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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Apr 28. 2021

[오늘, 자본을 읽는다] 1편 변증법,유물론, 추상화

자본론을 읽기에 앞서

(강신준 교수님의 저서 '오늘 자본을 읽다'를 요약정리해 가는 강의안을 앞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유튜브로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마르크스는 당시 자본주의를 분석, 비판하면서 불가항력적으로 사회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사회혁명에 사로잡힌 두 가지 질문

1 왜 1848 유럽의 혁명은 성공했을까?

2 왜 1848 혁명은 패배로 귀결되었을까?

라는 역설적 질문이 남는다. 


그리고 그는 이 두 가지 질문을 갖고 1849년 부터 대영박물관에서 자본론 집필을 시작한다.


1.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힘

-다수의 의지: 다수의 의지가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다. 1789 프랑스대혁명은 다수의 부르주아가, 1848은 다수의 노동 빈민이 의지를 보였다. 한편 이러한 혁명에 다수를 설득하고 참여시키기 위한 동력이 필요한데 1789 대혁명은 정치적 권리의 문제였다면 1848 혁명은 노동빈곤이라는 경제의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1848년, 이 시대의 노동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찾기 위해 자본을 연구한 것이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양식에 상응하는 생산관계 및 교환관계가 그 연구대상이 된다.


-노동빈곤의 수수께끼 

 자본주의 시대가 이전 시대의 경제구조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교환'에 있다. 자본주의 이전시대는 '교환'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 자급자족 경제였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가 한 마을, 한 공간에서 이뤄진 만큼 본격적 교환의 시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는 모든 생산은 그 곳의 소비가 아닌 다른 곳의 소비를 위해 만들어진다. 즉 교환을 전제로 만드는 것이기에 그 목적 자체가 이전시대와는 달랐다. 시장에 내다 팔기위한 생산! 따라서 교환이 생산과 소비를 분리하고, 중간에서 이들을 매개하는 구조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장소a--------------------------장소b

 생산------------교환------------소비

 소비------------교환------------생산


문제는 이런 구조에서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도 풍족하게 살 수 없는 가능성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내가 생산한 것이 나의 소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구조적 가능성이 생긴 것이고, 실제로 현실에서도 부를 생산한 노동자가 오히려 가난하게 소비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이 자본주의의 구조인 만큼 다수의 동의를 통한 혁명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즉 교환의 구조를 갖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바로 혁명의 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자본주의 이전에는 동서양 모두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는 경제구조였다. 나름의 폐쇄적인 경제구조 안에서 만족하면서 살만한 자급자족의 구조였던 것. 그러나 전쟁과 역병이라는 두가지 변수가 이 안정성을 뒤흔들게 된다. 

 11세기의 십자군전쟁은 유럽으로 하여금 막대한 소비를 불러일으키고 생산의 부족을 가져온다. 그후로도 영국,프랑스의 백년전쟁 등, 끊이지 않는 전쟁은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여기에 페스트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은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데려가고, 생산의 부족은 더욱 심화된다. 

 결국 부족해진 생산을 어떻게든 채우려면 외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고, 여기서 교역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동방을 향한 유럽의 여정은 부족한 생산을 채우게 해주었다. 이러한 생산과 소비가 교환을 통해 분리되는 상황을 통해 자본주의가 서구에서 먼저 시작되게 된 셈이다.


2 혁명이 실패한 원인


의지와 현실의 간격: 변혁을 향한 의지와 현실은 일치하기 쉽지 않다. 변혁을 위한 몇몇 선구자적 시도가 섣부른 방식으로 실패하게 되면 다수의 기대는 더욱 사라지고 체념하게 된다. 결국 현실에서 간격이 벌어진 혁명의지가 아닌 현실에 맞춘 의지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이 간격의 구조를 밝히고자 한 셈이다. 변혁을 위한 다수의 의지와 그 의지를 배신하는 현실사이의 간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일치시키고자 하였다. 

 결국 혁명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오랜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 혁명이다. 서서히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는것! 

 그런데 여기서 현실과 의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 두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첫째가 변증법!, 둘째가 유물론!이다. 


 유기체의 발전법칙: 변증법

 우리 사회는 굳어버린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형하는 유기체다. 생명이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면, 곧바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경제생활, 경제구조 또한 그렇게 생물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사회는 인간으로 이루어진 조직체인 것이다. 사회가 유기체의 발전과정을 밟아나가는 것, 자본주의가 봉건제를 넘어서 파생했고, 혁명이 과거와 단절되는 형태가 아니라, 과거를 전제로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대결도 서로를 완전히 지우고,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결국 그 이전의 사회를 발판, 거름삼아 새로운 열매를 피우는 것이다.즉 변증법은 첫단계 1에서 2단계 1+1이 되는 것이고, 3단계는 3으로 가기위한 2+1의 구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첫째계단이 마음에 안든다고 다시 부수고 새롭게 1단계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즉 혁명은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뛰어넘어 성숙한 발전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변증법적 지양'이다. 기존의 것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고 끌어올린다는 의미'로써 지양이 제시된다. 자본주의의 변혁과 혁명도 결국 자본주의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디딤돌 삼아 더 높은 계단으로 오르는데 있다. 

 

 의지와 필연의 관계: 유물론


유기체의 발전과정은 앞 세대의 성숙이 무르익고 끝나기 전에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또한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지양되는 것이 아니다. 성숙을 멈출 때까지 자본주의는 계속 발전할 것이다. 문제는 이 무르익음의 시기가 인간의 의지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닌 자연의 법칙에 달렸다는 것이다. 유기체의 성숙을 인간의지로 어찌 앞당기겠는가? 인간의 의지는 자연의 필연법칙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주장이고, 이를 따르는 것이 유물론이다. 따라서 1848의 혁명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하게 무르익은 시점이 아니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의지의 역할: 유물론과 기계적 유물론의 구분- 그렇다고 의지는 아무 필요없는 것일까?그렇지 않다. 인간의 의지는 아무소용없다는 극단적 입장이 기계적 유물론이다.  우리는 이를 따르지 않는다.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의지가 자연법칙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의지가 현실과 일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세대교체를 위해 앞 세대의 성숙만을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이후 세대, 뒤 세대가 충분히 성숙해야 한다는 조건을 의지가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미래가 현재속에서 의지를 통해 준비되고 있어야 한다.  '해야 하는 것'만을 공허하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의지를 갖고 실천해 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이 어느 정도로 성숙했는지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자연법칙을 파악하는 방법: 추상화


 그래서 마르크스의 경제분석에는 '추상화'가 중요하다. 추상화는 개별적인 차이들로 이루어진 현상으로부터 이들 사이의 공통된 본질을 찾아나가는 과학적 방법이다. 사회경제구조의 성숙을 파악하기 위해 일일히 세부 지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사이의 공통된 본질을 파악해내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추상화의 과정이다.  마르크스가 언급하는 '생산양식'이 바로 그 추상화의 열매인 셈이다.


 따라서 '자본론'을 읽을 때는 


1권이 가장 추상적이고 2권,3권으로 갈 수록 현실화, 구체화됨을 알고서 읽어야 도움이 된다. 즉 1권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구체적 현실을 추상적 연구방법으로 핵심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늘 높은 곳에서 경제현상 전체를 조망하다가 점차 땅으로 내려오는 서술방식이다.

 그리고 서술방식 자체가 변증법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변증법은 사물의 운동법칙을 성숙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만큼 모순처럼 보이는 서술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성숙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표현의 문제이다. 고등학생이 대학생으로 성숙해간다면 그것은 같은 동일한 사람이면서도 분명 다르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서술이 자본론 곳곳에 나오기에 변증법적 구조를 생각하며 읽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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