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나페홀로 Jun 11. 2020

단 한번의 인생을 여러번 살아가는 능력자들?

[ 단 한번의 인생을 여러번 살아가는 직업을 소개합니다. ]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즉 인간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명한 소리라 이는 진리의 반열에도 오를 정도의 표현이 된다.

그만큼 인간은 누구나 이 죽음을 대비하면서 살아가야하고,

인생을 아껴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최대한 많이 해보고자 발버둥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항상 후회가 남는 것이 또한 인생이라는 것을,

인간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자기의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씹어먹으면서 살아간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자고 주장해도 결국 과거의 후회를 경험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대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과거의 삶이 자기 인생에 최고로 빛나는 순간이었다한들,

인간이라는 그 최고의 순간에서도 

고치고 싶은 점 단 하나가 그렇게나 크게 느껴지게 된다.

'그 때 그 찰나에 이런 판단, 이런 선택을 했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라는 후회말이다.

결국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후회를 끊임없이 되새김질 해댄다. 소처럼 씹고 씹고 또 씹고

.... 아니다, 씹기만 하면 의미가 없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그리고 다시 후회하고,,,, 어랏??

이는 프로메테우스의 팔자와 비슷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모두가 이런 후회속에서 인생을 살아갈때

적극적으로, 혹은 아예 다른 발상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버리는 직업군들이 있다.


바로 작가다. 


정통 문인이든, 방송시나리오작가든, 영화시나리오작가든, 모두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인생을 여러번, 혹은 수없이 살아가는 체험을 한다.

예술의 힘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자신이 살아보고 싶었던 캐릭터를 상상속에서 불러내는 능력,

아니, 캐릭터만 불러내면 소용이 없다.

마치 영화 인셉션에서 꿈의 설계를 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처럼

작가란 예술가들은 

캐릭터가 살아가야할 모든 삶! 아니 세계를 창조!해야만 한다.

그 세계 속에서 작가들은 자기 스스로 한없이 심취하고

거기서 또 다른 자기를 불러내어 인생을 몇 번이고 살아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가??


그러나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지 않는가??

인간이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던가?? 

바로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이 되고 싶어했던 욕망때문이었다.

신이 되고 싶은 인간,

인간의 가장 큰 죄

바로 그 죄의 경계선에 맞닿아 있는 직업이

또 작가인 셈이다.

모두가 단 한번의 인생을 살아가는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조율하고, 직접 거기서 살아감으로써

이미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자들이기도 한 셈이다.

실제로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그만한 댓가를 꼭 치뤄야만 한다.

(마치 바벨탑을 쌓아올린 인간의 교만함이 댓가를 치뤄야 했듯이)


그것은 바로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결코 혼자 누릴 수 없다는 것!!

즉 낯선 타자들의 시선 앞에 벌거벗은 자신의 치부 역시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잔인한 운명이 아닌가??

작가들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댓가로

그 세계를 모든 대중에게 공개해야만 하고,

심지어 많은 대중에게 벌거벗겨지는 수모를 겪어야 할수록

자본을 많이 벌어들일 수 있는 삶의 아이러니에 빠져든다.

(생각해보라, 작가가 창작하는 매번의 새로운 작품에는 새로운 세계같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작가자신의 실존이 깃들어있다.

그리고 대중은 멋대로 작가를 자기 상상의 대상으로 십자가에 매달고 음탕하고 저속한 상상을 할 폭력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결국 작가는 세계를 창조하는 신이자, 스트립쇼를 함으로써 삶을 영위해가는 스트립댄서이기도 하다.이 얼마나 잔인한 운명인가)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를 인기작가다, 베스트셀러 작가다, 

칭송하지만,

그래서 독자라 불리는 대중과, 시청자라 불리는 대중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독자와 시청자들은 결코 모르는 

간을 쪼아먹는 독수리가 

작가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혹은 끊임없이 산 정상까지 거대한 돌을 짊어지고 올라갔다가 다시 굴려떨어뜨리고

다시 돌을 지고 올라가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있음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작가들이 누리는 인기는 거품과도 같다.

결국 이들은 신의 능력을 모방하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

그렇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능력과 선물인 자유가 박탈되어진다.

세계를 창조한 댓가로 

이제 작가들은 이 세계를 끊임없이 창조해야 한다.

아니 이제 더이상 만들어낼 세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 만들어야만 한다. 

처음에 만든 세계와, 두번 살아보는 인생은 행복했을지 모르나,

자신의 벌거벗음이 드러나는 이 행위를 

다수의 타인들 앞에서 끊임없이 보여줘야 하는 이 수치감을 

멈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권태로운 반복 속에서 창조와 생성은 그저 모방과 흉내의 수준으로 떨어질 위기에

항상 처해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창작 행위를 멈추는 그 순간 

그의 진짜의 삶, 현실의 세계의 육체는 굶주리게 된다.

이 세계는 

철저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무엇을 갖는자는 그만큼 잃어버리고,,

무엇을 잃는 자는 그만큼 갖는 것이 있다.

단지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서 

많이 알려지거나, 아예 숨겨지거나 하는 현상만 존재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하녀, 자본주의 안에 우뚝솟은 남근이라는 표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