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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진 May 07. 2022

유리

쉼,

  사람은 흐리다. 우리가 서로를 마주 볼 때마다 차츰 더 흐려져 간다. 내가 너를 볼 때, 네가 나를 볼 때, 우리는 서로의 뒤편만 바라보았으니, 그렇게 더 흐려져 간다. 나라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고, 동시에 이해받을 수 있다.

  이 말의 정황, 나는 투명하게 존재한다는 말이고. 나는 누구에게나 맑게 흐르는 물줄기가 되어서 흐를 것이다. 이해가 안 됐다. 투명하게 흐르는 나를 두고 왜 내 뒤의 여백만 바라보는 것인지. 나는 맑아도 너무 맑은 탓에 정작 나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일까. 충분히 이해했고, 이로써 나는 더 투명해져 가겠지. 정작 너는 투명하지 못했기에 나의 눈에 들어왔겠지. 깊게 더 깊게 알아갈수록 너는 나처럼 투명해지지 않기로, 그렇지 말기로 진심으로 걱정했다. 내가 너를 보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굴절 없이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비어 가는 기분이다. 내 두 눈이 투명해져 가는 탓일까. 모두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나를 더 흐리게 만들어 가겠지. 흐리다는 존재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흐리다는 존재는 내가 너를 보는 과정이다.

  그만 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너와 나는 투명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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