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랑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어른들은 너희들에게 그건 사랑도 아닌, 풋사랑이야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누군가를 사랑해보긴 했겠지? ^^
지나보면 사랑이 아닌, 단순한 집착이었을 수도 있고,
중독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때는 진지했던,...
오늘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겠지만,
그래서 그 사랑에 비추어 보았을 때, 예전에 우리가 했었던 사랑이,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가벼웠다 하더라도,
부끄러워 하지는 말자,
그 또한 그 나름대로 우리의 어리숙함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고 추억이니까, 그 자체로 받아들이자구.^^
나도 내 어릴적 사랑을 생각하면,
짜릿하고 자극적이라기 보다는, 가슴 한 켠이 아릿하고, 따스한 기분이 들고는 하지,
내 첫사랑은 초등학교1학년 때 부터이지만,
초등학교 시절은 지금 너희 입장에서봐도 인정하기 싫은 어리숙함의 시절이겠지?ㅋㅋ
음, 중학교 2학년 때는 교회에서 함께 찬양단을 하던 동기를 좋아했었지,
그 친구는 피아노반주자 였고, 나는 찬양인도자였는데,
자연스레 친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 당시 학생부 예배는 오후9시에 한번, 2부순서로 2시 정도에 또 있어서, 교회임원 학생들은 집에 안가고 계속 교회에 남아있었어, 그럼 그 빈시간동안 모하냐? 찬양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해먹고, 밖에서 놀기도 하고, 뭐 그랬지, 그러니 안 친해질 수가 없겠지?) 그 친구를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 보기 시작했던거 같아.
뭐, 그 자세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구,^^
여튼 결과적으로 사귀지는 못했지만, 나도 그 친구 생일을 챙기고, 그 친구도 내 생일을 챙겨주고,,,
그 친구생일 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얼마나 고심했던지,,,,
그리고 그 친구가 준 내 생일선물은 왜그리 소중해보이던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받은 선물은 2000원짜리 초미니성경모양의 열쇠고리였는데,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몸에 지니고 다녔었어.
뭐든지 퍼주고 싶은 그런 마음.... 너희도 알지?^^ ㅋㅋㅋ
중3 때 말부터는 또 다른 친구를 좋아했었고, (에구 짝사랑의 연속이었지, 결과적으로 난 결혼전까지 한 명도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어^^ 지금의 와이프가 첫 교제 상대야 )
그 때는 그 좋아하는 마음을 얼마나 글로 써댔는지 몰라, 정말 노트 한권이 다 차도록 시를 쓰고는 했지, 뭐 누가보면 3류 사랑시에 불과하겠지만....
고2때 좋아했던 친구 역시 그 친구 이름하나하나를 시구로 이용해서 노트의 빈칸들을 마구 채워갔지, 생각해보니 그 노트는 아직까지도 있었어. 중요한 노트다보니 그 짝사랑이 끝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깊이 숨겨놓았다가 지금까지 보존되었던게지,ㅋㅋㅋ
여튼 내 어릴적 짝사랑스토리야 지금의 하진이 엄마도 다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 시 노트는 보여줄 수가 없더라고, 아무리 어릴적 짝사랑이지만, 내가 전심을 다해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글로 썼기에, 그 애절함이 결코 아내에게 좋을거 같지는 않아서 얼마 전에 파기해버렸지, ^^
이런이런, 너무 옛날 감상에 심취해 있었구만,
그런데 신기한게 하나있지, 다들 누군가를 좋아해봐서 알지,?
처음엔 별로였다가도 점점 좋아지다가,
나중에는 무언가 마음의 결정이 내려지잖아, 난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문제는 이 시기가 지나버리면, 그 때부터 콩깍지가 씌워지는 거야.
그래서 그 상대방의 모든 점이 좋아보이는 거대한 착각의 늪에 빠져버리는 거지,
중2때 좋아했던 그 친구도 자신의 언니에게는 말을 함부로 막하는 타입이었는데,
정말 어느 날은 남자도 안쓰는 욕을 자기 언니에게 했던 적이 있어, 어떤 면에서 정말 정나미가 뚝 떨어질만한 일이었는데도, 나는 그 행동조차도 합리화시키려하였고, 좋게만 보려고 했던거지.
중3 말에 좋아했던 그 친구도 결코 학교에서는 행실이 바른 친구도 아니였는데,
나는 무조건 좋게만 보려고 했고, 실제로 좋게 보였던 그 일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 수 있지.
너희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지?^^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주려고 하는 그 열정,
그 에너지는 정말 젊은 날의 초상과도 같은 거지.
근데 선생님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이 세상에 사랑을 만드신 창조주의 뜻을 조금씩 이해하다보니, 진정한 사랑과 내가 했던 사랑이 얼마나 다른 위치에 있는지를 알겠더라고.
예전에 찬양단 게시판에도 썼던 말인데,
지금 너희주변에 너희가 짝사랑하거나, 연애하는 사람 한 명을 떠올려보고,
반대로 너희가 생각만해도 짜증나거나 싫은 사람을 떠올려봐. 그 두 사람의 거리가 어느 정도나 떨어져 있는지 혹시 머리 속에 그려지니?
무슨말이냐면, 정말로 너희가 삶 속에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몇명이나 있는지 자신에게 솔직하게 떠올려보면,
자신의 사랑의 수준과 실체도 알수가 있는거야.
사실 이 얘기를 듣고 말도 안된다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을거야,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두와 친할 수 있겠냐고, 어떻게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수 있겠냐고 말야.
그러나 성경에 뭐라고 나와있지?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잖아.
사실 나도 이 말씀을 읽으면, 그저 멋있는 말이다. 혹은 '그래 저 정도의 마음가짐은 가져야 그나마 싫어하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겠다는 과장법이겠구나' 라고 생각했었어. 과장법.. 과장되게 강조해주어야 그나마도 사람들이 따라가는 것처럼 말야.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야. 예수님이 말씀가지고 장난치시고,
허구적인 부분을 하나라도 만드시는 분이 아니거든.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그리고 너희 한 명 한 명에게 지금도 말씀하시는 거야. '원수를 사랑하라!;
근데, 여기서 또 이런 합리화를 하고는 하지, ' 아 그래요. 원수를 사랑할께요. 근데 어떡하죠. 원수일 정도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은 사람은 없어요. 단지 약간 싫은 사람만 많을 뿐이지' 라고 말야. 당연히 이 합리화는 말도 안되는거야. 원수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적당히? 싫은 사람도 있어서는 안되는 거지,
무엇보다 예수님이 하신말씀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킬 수있는 것이기에 말씀하신거야.
자, 그럼 예수님 말씀대로 여러분 주변의 그 재수없게 생각되던 사람들을 떠올려봐, 그리고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해봐, 쉽지않지? 당연히 안되지, 우리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야. 우리의 의지는 주의 말씀을 믿고, 내가 의지하면, 분명히 원수를 사랑할 만한 사랑이 나에게도 생길거라는 믿음까지인 거지, 근데 우리는 평소에 삶속에서 이 믿음조차도 없는 경우가 많지,
그저 싫은 사람, 안보면 그만이고, 누군가와 틀어지면, 평생보지 않음 그만이고 등등....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삶을 피해갈 것이 아니라, 그 싫어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실거야. 싫어하는 그 친구를 떠올려보고, 그 친구를 싫어하는 나의 마음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하고, 그 친구가 싫어지게끔 했던 그 친구의 약함도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할 때 전에 없던 새로운 마음을 분명히 부어주실꺼야. 증오가 아닌 사랑의 마음이 부어지면, 이제는 그 관계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물론 세상적인 기대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기대지, 만나면 행복할거라는, 둘의 관계 속에 주님이 이루실 역사에 대한 기대) 모든 것이 변하는 거지.
반면에 안보면 그만이다라고 피해봐, 그러면 얼마안가 그렇게 똑같이 싫은 사람이 또 나타날 수밖에 없어. 왜? 우리가 가진 사랑의 수준이 그 정도일 뿐이니까, 그 수준에서 싫은 사람이 계속 나타나는 거지, 그러니 피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며 부딪혀야해.
+ 2020년 지금 이 부분에 좀더 의견을 보태자면 자칫 이 때 내가 했던 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불편감만 가중시킬 수도 있어. 즉 나는 아직 전혀 그 친구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혹은 내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한들 그 사람은 나에 대해 대하는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거든, 결국 그럴 경우에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나는 '죄인이어서 안되나보다'라고 괴로워하지는 말기를...... 분면 사람과의 관계만큼 어려운 것은 없어. 친구,회사동료,시어머니, 심지어 아내, 남편조차도..... 그 관계의 틀어짐에서 관계를 잡아가는데 결국 용기와 결단은 꼭 필요하지만 그 용기 끝에 더 큰 상처를 입을지도 몰라. 그럴 때는 그래도 그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 기도 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간청하되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지는 말자구, 가끔은 시간이 서로를 변화시키고 성숙시켜 갈 때가 있어. 예전에는 원수같았던 그 요소가 시간이 지난 후 별 것 아닌 일로 느껴질 수도 있거든. 최선의 방법은 위에 이미 언급했지만 최선의 방법도 강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단!! 잊지는 말자구, 내가 불편하면 평생 안만나고 절교하면 그만이야라는 단순한 태도만큼은 버리자. 노력도 하지 않으면 그만큼 자신은 타자를 받아들일 마음의 크기가 작아지게 되고 결국 절교끝에 내가 편해지는것이 아니라 그런 관계가 점점 늘어나 오히려 삶의 지평이 더욱 줄어들게 될거야. 그러니 최근 유행하는 서점가의 책들처럼 정말 인간관계를 '네 멋대로 하고, 욕망에 따라가라'는 식을 추앙해서는 금물~~
잠깐!! 그렇다면 아까 사랑하던 애인은 어떻게 되는걸까? 왜 사랑 얘기로 시작했다가 원수얘기만 내가 주구장창했을까?
바로 여러분의 사랑의 실체를 측정하기 위해서라고 중간에 얘기했지?
이 세상 모든 사람, 60억명의 사람 모두가 자신이 보기에 좋은 사람,
매력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야.
내가 짝사랑했던 그 친구들은 내가 좋아할만한 매력을 이미 다 갖고 있었으니까 내가 자연스레 좋아하고, 사랑한다 표현한 것이고, 심지어 그들이 갖고 있는 단점조차도 무조건 좋게 봐버리면서,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주려 했던 거지,
정말 이런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러나 단순히 이끌리는 사랑이라는 것은 진짜 사랑이라 표현할 수 없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런 매력에만 빠져서 서로 사랑한다면, 결국 콩깍지가 떨어지는 그날,(이날은 언젠가 꼭 온다. 아무리 사이좋은 연인이라 해도, 예전처럼 바라보던 열정과 뜨거움은 분명히 식기 마련이지.) 상대방의 단점이 그렇게 참을 수 없게 싫어지는 것이고, 그것을 서로 참지 못할때 헤어지게 되는거야. 혹은 이혼하는 것일수도 있고,
( 물론 오해말기를, 이 이유말고도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악함때문에 헤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있단다. )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을까?
바로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는거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비법인 셈이야.
만약 너희가 평소에 싫어하던 친구를 위해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주님께서 새로운 마음을 부어주셔서 그 관계가 회복이 된다면, 앞으로 그러한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너희 것으로 하여 살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에 너희가 적으로 만들 사람이 누가 존재하겠니. (물론 너희가 의로운 만큼 일방적으로 미워할 사람은 많어 ㅠㅠ 그치만 적어도 너희가 먼저 누군가를 싫어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할 수조차 있는 하나님의 그 넘치는 사랑이 너희에게 있다면,!!
평소에 가만두어도 좋아죽을 것 같은 너희의 연인이나 친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일까?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넘치는 사랑이 부어지는 거겠지? 상상도 안갈 일이야. 그치? 정말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이 쏟아지는 거겠지,
얘들아,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오염된 단어는 없단다. 분명 사랑이 아닌, 중독과 집착인데도 다들 사랑이라고 쓸 뿐이야. 현상과 본질이 다른 셈이지,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고 따르는, 우리의 삶을 다 걸기로 한 그 주님이 우리에게 그 진정한 사랑, 오리지널 사랑을 이미 주셨다구,^^
우리는 그 사랑을 깨달아 알기만 하면되고,
그 사랑을 갖고 원수도 사랑할 수 있을때,
이 세상은 넘치고 넘치는 사랑이 가득할 수 있겠지.?
이 세상이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것은 그 어떤 제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해서 그런거야.
문제는 그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겠지.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야말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세대가 될수밖에 없는 것이구 말야.
내 첫사랑 얘기로 시작했다, 너무 진지하게 끝난건가?^^ㅋㅋㅋ
그렇다면, 다음주 편지에는 내가 처음으로 사랑고백을 하고, 차인 내용을 소재로 써볼께.
다들 한 주 잘지내고 주일날 보자
그리고 이번주 설연휴로 교회못오는 친구들은 자기반 선생님들께 미리 말씀드리고,그 담주에 쌩쌩한 얼굴로 봅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