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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n 30. 2020

한 번의 인생을 여러번 사는 능력자들 2 - 아바타놀이

혹은 제2의 기생충 놀이일지도.....

 단 한번의 인생인데도 남의 인생까지 먹어치우는 탐욕자를 소개합니다. 

 

그 탐욕자는 바로 한국의 부모라는 존재다!! 

물론 한국의 모든 부모는 아닐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현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문제라 부를정도로 

한국에서 태어난 어린아이들부터 청소년, 청년들까지 

모두 불행의 그늘아래 벗어나지 못하는 만큼  

충분히 비판적으로 다뤄볼 여지가 있다. 


게다가 

해가 지날수록 사교육비는 더욱 증가하고, 

강제공부, 즉 노역장에 끌려가는 아이들의 연령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갈수록 낮아지는 저출산 문제로 

정부는 아이 양육을 보조하기 위해 

여러 복지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반쪽짜리 정책이다. 

왜냐하면 

아이키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더 안낳는거라고 불만을 터트리는 그 계층이 

바로 일 년에 1000만원씩 들여서 자기 자식 유치원 보내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즉,  

돈이 많이 들어서 못살겠다고 울분을 터트리지만 

결국 한 명이라도 자기 자식을 낳는 순간에는 

어떻게든 최고로 키워야 한다는 욕망에서  

정부정책으로는 절대 감당 못할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부의 대책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사교육을 그 수준의 기준으로 더 많이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구? 

정부정책수준에 맞춰서 아이를 키우면 결국 보통아이!! 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아이는 또 누구인가, 

바로 지금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보통국민, 보통서민으로써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 

분명 자신도 사교육받고 대학까지 나왔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아실현도 못하고 가정주부로 내려앉은 현실

(사실 주부는 결코 내려앉은? 직책이 아니다. 숭고한 직책이지. ) 

혹은 대학나와 취업해서 가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과로에 시달리며, 박봉에 시달리는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 

이 보통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지금 다시 하기에는 늦었다는 낭패감이) 

자기 자녀에게 투영되는 사회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학부모들의 유별난 교육열의 원인을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을  

자녀에게 투영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감히 한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즉, 

(역시 모든 부모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부모들 중 다수가 

자기 자녀의 인생을 빼앗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자기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는 이미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자기가 낳은 자식, 그 자식의 삶을 송두리채 빼앗아, 

아바타로 삼아서(혹은 기생충처럼 자식의 삶에 기생하여)

자기가 다시 한번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상인가, 

자기가 이루지 못했던 욕망, 그 후회들을  

그저 되씹으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집착이 

실제로 캐릭터를 갈아타는 아바타놀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태교라는 이름으로 영어교육을 시작한다. 

태어나면 최고로 비싼 이유식과 장난감을 갖게 되고,  

아직 읽지도 못하는 수많은 도서전집과 영어동화전집에 둘러싸여서 살아간다 

그리고 영어유치원을 들어가서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영어까지 하느라 두 가지의 언어로 사유를 해야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초등학교들어가기 전에 시작된 엄청난 사교육은  

사교육수준의 상향평준화를 가져오고, 

학부모끼리의 눈치보기와 입소문은 결국  

다시 자녀교육에 대한 재투자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지나친 부모의 간섭에 의해  

학교는 아이들의 배움터가 아닌 

부모들의 경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강남의 초등학교를 가보라, 엄마들이 같이 등교하고  

엄마들끼리 서로 담임에게 잘보이기 위해 경쟁하고, 로비하고, 그러나 자기들끼리  

머리채잡고 싸우는일도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의 경쟁이 아닌, 

자기 아바타를 두고 싸우는 게이머들의 싸움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과정이 점점 어려지고,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비싸진다는데 있다.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부모에게 이렇게 공부시켜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해달라고 한적도 없으나, 

부모는 자기의 새로운 삶이기 때문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것이다. 

이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그대로 착각이고, 무의식적 욕망이 만들어낸 합리화에 불과하다. 

얼마나 설레이겠는가?? 

평범하고 보통의 삶으로 정해져 버린 것 같은 지금의 열패감을 

완전히 새로운 어린 육체로 갈아타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이다. 

앞의 글(인생을 두번 살아가는 능력자들1편)에서 예술가들은  

인생을 새로 살고 싶은 욕망을 창작을 통해서 실현한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부모들은  

인생을 새로 살고 싶은 욕망을 자녀를 통해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종과 기생은 계속된다.  

아이의 자의식이 발달하면서 

아이가 자기 삶을 찾기 위해서 발버둥 쳐보지만  

부모는 너무나 쉽게 자녀의 의사를 묵살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경험이라는 이유로, 

단 1%라도 자신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아이들의 영혼은 그렇게 조금씩 죽어간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놀라운 경지에 이른다 

즉, 

아이들은 자기가 결정한 선택이라고 여기는 행동 모두가 

결국 부모의 욕망에서 비롯된 선택과 모두 동일해지는 그 지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아......,

도를 닦는 선인들은 자신의 욕망대로 행해도 그것이 도에 치우침이 없는 상태가  

될 정도로 수양하라 했는데, 

한국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자기의 완벽한 아바타로

자기 욕망에 조금도 벗어남이 없게 

자녀의 자유의지를 조작하는데 너무나 쉽게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세대가 아닐까?? 

부모가 시키는대로 공부했고, 

부모가 시키는대로 대학을 선택했고, 

부모가 시키는대로 직장에 취업을 하고, 

부모가 시키는대로 아내를 얻는... 


진짜 문제는  

우리세대(80년대생)보다 90년대 세대가 더 아바타 싱크로율이 높아졌다는 것이고 

2000년이후 세대는 90년생 보다 더욱 부모와 싱크로율이 높은 아바타라는 점이다. 


나는 문득 두렵다. 

지금 언급한 이 새로운 세대들이 커갈수록 이 나라는 어떻게 변해갈까?? 

인생을 완벽하게 두번 살아가는 부모가 많아질수록, 

영혼을 파먹히는 자식들이 많아 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이버스페이스의 아바타도, 생명공학의 복제기술도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죽을 때까지 아이의 육체를 빌어타고  

마음 껏 인생을 두번 살아보는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실재 육체가 세상을 떠나는 날, 같이 아바타의 껍질을 버려둔 채  

세상을 떠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부모에게 육체를 빼앗겨 껍질로만 살아온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죽고난 40,50대에... 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


(뭘 어떻게 하긴... 또 자기 자식 가지고 아바타놀이 해야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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