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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n 11. 2020

[상품에 나타난 노동의 이중성]

[상품에 나타난 노동의 이중성]



1 가난한 부탄이 한국보다 더 행복한 이유


2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



상품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있다.


사용가치는 말그대로 그 상품이 어떤용도로 쓰여지느냐에 달려있다.


휴대폰은 휴대폰으로의 용도를 잘 드러내는지, 시계는 시간의 보기를, 휴대용배터리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다른전자기기를 충전해주는가 등등.


그런데 우리는 시장의 특성상 한 제품이 결코 사용가치만으로 가격이 결정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예를들어 똑같은 용량의 배터리이지만 시장가격은 다르게 책정되고, 똑같은 농부의 수박이 당도가 전년도와 올해 같다고 해서, 크기가 같다고 해서 상품가격이 똑같지 않음을 안다. 그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바로 교환가치에서 달라지는 것이다.


교환가치는 상품하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상품과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두 상품의 생산자가 서로 교환하고자 할때 서로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데 이것을 확장하면 시장참여자 모두의 관계가 얽혀서 가격을 형성하게 된다.


 결국 상품은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 이 교환가치는 사회적 필요노동, 사회적 평균노동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결정이 되는데


 따라서 노동에서 사용가치를 형성하는 구체적 노동이 있고


교환가치를 형성하는 추상적노동이 있는셈이다.


그렇다면 위의 두사례에서


한국이 국내총생산이 부탄보다 훨씬 높음에도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를 두 노동의 관계로 설명해볼 수 있다. 

우리가 보통 경제학에서 평가하는 경제지수는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노동만을 합친 것이다. 

즉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경제활동만을 전제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용가치를 형성하는 구체적 노동은 배제되어 있다. 

예를들어 주부의 가사노동을 생각해보자, 어릴적 자기 아이를 옆집에 맡기는 행위들도 모두 오늘날 경제지표에서는 무료이고 경제적 가치가 없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사노동을 대신하는 서비스노동, 아이를 돌보는 서비스노동직종이 있다. 이 경우는 직업노동으로 생각하여 경제적 지표로 넣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예전에는 경제로 환산할 수 없었던 구체적 노동이 상당히 많았던 셈이다. 

그런데 점차 교환가치만을 생산하는 노동이 주를 이루게 되면서 경제지표는 더욱 높아지는 셈이고 부탄은 바로 한국의 옛날 모습과도 같다. 즉 부탄이 절대적으로 가난하다면 결코 행복지수가 높을수는 없다. 단지 그들에게는 교환가치를 책정하는 노동보다 경제지표와 상관없는 구체적 노동이 더 많이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것이다. 한국의 예전 공동체사회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해 무상노동을 해주는 것, 사랑을 바탕으로 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위해 노동하는 것은 분명 삶에 영향을 준다. 다만 교환가치를 생성하지는 않아서 국내총생산지표는 더욱 떨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두번째 사례, 한국의 식민지근대화론의 근거에는 당시 국민총소득 증가를 객관적 지표로 든다. 

그런데 이 역시 노동의 이중성으로 설명가능하다. 식민지가 되기전의 사회는 대부분 자본주의 이전사회이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여 교환이 별로 없는 현물경제가 많다. 일제침략전 조선의 상황이 그러하다.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기에 국민의 노동이 대부분 자기 생산과 자기소비로 끝이나던가 현물교환을 했다. 그런데 돈으로 교환가치를 책정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식민지시대다. 그러면 당연히 국민소득으로 책정되는 화폐가 이전보다 더 생겨나는 것이다. 실제 생산은 같은데 정작 시장에 유통됨으로써 소득이 늘어나는 셈이다. 게다가 한국의 대표적 상품인 쌀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바로 일본이다. 결국 국내 조선인들이 먹을 쌀을 빼앗긴 것인데 이를 무역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소득계산에 포함시킨 셈이다. 실제로 식민시대에 조선인의 1인당 소비량은 오히려 크게 떨어진다. 즉 국민소득은 늘어나는데 실제생활은 밥을 이전보다 더 많이 굶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뉴라이트 학자들의 식민지근대화론의 근거는 타당성이 크게 떨어지는 셈이다.



(강신준/오늘자본을읽다/길) 에서 정리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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