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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an 13. 2021

BTJ열방센터와 신천지, 그리고 종교적 광기에 관하여

그리고 전광훈...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978581.html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의외의 사실들이 수면위로 떠오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기독교의 대표적 이단이자 경계대상 1호였던 신천지,

한때 기독교의 대표기구였던 한기총을 완전히 망가뜨린 전광훈,

그리고 이번 21년 한국의 코로나 방역에 큰 혼란을 가져다 준 #BTJ열방센터,


그들도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집단의 이름이 퍼질 것을 원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유명세야 최고이겠으나 

부정적 이미지로 유명해진 것이니 설마 그것을 의도했을까. 

하긴 전광훈은 이미 정치적 파워게임의 도구가 되어 있는 만큼 의도성이 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무조건적 반정부의 기조를 갖고 싫은 소리 대신 쏟아내주는 전광훈이라는 미치광이를 

정치권에서 쏠쏠하게 이용해 먹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전광훈이 단순 도구만은 아닌 것이 그도 거기서 얻어낼 단물을 잘도 빨아들였다. 

어느 무명의 괴상한 목사를 단기간에 보수의 지도자 급으로 올려놨으니 말이다.


여튼 여기서 신천지와 열방센터의 흥미로운 비교점이 있다. 

물론 두 집단 모두 코로나 방역에 혼선을 주고, 

코로나를 전국적으로 퍼뜨리는 사회악을 저질렀다는 공통점.

둘다 기독교를 표방한다는 점에서의 공통점이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그런데 묘하게 두 집단의 차이가 있다.


신천지는 선택받은 자들만의 종교다. 즉 성경의 144000명에 집착한다. 

오직 그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일념하에 어떻게든 자신이 그 수에 들기 위해 광신적으로 집착하도록 한다. 

반면 열방센터에서 드러난 또다른 명칭이 '인터콥'인데 이들은 신천지와 반대로 전세계 복음전파에 있다. 

즉 #열방센터는 신천지처럼 한 점으로 모이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로 퍼지는 방식이다. 

신천지는 종말의 때에 구원받을 자의 집단에 자신이 들어가고자 함이고

인터콥은 자신들이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때가 곧 종말의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이 세계지도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진행해왔다고 한다. 물론 이 생각은 인터콥만의 생각이 아닌 기독교선교에서 동의하는 입장들도 상당 수 있을 것이다. 즉 성경의 태동이 서남아시아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어 남부유럽, 로마로 전파되고 이것이 전유럽으로 확장,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복음이 전해졌던 것이 기존 기독교전파의 흐름이다. 그러다 19세기에 아시아권으로 넘어왔고 한국이 전세계 기독교 부흥의 축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을 기준으로 좀 더 서진하여 동남아, 남부아시아를 지나면 다시 서남아시아로 한바퀴 돌게 되는 것이다. 즉 복음이 전 지구상에 전파되는 순간이 예수재림의 때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생각자체가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든지 건전한 포교방식도 있을테니까.


그러나 '인터콥'은 한국의 그 어떤 선교단체보다 급진적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다시말해 어떻게든 기독교의 복음을 선교와 연관지어서 비기독교국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들어가서 기독교를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 방식 또한 폭력적이어서 그들이 흔히 말하는 '땅밟기'는 불교의 사찰이나 이슬람 회당에 들어가서 기독교 찬양을 하거나 통성기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번 한겨레 기사의 취재를 통해 놀라게 된 점은 설마했던 것이 역시로 드러난 점이다.

 즉 코로나 사태 또한 정부의 음모로 해석하는 열방센터, 인터콥의 광기적 태도를 보면서 혹시 예전에 07년의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사건과의 연관성은 없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는데 한겨례 기사에도 그 연관성이 보도되어 있다. 인터콥의 멤버가 샘물교회 선교팀에 몇몇이 있었다면 그저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무책임한 그들로 인해 현지 온건한 선교사들 뿐만 아니라, 중동에서 일하는 한국인들 대다수가 피해를 봤으며 정부는 이들을 빼내느라 협상값으로 많은 500억까지 지불했다는 설이 있다. 

 결국 신천지는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달리 선택된 소수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열방교회는 자신들의 선택받음이 선교라는 목적에 있기에 최종적 선교의 때까지 맹목적으로 지역을 확장해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번 열방교회 문제가 터졌을때 인터콥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도 상당히 친숙하게 들렸는데, 그 이유는 2000년대 왠만한 교회 찬양사역자라면 인터콥을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했었고, 

대학선교단체 활동도 해보았기에 인터콥에서 만든 찬양들을 알고 있었고 많지는 않아도 좋아했던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자야' '주이름 큰능력' '깨어라 어둔 네 무덤에서' 등의 곡을 인터콥의 이길로 선교사라는 분이 썼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행진'이라는 찬양앨범으로 구매해서 자주 들었던 기억도 있다.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그 인터콥찬양이 바로 지금의 인터콥이란 말인가? 결과부터 말하면 그렇다. 

같은 단체다. 

다만 구글링을 해보니 인터콥내부에서도 현재 대표인 최바울이라는 작자에 대한 우려와 자정노력이 상당히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현재 여전히 대표가 최바울인 것을 보면 결국 자정노력은 실패했고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그 찬양의 근원지는 그저 타락한 광기어린 종교집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 당시 활동했던 이길로 선교사는 최근 한국에 들어와서 교회를 따로 개척한 것 같았다. 여전히 선교적 사명을 강조하지만 인터콥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현재 BTJ열방교회측은 코로나 백신이 빌게이츠가 코로나를 일부러 퍼트린 후 백신을 가장하여 전 세계인의 DNA유전자를 바꿔서 자신에게 복종시키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음모론에 헛소리다. 하지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절대적 신의 이름 앞에 모인 상황에서 밖에서 보면 헛된 뻘소리도 진리로 둔갑하기 일쑤다. 그러니 아무리 사회에서 비판해도 거기에 참석한 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이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나도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이 명문은 항상 이단들에게 오역되어 활용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광기적 행위를 이런 성경구절을 읊으면서 정당화하기에 

세상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자본의 탐욕과 이기심을 당연시하는 세상이라면, 그런 입장에서 어떤 욕심도 내지 않고, 있는 것조차 

약자에게 나눠주는 교회가 있다면 그는 세상이 보기에 미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성자의 행위와 다를바 없음 또한 우리는 안다. 

그런데 최근 신천지와 인터콥과 같은 종교단체가 보이는 행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그들이 들은 신의 목소리는 과대망상에 빠진 자기 교주의 탐욕의 목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마치 신이 직접 사명을 내린 것처럼 충성하게 된다. 자신들의 사명을 위해서라면 그것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그저 '멸망하는 것들'로 보여질 뿐이다. 

 그러나 정작 선교적 사명으로 불타는 그들이야말로 기독교 선교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까. 인터콥의 막무가내식 종교적 광기의 행위 덕에 한국의 기독교는 겉잡을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되었다. 신천지야 이단으로 규정해 놓았으니 오히려 기존 교회들은 좋아했을지 모르지만 

인터콥의 경우는 공식이단이라고 보기도 애매한 만큼 결국 국민으로부터의 모든 원성은 전체 기독교가 나눠먹게 되어있는 것이다. 

 결국 열방센터,인터콥이 종교적 광기를 자기만족적 선교의 동력으로 활용하듯이, 전광훈 또한 종교적 광기를 우파정치의 권력놀이의 동력으로 활용한 셈이다. 최근 몇년 사이 등장한 전광훈과 이번에 등장한 열방센터 덕분에 한국의 개신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그대로 깎아먹고 믿음의 선조들을 볼 낯조차 없어져 버렸다. 얼핏보면 정관훈은 정치, 열방센터는 선교이기에 그 추구점이 다른 것같아도 결국 그 집단을 규합하는 세력화, 권력화에 그 모든 중핵이 깔려있을 것이다. 이런자들의 권력놀이를 위해 그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절두산에서 목베임을 당한 것이 아니고, 양화진에 묻힌 것이 아닐진대 한국의 기독교는 그 어느시대보다 위기에 빠져버렸다.

 그것도 외부의 탄압이 아니라 내부의 탐욕과 권력욕에 의해서 말이다.  자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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