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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공작새 May 18. 2020

하늘에 구멍 뚫린 날

폭우 속의 카타르시스

나는 기본적으로 비를 싫어한다.

젖는 게 불쾌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옷이 축축해져 들러붙는 순간 기분은 가라앉는다.

살과 살의 마찰력이 높아져 '첡첡' 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대끼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도 없다.

애초에, 나란 사람은 '습하다'라는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게 태어난 것 같다.

그래서 내 27 평생 '가장 싫은 계절 1위'에서 여름이 내려온 적은 한번도 없다.

습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덥기까지 한 나라에서 1년동안 사느니 평생 겨울밖에 없는 나라에서 살겠다 생각할 정도다


비는 싫지만 비내리는 날의 운치까지 싫은 것은 아니다. 빗줄기가 토도독 떨어지고, 거리가 0과 1의 형상으로 가득차는 광경은 넋놓고 바라보기 좋다. 물론, 그렇다 해도 내가 즐기는 비는 어디까지나 습도와 온도가 조절되는 실내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창 밖의 비다.


그런데 딱 하나, 내가 비 속에 있는 걸 즐길 때가 있다.

소위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다. 바로 오늘 같은 날 말이다.

이런 날만큼은 나갈 일이 없더라도 괜히 나가 우산을 뚫을 듯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비오는 날의 습함도 폭우가 쏟아질 때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몸 주위를 떠돌던 습기들이 비와 함께 땅으로 휩쓸려 내려가는 건지, 경쾌하다 못해 시끄러운 빗소리가 습기의 불쾌함을 씻어주는 건지, 폭우 속의 공기는 기분좋은 서늘함이 가득하다.

비오는 날 가득찬 물웅덩이를 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폭우 속의 풍경은 자연이 문명을 이기는 위대한 순간의 극화처럼 보인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물이 모여 도로가에 냇물처럼 흐르는 것을 보자면, 지붕 위 빗물받이가 비를 미처 담지 못해 온갖 곳으로 빗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볼 때면, 까맣던 아스팔트가 산란하는 빗방울에 새하얗게 바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치 지금껏 문명에 완전히 복속 당한 줄 알았던 자연이 위대한 대역전극을 벌이는 것마냥 알 수 없는 들뜸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귀가 멀듯한 빗소리 속에서 명멸하듯 들리는 머나먼 천둥. 때 낀 흰색으로 가득찬 하늘 순간순간을 완전한 백으로 뒤바꾸는 번개. 도로가를 달리는 차들이 만들어내는 무심하고도 높디 높은 물보라.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비를 피했을까 새삼 생각하게 되는 나무그늘. 우산 위로 느껴지는 둔탁한 폭우의 무게. 우산으로 가려도 얼굴까지 튀겨오는 자잘한 물방울들.


찰박찰박 거리는 소리마저 기분이 좋다

이런 날은 웬만해선 샌달을 신고 나간다. 그리고 일부러 흐르는 빗물에 발을 담근다. 더럽다고 해도, 어린애나 하는 짓이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빗속에서 들뜬 내 감정이 시키는 일인 걸. 폭우 속에선 바지가 젖든 말든, 신발에 물이 스며들든 말든, 우산 안쪽으로 비가 새든 말든 하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아진다. '옷은 젖으면 안 된다'는 통념은 우산을 써도 젖는 현실 앞에 무너진다.

폭우는 마음 속 담까지 범람하여 '문명 속의 인간'이라는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리고는 세상 모든 것이 빗속에 파묻히는 감각, 이 감각만이 남아 하늘에 구멍을 뚫은 것처럼

내 먹먹했던 가슴도 시원하게 뻥 뚫어줄 뿐이다.


미친 사람은 비오는 날 더 흥분한다고 하던가. 그들이 흥분하는 이유와 내가 폭우를 좋아하는 이유가 정말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미칠듯이 쏟아지는 빗속에선 나도 그들과 어울려 비를 맞으며 춤출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폭우 속의 카타르시스는 어디까지나 폭우 속에서만 느낄 뿐이다. 눈 뜨기도 힘든 빗속을 지나 마침내 실내로 들어올 때, 그제서야 처참해진 내 모습을 보고 깨닫는다.



아, X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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