분을 소비할 때라는 것이다."


 항상 왜 사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리고 해야만 하는지, 

살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빈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한다. 


그런데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다시 읽는 도중에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서 옮겨둔다. 

낭비와 탕진, 그리고 소모... 분명 우리가 살면서 피해야 할 것 같은 단어들인데

정작 내가 단순히 생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근거,

진정!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근거가 바로 이 단어에 있다고 한다. 

이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생존만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인간으로서, 아니 생물로서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면 행복할까? 

옷은 입기만 하면 되고,

음식은 배만 부르면 되는 것일까?

집은 자연재해를 막아줄 방패막만 하면 되는 것인가?

재화의 필수적인 사용가치만 충족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초과의 무엇을 바라면 안되는 것인가? 


소비의 사회를 살아가는 나. 그리고 지금의 세대는 

아마도 그리고 분명 그런 삶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낭비,탕진,소모를 하고 싶어한다. 

거기서 삶의 잉여를 경험하면서 

인생이 살만하구나를 느끼고 싶어한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의 기도처럼

어쩌면 내일의 삶은 신에게 맡기고 

믿음으로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서 

일하고, 일하고, 일만! 하는게 아니라 

일도 하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쉬고,

최선을 다해서 돈을 낭비해도 되지 않을까?

내일의 염려는 내일 염려하고 

오늘 최선을 다했다면 

오늘 최선을 다해 남은 시간을 놀면서

최선을 다해 써도 되지 않을까? 

희소성의 원리 안에서 늘 나의 몫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강박의 불안이 

오늘의 삶을 고통스럽게 짓이기고 있다면,

차라리 그런 고통은 내일로 넘겨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편 내가 오늘 노력해서 벌은 돈을 마음껏 소비하는 것과, 할부를 통해 미래의 노동을 담보로 맡기고 마음껏 소비하는 것은 구분해야 겠지? 근데 자동차할부, 전세자금대출 등의 이자 때문에 과연 마냥 오늘 최선의 탕진이 가능한지도 계산이 안된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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